[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바뀌는 월가 내러티브, 스태그플레이션→리플레이션
미국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성장동력인 소비가 델타 변이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강하게 일어나고 있음이 15일(현지시간) 미국의 9월 소매판매 수치에서 확인됐습니다. 거기에 9월 중순부터 델타 변이 확산세가 꺾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시장을 지배했던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는 '하드랜딩'(hard landing; 경기가 급격히 냉각돼 침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소프트패치'(Soft Patch; 경기 회복 국면에서 겪게 되는 일시적 경기 후퇴)로 끝날 것이란 관측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전망은 지수가 이틀째 강하게 뛰어오르는 배경이 됐습니다. 다우는 1.09%, S&P500은 0.75% 상승했고 나스닥은 0.5% 올랐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S&P500은 1.8% 상승하여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S&P500 지수가 50일 이동평균선을 확실히 돌파했고, 지난 4일 4300을 바닥으로 상승세로 다시 복귀한 듯하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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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변이에도 2조4000억 달러의 추가 저축을 가진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는 대단합니다. 9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7% 증가해 예상치 -0.2%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또 8월 소매판매는 기존 0.7% 증가에서 0.9% 증가로 상향 수정됐습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재고가 급감한 자동차를 뺀 9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8% 증가했고, 8월 수치는 1.8%에서 2.0%로 상향 수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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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업종의 판매가 늘어났습니다. 줄어든 분야 중에선 전자 및 가전제품(-0.9%)이 있었는데 이건 재고가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현재 냉장고, 세탁기 등을 주문하면 적어도 두세 달은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인플레이션 영향도 있습니다. 주유소 판매는 1.8% 증가했는데, 휘발유 가격이 오른 영향도 있지요.

이를 팬데믹 이전인 2019년 9월과 비교하면 19%나 높은 수준입니다. 또 소매판매 증가 추세에 비해봐도 추세보다 11%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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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웅적인 미국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 낮은 재고에도 용감했다"(Heroic American Shoppers Braved High Prices, Low Inventor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델타 변이는 9월 중순 이후 감소세를 보였다. 이는 4분기에 다른 견고한 소매판매 및 경제 재가속의 무대를 만들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공급망 혼란으로 상품 재고가 많지 않고, 인플레이션은 상품 가격을 밀어 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영웅적' 미국의 소비자는 어떻게든 돈을 쓸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그레고리 다코 수석 경제학자는 "나아지고 있는 코로나 상황은 소비자들의 낙관론을 다시 부추길 것이며, 개선되는 고용시장은 소비자들의 소득 성장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 델타 변이가 꺾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11월 8일 백신을 접종한 세계 여행자에 대해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머크사의 코로나바이러스 경구용 치료제도 4분기 중에는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소매판매 수치는 전날 팬데믹 이후 최저로 떨어진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29만3000건)와 함께 경기 회복세가 다시 제 궤도를 찾을 것이란 전망에 힘에 싣습니다.

이날 발표된 10월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 예비치는 71.4로 전달(72.8)보다 떨어져 월가 예상치 73에 못 미쳤습니다. 다행인 건 향후 12개월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4.8%로 전월(4.6%)보다 상승했지만 5년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2.8%로 전월 3.0%보다 낮아져 그나마 안도감을 줬다는 겁니다. 소비자들이 아직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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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기업 실적도 줄줄이 '서프라이즈' 수준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 14일까지 S&P500 기업 중 40개(8%)가 실적을 공개한 가운데 이들 중 80%가 주당순이익(EPS)이 월가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5년 평균인 76%를 상회합니다. 또 이들의 EPS는 월가 예상보다 14.7% 많았습니다. 이것도 5년 평균인 8.4%보다 높습니다. 팩트셋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지난 9월 30일 기준으로 S&P500 기업의 3분기 EPS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지금 추세라면 30%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은 4분기에도 이들의 EPS가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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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까지 실적을 발표한 기업의 상당수가 금융사인데, 이들이 상대적으로 공급망 혼란을 겪지 않았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날 실적을 공개한 골드만삭스는 EPS 14.93달러를 기록해 월가 예상 10.18달러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기업금융(IB) 수수료, 트레이딩 수익 등 전반적인 모든 사업부에서 예상을 넘어선 성과를 올렸습니다.

다음 주에는 존슨앤드존슨 IBM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S&P500 기업 80개가 실적을 공개합니다.

그동안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일부 반영하며 전날 1.519%까지 내려갔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도 이날 급등해 1.574%로 마감됐습니다. 통상 채권 시장은 부정적 요인을 더 심각하게 반영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야 채권 가격이 상승(금리 하락)하니까요. 월가 관계자는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리플레이션이 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악화+높은 인플레이션'의 조합이라면 리플레이션은 '경기 성장+적당한 인플레이션'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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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경제학자인 올리비에 블랜차드는 전날 트위터를 통해 "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침체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매우 강력한 성장이다. 강력한 민간 및 공공 수요가 공급망 혼란에 부딪히면서 급격한 가격 인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JP모간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최근 경제 성장 둔화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몇 달간 노동시장의 강력한 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경제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당시 상황보다는 훨씬 좋아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속에 지난 온스당 1800달러를 넘었던 금도 이날 1.3% 하락했습니다.

CNBC의 주식 평론가 마이크 산톨리는 가끔 '미스터리 브로커'의 얘기를 대신 전합니다. 이 '미스터리 브로커'는 작년 3월 팬데믹으로 주가가 무너졌을 때 저가매수를 권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 6개월 동안 10% 이상 조정이 올 것으로 전망했었습니다. 작년에는 맞췄지만, 올해는 아직 틀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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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톨리는 이날 "'미스터리 브로커'가 조정 주장에서 후퇴했다. 지금은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본다. 그는 온갖 위협(델타 변이, 부채한도, 인플레이션, 에너지 가격 상승, EPS 감소 전망)을 감수해내는 시장의 '끈질김'을 언급하면서 기술적으로 바닥을 쳤고, 이제 계절적으로 강력한 시즌에 접근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산톨리는 "'미스터리 브로커'는 실물경제에 대해 낙관적이다. 기업들이 공급망 혼란 해결책을 찾고 가격을 성공적으로 인상할 것이며 국채 금리는 잠시 뒤 느린 상승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그는 "'미스터리 브로커'는 4월 이후 조정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에 당황스러웠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다음 강세장으로 가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10% 이상 지수 조정이 필요하고, 이런 위험은 2022년 초로 미뤄졌을 수 있다고 밝혔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실 모든 해석이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뉴욕 증시의 분위기 개선은 결국 투자자들이 싫어하는 9월, 10월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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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는 1.2% 올라 배럴당 82.28달러에 마감하는 등 7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는 "임금 인상 압력은 경제 전반에 퍼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우려는 여전하고,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면 다시 비관론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습니다.

이날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또다시 상승하면서 0.40%를 기록해 작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2년, 5년 등 기준금리 영향을 받는 단기, 중기 금리가 특히 더 많이 오르고 있죠. 앞으로 몇 년간 기준금리가 오를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한 겁니다.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내년 9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74.8%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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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는 "높아지는 인플레이션 압력 탓에 단기에 통화정책이 긴축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우리는 통화정책이 성장 지향에서 반 인플레이션으로 전환되기 직전에 있다"라고 보고서에 썼습니다. JP모간도 "공급망 혼란이 거의 감소할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2022년에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달간 부채한도 문제를 미루면서 4800억 달러를 높였기 때문에 미 국채 발행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 의회가 오는 12월 부채한도 문제를 해결한다면, 두 가지 인프라 법안도 통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솔직히 말해 올해 우리는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은 통과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 적은 것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협상할 것이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연말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서 금리가 뛸 수도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올해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 1.4.~1.6%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지만, 내년에는 2%에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바뀌는 월가 내러티브, 스태그플레이션→리플레이션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