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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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탈(脫)탄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그린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친환경 상장지수펀드(ETF)와 화석연료 ETF가 번갈아 가격이 오르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증시도 '이상 기후'…친환경·화석연료 ETF 번갈아 상승
최근까지만 해도 화석연료 ETF가 완전히 승기를 잡는 듯했다. 대표적 상품인 ‘아이셰어즈 글로벌 에너지(IXC) ETF’는 연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32% 올랐다. 반면 친환경 에너지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글로벌 클린에너지(ICLN) ETF’는 같은 기간 23% 하락했다. 세계 각국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데 친환경 ETF 주가는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유는 그린플레이션에 있다. 친환경 발전의 원재료가 되는 리튬 니켈 알루미늄 등의 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친환경 에너지 기업의 마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재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폴리실리콘, 철강 등 재료비가 증가하면서 태양광, 풍력에너지 관련 기업의 마진이 줄고 있다”며 “원자재 가격과 운임 상승세가 둔화하기 전까지 관련 기업의 실적이 유의미하게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친환경 에너지의 전력 생산이 불안정해 천연가스는 물론 석탄, 원유 가격까지 뛰고 있다. 엑슨모빌, 셰브론, 토탈에너지 등 전통 에너지 기업을 담고 있는 IXC ETF 주가가 이달 들어 지난 15일까지 9.35% 상승한 배경이다. 하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국면에서는 친환경 ETF보다 화석연료 ETF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친환경 종목의 성장성은 여전하다. 그린플레이션이 궁극적으로 친환경 정책으로의 전환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920년대 ‘록펠러의 석유’에 밀린 석탄은 투자가 급감하고, 가격이 급등했다. 석탄 가격 상승은 오히려 ‘석탄의 퇴장’을 가속화했다.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석유의 대중화로 내연기관차 보급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가격이 급등했다고 석탄, 석유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결국 친환경으로 발생한 그린플레이션 때문에 각국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원전 포함)을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대가 반영돼 친환경 ETF가 다시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ICLN ETF는 이달 들어 15일까지 5.91% 상승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