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조원대 금액이 걸린 즉시연금보험 소송에서 보험사의 이례적 승소 사례가 나오면서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즉시연금 소송의 핵심 쟁점은 ‘계약 당시 연금액에 관한 설명 의무가 이행됐는지 여부’다. 비슷한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한 다른 보험사의 항소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즉시연금 소송 매번 지다가 이번엔 보험사가 이긴 이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46부(부장판사 이원석)는 지난 13일 가입자 윤모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날 이 부장판사는 한화생명이 즉시연금 가입자 김모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채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관련 설명을 약관에 명시하지 않아 제기된 즉시연금 소송에서 보험사가 승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즉시연금이란 보험료 전액을 가입 시 한 번에 납입하고, 다음달부터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 상품이다. 연금 지급 개시 후 가입자들은 기대보다 적은 연금을 지급받았다며 보험사들에 소송을 냈다. 가입자들은 “실제 받은 약관에 사업비 등 일정 금액을 떼고 매월 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험사들은 “산출방법서에 따르면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하고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보험금을 반환할 수 없다고 맞서 왔다.

그동안 다른 재판부에선 가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까지 재판부는 “산출방법서는 보험 약관 내용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가입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로 인해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교보생명이 즉시연금 공동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했다. 즉시연금 미지급 분쟁액이 약 4000억원으로 가장 큰 삼성생명도 같은 이유로 지난 7월 21일 즉시연금 소송에서 패소한 바 있다. 유일하게 NH농협생명만 ‘가입 후 5년간은 연금월액을 적게 한다’는 내용을 약관에 명시해 승소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산출방법서도 약관의 내용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하며 생보사 손을 들어줬다. “약관에 연금월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금액은 ‘산출방법서에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 금액’이라는 지시문이 있다”며 “보험 약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고 봤다. 설명 의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삼성생명은 가입설계서를 통해 가입자가 받게 될 연금월액이 공시이율 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며 “충분한 설명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금융감독원이 2018년 파악한 즉시연금 미지급 분쟁 규모는 8000억~1조원 수준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추가 지급 금액 규모가 큰 만큼 패소한 보험사들이 모두 항소한 상황이고, 모두 대법원 판결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판결로 인해 보험사들이 연패 후 분위기 반전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