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산업찾기] 크리스퍼의 뒤를 이을 새로운 가위 발견, 특허 자유로운 유전자 가위 나올까
크리스퍼-카스9(이하 크리스퍼)이 처음 등장한 이후 크리스퍼는 줄곧 생명과학계의 ‘스타’였습니다. 지금까지 난치병으로 알려졌던 수많은 질병의 치료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상되는 경제적 가치도 수조 원대에 이릅니다. 이를 둘러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브로드연구소와 버클리 캘리포니아공대(UC버클리)의 특허 소송으로 세계가 시끄럽기도 했죠.

그런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9월 9일 자에 특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카스9의 조상 단백질에서 새로운 가위 발견해

논문에 소개된 유전자 가위는 ‘IscB’라고 불리는 단백질군에 속한 효소입니다. 새롭게 발견된 IscB 편집 효소 역시 카스9처럼 특정 DNA에 결합하는 ‘가이드 RNA’를 가지고 있습니다.

RNA의 안내에 따라 접근한 DNA를 분해시켜 기능을 없애는 것이 크리스퍼의 주된 작동 시스템입니다. RNA의 종류만 바꿔주면 어떤 DNA든 표적해 없앨 수 있습니다. 크리스퍼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이유죠.

IscB 편집 효소도 크리스퍼와 유사한 작동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유전자 가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펑장 MIT 교수는 “DNA를 절단할 수 있는 새로운 편집 효소는 가이드 RNA 시스템을 따른다는 점에서 유전자 편집을 위한 추가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펑장 교수는 진핵생물에 적용할 수 있는 크리스퍼-카스9을 개발해 미국 특허 소송에서 승기를 거머쥔 인물입니다.

연구진은 크리스퍼의 진화적 기원을 찾는 과정에서 IscB 단백질과 유사성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간의 연구를 통해 크리스퍼는 미생물들이 자기 방어, 즉 면역을 위해 획득한 시스템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요. MIT 연구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카스9이 새로운 위치로 이동할 수 있는 ‘트랜스포존(점핑유전자)’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IscB 단백질군은 트랜스포존에 의해 발현되는 단백질입니다. 이런 이유로 연구진은 “IscB 단백질이 카스9의 조상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연구진은 IscB 단백질이 카스9, 가이드 RNA와 마찬가지로 ωRNA(오메가 RNA)의 서열에 의해 특정한 DNA를 절단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사실은 ωRNA의 서열을 변경할 경우 크리스퍼만큼이나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트랜스포존
염색체 내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움직일 수 있는 DNA 서열을 의미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점핑유전자’라고도 불린다. 1940년대 처음으로 보고됐으며, 인간 게놈의 45%, 식물 세포는 90% 정도가 트랜스포존이라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경우 트랜스포존이 거의 이동하지 않지만, 일부는 적은 빈도로 움직이며 진화와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진핵생물에서 크리스퍼 시스템이 발견된 건 처음

IscB 유전자는 박테리아와 고세균뿐만 아니라 조류(algae) 생물이 가지고 있는 엽록체에서도 발견됐습니다. 조류 생물은 물속에서 광합성을 하며 에너지를 얻는 생물로, 크리스퍼와 유사한 DNA 분해 시스템이 진핵생물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크리스퍼-카스9의 경우 원핵생물에서만 발견이 됐기 때문에 진핵생물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변형이 필요했습니다(이것이 펑장 교수가 크리스퍼 특허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이를 미뤄봤을 때 IscB 단백질의 경우 카스9에 비해 진핵생물에 도입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으로 보입니다. 펑장 교수는 “IscB가 크리스퍼-카스9 시스템보다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크기가 더 작다”며 “크리스퍼를 적용할 수 없는 일부 응용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또 다른 유사 단백질인 ‘TnpB’ 단백질군도 함께 찾았습니다. 카스9과 같이 ‘가위’ 역할을 하는 카스12(Cas12)의 조상격인 단백질입니다. TnpB 역시 ωRNA의 안내에 따라 특정 DNA를 절단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 TnpB 단백질의 정보를 가진 유전자가 100만여 개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업계 전문가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가 크리스퍼만큼의 성능을 보인다면 특허 문제에서 자유로운 유전자 편집 도구가 생기는 셈”이라며 “또 다른 유전자 가위의 존재 가능성이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됐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가 ‘가위 발굴’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