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A 파이프라인 확대하는 제약사들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의 바이오 기업인 백스에쿼티와 함께 RNA 치료제를 공동개발하는 계약을 맺었다. 바이러스벡터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가 백스에쿼티와 손을 잡으면서 RNA 백신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백스에쿼티는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로빈 샤톡 교수팀이 개발한 자가증폭 RNA(saRNA) 기술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스핀오프 기업으로 지난해 설립됐다.
이번 연구 협약에 따라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스에쿼티와 26개 표적 약물을 개발할 계획이다. 신약 개발, 사용승인, 판매 등의 절차에 따라 백스에쿼티가 받을 수 있는 로열티는 후보물질당 1억9500만 달러다.
saRNA 기술은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다. mRNA와 비슷한 기술이지만 자가증폭 기술이 더해져 적은 양으로도 많은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3세대 RNA 기술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saRNA 기술을 이용하면 기존 mRNA 치료제보다 적은 투여량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상용화할 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기존 mRNA 플랫폼의 10분의 1~3분의 1 정도 용량만 필요하다는 게 백스에쿼티 측의 설명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saRNA 플랫폼을 이용해 백신뿐 아니라 다양한 치료제를 개발할 방침이다.
지난해 로빈 샤톡 교수는 RNA 기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영국 정부로부터 4100만 파운드를 지원받았다. 지난해 건강한 성인 300명에게 백신 후보물질을 2회분 투여하는 임상 1상 시험을 시행했다. 당시 사용한 saRNA 용량은 0.1~10μg이었다.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에 100μg의 mRNA가 사용된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적은 양이다. 이미 초기 임상 연구를 거쳤기 때문에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2~3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백스에쿼티는 직원이 5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회사다.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직원을 두 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샤톡 교수는 백스에쿼티의 최고과학책임자(CSO)다. 이 회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이크 왓슨은 모더나에서 4년간 감염병팀을 이끌었다. 모닝사이드그룹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일라이릴리도 프로큐알테라퓨틱스와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12억5000만 달러다. 릴리는 프로큐알과 협력해 다섯 개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네덜란드 생명공학회사인 프로큐알은 2012년 창업했다. 직원은 150명이다. 프로큐알은 RNA 편집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간질환과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희귀 망막질환인 레베르선천성흑암시(LCA) 치료제 후보물질인 ‘QR-110’이 임상 2·3상 단계다.
프로큐알이 보유한 올리고뉴클레오티드 편집 플랫폼은 표적 유전자의 아데노신을 이노신으로 바꾸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노신은 구아노신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하면 아데노신이 구아노신으로 바뀌게 된다.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 돌연변이는 2만 개에 이른다. 해당 플랫폼을 이용해 혁신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업체 측은 내다봤다. 올 들어 릴리는 RNA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5월엔 미나테라퓨틱스와 손잡았다. 미나는 소형활성화RNA(saRNA)를 개발하는 회사다. 계약규모는 최대 12억5000만 달러다. 프로큐알과의 계약과 같이 5개 신약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RNA 기술에 대한 관심은 미국 주식시장에서도 이어졌다. 디렉시온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디렉시온 mRNA ETF를 출시하겠다고 신고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 있는 mRNA 기업에 투자하는 비타 mRNA 기술 지수를 추종하는 ETF다. 투자 기업들은 mRNA를 이용한 단백질 합성 기술을 이용해 감염병 퇴치에 도움을 주는 기업들이다. 모더나, 화이자, 바이오엔텍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헬스케어 빅딜’ 박스터, 힐롬 인수
헬스케어 분야에서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적 의료기기 업체 박스터가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회사인 힐롬을 105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거래 금액은 주당 156달러로 인수설이 처음 전해지던 7월 27일 힐롬의 종가에 26% 프리미엄을 얹은 금액이다. 기업 부채와 현금 등을 포함하면 124억 달러 규모다. 인수 절차는 내년 초 마무리된다.1931년 문을 연 박스터는 올해 창업 90년을 맞은 미국 의료기기 회사다. 100여 개국에서 신장질환자를 위한 투석기, 약물주입 펌프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영양수액제, 수술용 마취제 등도 주력 판매 제품이다. 지난해 매출은 117억 달러다. 1915년 미국 인디애나에 문을 연 힐롬은 병원침대 등을 만들던 회사다. 2008년 현장진단장비, 환자 모니터링 장치 등을 가동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매출은 6억8500만 달러다.
박스터는 힐롬을 인수하면서 중환자 치료, 영양공급 등 기존 사업영역에서 모바일 헬스케어를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스터는 신장질환자를 위한 투석 시장 점유율이 높은 회사다. M&A를 통해 투석 환자를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데 힐롬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게 가능해진다. 박스터가 주목하는 것은 가정용 치료 시장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집에서 치료받길 원하는 환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의료 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고 비용을 낮추는 것은 병원들의 숙제가 됐다. 박스터는 힐롬과 함께 이런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환자가 집에 있는 시간에도 적절한 서비스를 받도록 도와주면 임상 결과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비효율적인 병원 서비스를 줄일 수 있다. 디지털 커넥티드 헬스케어를 이용해 환자에게 치료 상황을 상세히 알려줄 수 있다. 평소 건강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의사 진료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힐롬은 매출의 상당수를 미국 내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박스터가 구축한 글로벌 인프라를 활용하면 힐롬의 해외 매출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다. 이런 기술 협력을 토대로 두 회사 합병 후 2024년께 박스터는 연간 2억5000만 달러의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115억 달러 ‘빅딜’…MSD, 액셀레론 인수
미국 제약사 MSD가 액셀레론파마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당 180달러로 전체 계약규모는 115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인수합병(M&A)이다. MSD가 추진한 M&A 중에는 가장 큰 규모다. 거래는 4분기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액셀레론은 TGF-β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암, 섬유증,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상용화에 임박한 파이프라인은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후보물질인 ‘소타터셉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혁신 치료제로 지정받은 소타터셉트는 임상 3상 단계다. 업계에선 이 치료제가 상용화되면 매출이 20억 달러에 이르는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MSD는 이미 흡입형 폐동맥고혈압 치료제인 ‘MK-5475’를 보유하고 있다. 임상 2·3상 단계다. 소타터셉트와는 다른 기전의 치료제지만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액셀레론 인수 절차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MSD가 폐동맥 고혈압치료제 시장을 독점할 수 있어서다. FTC가 MK-5475 파이프라인을 매각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당초 MSD가 액셀레론을 인수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았던 이유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MSD는 액셀레론 인수 거래는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MSD가 보유한 파이프라인과 액셀레론의 소타터셉트가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약물이라는 것이다. MSD는 액셀레론 인수로 빈혈 치료제인 ‘레블로질’도 품에 안게 됐다. 액셀레론과 함께 이 치료제를 개발한 BMS는 레블로질 판매 규모에 따라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MSD에 지급해야 한다.
최근 들어 MSD는 M&A를 확대하고 있다. 블록버스터로 자리 잡은 면역관문억제제인 ‘키트루다’ 때문이다. 이 치료제 매출이 늘면서 투자자들은 키트루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2026년께 키트루다는 MSD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키트루다 특허 만료 예상 시기가 2028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도 MSD에는 부담이다.
이번에 인수를 결정한 엑셀레론 기업가치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파이프라인이 소타터셉트다. 예정대로 임상시험이 잘 진행돼 2024년 이 치료제가 출시된다면 MSD 전체 매출에서 키트루다가 차지하는 비율도 50%에서 48%로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올해 2월 MSD는 판디온테라퓨틱스의 인터루킨 IL-2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18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벨로스바이오는 28억 달러에 인수했다. ROR1 표적 항체와 약물을 결합한 항암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액셀레론은 많은 제약사가 인수 의사를 타진했던 기업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BMS였다. BMS는 셀젠을 인수하면서 셀진이 보유했던 액셀레론 지분 11.5%도 확보하고 있다. BMS는 심혈관 질환에 대한 심혈관 질환에 대한 관심도 높다. 마이오카디아를 131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이 회사의 주력 파이프라인은 폐쇄성 비후성 심근병 치료제 후보물질인 ‘마바캄텐’이었다. 화이자도 액셀레론 인수 후보로 거론돼왔다. 비아트리스, 비아그라 등 폐고혈압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최종 승자는 MSD로 결정됐지만 인수 협상 절차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액셀레론 지분을 7% 보유한 아보로캐피털이 MSD 인수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하면서다. 아보로캐피털은 MSD가 액셀레론을 헐값에 인수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MSD는 액셀레론을 인수를 위해 주가에 38% 프리미엄을 얹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이후 진행된 19개 바이오의약품 M&A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아보로캐피털은 지적했다. 이 기간 인수 기업이 제시한 평균 프리미엄은 주가의 89%였다.
TCR-T 플랫폼 확보한 로슈
T세포 치료를 활용한 암 극복 노력도 이어졌다. 로슈는 자회사인 제넨텍을 통해 어댑티뮨과 5개 암 표적을 개발하는 내용의 공동연구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1억5000만 달러이고, 전체 계약규모는 30억 달러다. 5년간 함께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인데 제품이 출시되면 미국 시장에서 발생한 이익과 비용을 절반씩 나눌 수 있다.어댑티뮨은 T세포의 수용체를 조작해 암세포의 펩타이드에 잘 결합하도록 만든 TCR-T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특정한 펩타이드와 강력하게 결합하는 수용체를 이용하는 이 기술은 SPEAR-T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1993년 옥스포드대에서 개발한 TCR 기술을 이용해 창업한 아비덱스가 시초다. 이후 어댑티뮨으로 이름을 바꿔 2015년 나스닥 상장했다.
이 회사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확인한 곳은 GSK다. 시리즈A 투자에 참여하는 등 협력관계를 이어왔다. GSK는 2017년 9월 라이선스 옵션을 행사해 NY-ESO를 표적으로 한 파이프라인을 품에 안았다. 지난해 1월엔 아스텔라스제약이 어댑티뮨과 손을 잡았다. CAR-T 치료제와 TCR-T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5000만 달러로 최대 9억 달러에 육박한 계약이었다.
제넨텍과의 협력 연구계약에 따라 어댑티뮨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활용한 동종 T세포 플랫폼을 이용해 임상 후보물질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이용해 T세포를 생산하는 게 어댑티뮨의 역할이다. 제넨텍은 T세포 수용체를 공급한다. 로슈는 임상시험과 상업화 절차 등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어댑티뮨 파이프라인 중 가장 속도가 빠른 것은 고형암 치료를 위한 ‘ADP-A2M4’다. 활막육종과 점액성·원형세포지방육종(MRCLS)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3상을 진행하고 있다. 두경부암, 식도암 환자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은 간암 파이프라인인 ‘ADP-A2AFP’다. 치료를 위해 1억 개의 T세포를 투여했다. 진행성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에서 환자 1명은 완전관해됐다. 11명 중 7명(64%)은 질병이 통제됐고 2명은 16주 이상 안정적으로 종양이 감소했다.
이지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