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더 이상 핵·미사일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 중에 제재 완화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2년 만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쏜 다음날인 20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한 말이다. 정 장관은 ‘미국도 같은 입장이냐’는 질문엔 “그렇다고 본다”고 답했다. 불과 이틀 전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대북 제재 이행 의지를 드러낸 것과는 상반된 답변이다.

‘기·승·전·제재완화’나 다름없는 정 장관의 말은 정부가 북한의 SLBM 발사 직후 보인 태도를 생각하면 그리 놀랍지 않다. 청와대는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에도 ‘도발’이나 ‘규탄’과 같은 단어는 없었다. 더 나아가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SLBM 발사가 대화의 장으로 나올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로 봐도 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런 해석이 맞고, 그런 해석이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답했다. 도발을 ‘도발’이라 하지 못하는 걸 넘어 도발을 ‘선의’로 치부하는 듯한 말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어려움과 난관이 있더라도 한반도 평화 공존, 공동 번영을 향한 발걸음을 결코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은 올 들어서만 여덟 번째지만 이번 도발은 종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SLBM ‘잠수함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잠수함 시험발사는 2년 전 북한이 감행한 수중 바지선 시험발사보다 한 단계 진전된 것으로 SLBM 개발의 최종 단계로 꼽힌다. 한·미 연합 탐지자산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등은 대부분 북쪽을 향하고 있다. 만일 북한 잠수함이 잠항해 남해 인근에서 SLBM을 쏘아올린다면 미사일 사전 탐지는 물론 요격도 어렵다는 뜻이다.

도발을 도발이라 하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정부의 입장은 연일 우리를 향해 “이중잣대”라고 비난한 북한을 의식한 것이 분명하다. 지난달 SLBM 잠수함 시험발사에 성공한 우리 군이 “도발”이라 규정했다면 북한은 또다시 원색적인 대남 비방을 내놨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중잣대는 핵무기 수십 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SLBM을 개발한 핵 비보유국인 우리와 자신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당한 비판에 북한의 마음이 상해 종전선언 논의를 망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북한으로부터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