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과학과 수많은 논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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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현지시간으로 이달 5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발표됐다. 세 명의 수상자 중 마나베 슈쿠로 박사와 클라우스 하셀만 박사는 전통적인 물리학보다는 지구과학에 가까운 분야의 연구자들로 다소 이례적인 수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는 노벨재단이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1880년 이후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는 1970년 이전까지 약 100년에 걸쳐 0.2도 정도 상승하다가, 1970년부터 지난 50년간은 그 상승폭이 급격히 커져서 0.7도가량 올랐다. 이는 축적된 기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의외로 많은 논쟁을 생산해왔다. 우리는 피상적으로 실험 또는 측정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을 과학적 방법론의 일부라 생각하고, 그렇게 관측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 역시 과학의 영역으로 여긴다. 그리고 흔히 과학은 각자 의견에 따른 논쟁의 여지를 주지 않고 정확한 답을 내려준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 이런 환상 속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논란 대상이라는 것이 의외라고 여겨지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의외성은 사실 전혀 의외가 아니고, 과학의 역사는 언제나 논란의 역사였다.
현재의 기후위기가 인간이 일으킨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인과관계를 밝혀내야 한다. 첫 번째는 이산화탄소로 대변되는 온실가스가 지구 온도 상승의 주범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기 중 증가한 이산화탄소가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 인과관계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 ‘실험을 해보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범지구적 규모의 100년짜리 인위적 기후 실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들의 상관관계로부터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문제로 압축된다.
기후위기 역시 다양한 목소리의 기후위기 부인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것을 보노라면 진실은 언젠가는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학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많은 의견 중 조금 더 타당하고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의견이 추려지는 자기정화의 과정이 바로 과학이 아닐까 싶다.
1880년 이후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는 1970년 이전까지 약 100년에 걸쳐 0.2도 정도 상승하다가, 1970년부터 지난 50년간은 그 상승폭이 급격히 커져서 0.7도가량 올랐다. 이는 축적된 기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의외로 많은 논쟁을 생산해왔다. 우리는 피상적으로 실험 또는 측정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을 과학적 방법론의 일부라 생각하고, 그렇게 관측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 역시 과학의 영역으로 여긴다. 그리고 흔히 과학은 각자 의견에 따른 논쟁의 여지를 주지 않고 정확한 답을 내려준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 이런 환상 속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논란 대상이라는 것이 의외라고 여겨지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의외성은 사실 전혀 의외가 아니고, 과학의 역사는 언제나 논란의 역사였다.
현재의 기후위기가 인간이 일으킨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인과관계를 밝혀내야 한다. 첫 번째는 이산화탄소로 대변되는 온실가스가 지구 온도 상승의 주범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기 중 증가한 이산화탄소가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 인과관계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 ‘실험을 해보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범지구적 규모의 100년짜리 인위적 기후 실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들의 상관관계로부터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문제로 압축된다.
지구과학자가 노벨물리학상 수상
그런데 통계학의 금언 중에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암시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즉 두 가지 변수, 예를 들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 표면의 온도를 측정한 결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빠르기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해서 그 자체로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를 일으켰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 표면에서 기후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변수 가운데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만을 고립시켜서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기후위기 부인자들은 인간이 지구 온난화를 유발했다는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원리를 앞세우기도 한다. 기후 문제에서는 정치적 신념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미리 정해놓고도 각자 본인의 입장을 과학으로 포장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흡연이 폐암원인' 40년 걸려 증명
이는 기후 문제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일례로 흡연이 폐암 유발 확률을 높인다는 상식에 가까운 사실 역시 과거에 비슷한 논쟁을 겪은 바 있다. 1898년 독일의 헤르만 로트만이라는 의대생은 담배 공장 근로자들의 높은 폐암 발생률이 미세한 담배가루 때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잘못된 결론이었지만 담배의 어떤 성분이 어떤 기작을 통해 암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상관관계로부터 인과관계를 유추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로부터 거의 15년이 지나서야 미국의 아이작 애들러가 담배가루가 아닌, 흡연을 폐암의 원인으로 지목했는데, 이 역시 정확한 폐암 발생 기작을 밝히고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과학이 반박 불가능한 진실만을 드러낸다는 환상에 빠지면 이처럼 소위 과학자들이 통일된 의견을 내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모습 자체가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연결고리를 부정할 빌미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담배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수행한 연구결과와 로비 활동 등을 통해 담배의 무해함을 집요하게 주장해왔고,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그 이후로 40여 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기후위기 역시 다양한 목소리의 기후위기 부인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것을 보노라면 진실은 언젠가는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학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많은 의견 중 조금 더 타당하고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의견이 추려지는 자기정화의 과정이 바로 과학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