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COMPANY] 근거중심의학(EBM)의 중심에 선 회사, 에비드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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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머크와 화이자가 공동개발한 ‘바벤시오’는 면역관문억제제 중 다섯 번째로 시장에 나온 신약이다. 이 약이 시판허가를 앞두고 있을 시기인 2017년, 시장은 이미 키트루다와 옵디보가 블록버스터 면역관문억제제로 자리매김한 뒤였다. 머크와 화이자는 정면승부를 하는 대신 앞서 나온 면역관문억제제도 손쓰지 못하는 희귀암으로 눈을 돌렸다.
메르켈세포암은 표준 치료법이 없는 희귀암이었다. ‘퍼스트 인 클래스(혁신신약)’의 자리가 아른거리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임상에 충분한 환자 수를 모으기가 어려웠다. 메르켈세포암은 미국 기준 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할 만큼 희귀암이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임상환자 덕분에 대조군을 둘 여유가 없던 머크와 화이자는 대조군이 없는 단일군 임상 2상을 진행했다. 그리고는 임상 2상의 임상적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 대조군(historical control)의 실제 임상 자료(RWD)를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에 제출했다. FDA는 2017년 3월, EMA는 같은 해 9월 바벤시오에 대해 추후 임상 3상을 조건으로 조건부 판매승인을 내렸다. RWD를 허가당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조인산 에비드넷 대표는 “바벤시오 외에도 블린사이토(희귀 백혈병 치료제), 잘목시스(혈액암 치료제) 등이 RWD를 제출해 조건부 승인을 얻었다”며 “심사 단계에서 RWD 가치가 커지고 있어 RWD를 발굴하는 의료 플랫폼 업체의 몸값도 함께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플랫폼 기업 에비드넷
에비드넷은 한미약품 정보전략실에서 신사업과 오픈 이노베이션을 담당했던 조 대표가 2017년 설립한 의료 데이터 플랫폼 업체다. 지난 9월 기준 국내 중·대형 병원 42곳과 손잡고 5700만여 명의 진료 데이터와 150억 건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조 대표는 “병원에 쌓인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학습하게끔 하거나 연구개발(R&D)에 이용하기 위해선 서로 각기 다른 서식으로 저장된 의무기록을 표준화하는 전처리가 필요하다”며 “표준화된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에비드넷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구축된 DB의 활용건수는 지난 9월 기준 9664건에 이르렀다.
수익 구조는 병원과 에비드넷이 ‘윈윈’할 수 있도록 했다. 병원은 서버에 쌓인 날것 상태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에비드넷은 이 데이터를 연구개발 등에 이용할 수 있게끔 표준화한다. 이렇게 표준화된 데이터는 제약사가 비용을 내고 열람한다. 제약사가 지불한 비용은 병원과 에비드넷이 나눠갖는다.
조 대표는 “날것 상태의 데이터는 물론 표준화한 데이터 또한 병원 서버에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문제도 없다”고 덧붙였다.
파트너십을 맺는 병원의 유입 요인도 강화했다. 경희대병원과 이대목동병원, 부산대병원 등은 병원 연구자들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리서치 보더 프리 존(Research Border Free Zone)’을 만들었다. 데이터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다른 병원에 있는 데이터도 연구 목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대조직이다.
조 대표는 “참여하는 병원이 늘어날수록 경쟁력이 커지기 때문에 참여 병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5대 병원’이라 불리는 대형 종합병원도 에비드넷의 고객사로 곧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병원과 진료 DB 구축 및 활용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상 사이트 선정부터 임상 대체까지
에비드넷은 병원에 있는 데이터를 표준화해 제약사에 제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새롭게 추가하고 있다.
‘에빅스 파인드’는 병원에 쌓인 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임상시험에 최적인 사이트를 찾아주는 서비스다. 조 대표는 “원하는 환자를 최대한 빠르게 모을 수 있는 기관에서 임상을 진행해야 비용과 시간을 모두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빅스 리서치’는 RWD를 이용한 연구를 지원하는 서비스다. 이미 시판된 약의 효능이 얼마나 좋은지를 비교 분석하는 것은 물론, 신약 개발에서도 과거 대조군 비교 등을 통해 단일군 임상을 지원할 수 있다. 마치 바벤시오가 미국 및 유럽 허가당국으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을 때처럼 말이다.
조 대표는 “FDA는 근거중심의학(EBM)을 바탕으로 RWD를 허가에 활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오래전부터 내놓고 있다”며 “과거엔 반드시 시험군과 대조군이 임상에 모두 필요했지만 이젠 대조군을 RWD로 대체하는 등의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몸값 오르는 의료 플랫폼 기업
해외시장에선 허가 및 심사 단계에서 RWD가 각광받으면서 RWD의 키를 쥔 의료 플랫폼기업을 대상으로 한 ‘빅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에비드넷과 유사한 의료 플랫폼 기업인 미국의 플랫 아이언헬스는 2018년 로슈가 2조 원에 사들였다. 칼라일그룹도 지난해 의료 데이터 업체 트라이넷엑스의 지분 절반을 인수했다. 금액은 비공개다.
조 대표는 아시아에서 에비드넷이 RWD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국내에선 에비드넷과 유사한 업체를 찾기 힘든 상태다. 아시아에선 어떨까. 그는 “헬스케어 데이터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정보기술(IT), 의료 데이터, 높은 수준의 의학자가 모두 필요한데 한국은 이 3박자를 갖춘 흔치 않은 나라”라며 “중국 및 일본보다 한국의 RWD가 그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정보
설립일 2017년
상장 여부 비상장
주요 사업 임상 관련 서비스 제공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정밀의료 서비스의 성장성 기대
by 정순욱 한국투자파트너스 이사
표준화를 통해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 국내외 9200여 건의 의료 연구를 지원한 저력이 있다. 또 신한생명, 아주대병원 등 20곳과 마이데이터 컨소시엄을 구축해 환자의 진료정보와 통합해 자신의 의료 데이터에 기반한 다양한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헬스케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 큰 성장이 기대된다.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메르켈세포암은 표준 치료법이 없는 희귀암이었다. ‘퍼스트 인 클래스(혁신신약)’의 자리가 아른거리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임상에 충분한 환자 수를 모으기가 어려웠다. 메르켈세포암은 미국 기준 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할 만큼 희귀암이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임상환자 덕분에 대조군을 둘 여유가 없던 머크와 화이자는 대조군이 없는 단일군 임상 2상을 진행했다. 그리고는 임상 2상의 임상적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 대조군(historical control)의 실제 임상 자료(RWD)를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에 제출했다. FDA는 2017년 3월, EMA는 같은 해 9월 바벤시오에 대해 추후 임상 3상을 조건으로 조건부 판매승인을 내렸다. RWD를 허가당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조인산 에비드넷 대표는 “바벤시오 외에도 블린사이토(희귀 백혈병 치료제), 잘목시스(혈액암 치료제) 등이 RWD를 제출해 조건부 승인을 얻었다”며 “심사 단계에서 RWD 가치가 커지고 있어 RWD를 발굴하는 의료 플랫폼 업체의 몸값도 함께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플랫폼 기업 에비드넷
에비드넷은 한미약품 정보전략실에서 신사업과 오픈 이노베이션을 담당했던 조 대표가 2017년 설립한 의료 데이터 플랫폼 업체다. 지난 9월 기준 국내 중·대형 병원 42곳과 손잡고 5700만여 명의 진료 데이터와 150억 건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조 대표는 “병원에 쌓인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학습하게끔 하거나 연구개발(R&D)에 이용하기 위해선 서로 각기 다른 서식으로 저장된 의무기록을 표준화하는 전처리가 필요하다”며 “표준화된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에비드넷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구축된 DB의 활용건수는 지난 9월 기준 9664건에 이르렀다.
수익 구조는 병원과 에비드넷이 ‘윈윈’할 수 있도록 했다. 병원은 서버에 쌓인 날것 상태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에비드넷은 이 데이터를 연구개발 등에 이용할 수 있게끔 표준화한다. 이렇게 표준화된 데이터는 제약사가 비용을 내고 열람한다. 제약사가 지불한 비용은 병원과 에비드넷이 나눠갖는다.
조 대표는 “날것 상태의 데이터는 물론 표준화한 데이터 또한 병원 서버에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문제도 없다”고 덧붙였다.
파트너십을 맺는 병원의 유입 요인도 강화했다. 경희대병원과 이대목동병원, 부산대병원 등은 병원 연구자들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리서치 보더 프리 존(Research Border Free Zone)’을 만들었다. 데이터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다른 병원에 있는 데이터도 연구 목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대조직이다.
조 대표는 “참여하는 병원이 늘어날수록 경쟁력이 커지기 때문에 참여 병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5대 병원’이라 불리는 대형 종합병원도 에비드넷의 고객사로 곧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병원과 진료 DB 구축 및 활용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상 사이트 선정부터 임상 대체까지
에비드넷은 병원에 있는 데이터를 표준화해 제약사에 제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새롭게 추가하고 있다.
‘에빅스 파인드’는 병원에 쌓인 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임상시험에 최적인 사이트를 찾아주는 서비스다. 조 대표는 “원하는 환자를 최대한 빠르게 모을 수 있는 기관에서 임상을 진행해야 비용과 시간을 모두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빅스 리서치’는 RWD를 이용한 연구를 지원하는 서비스다. 이미 시판된 약의 효능이 얼마나 좋은지를 비교 분석하는 것은 물론, 신약 개발에서도 과거 대조군 비교 등을 통해 단일군 임상을 지원할 수 있다. 마치 바벤시오가 미국 및 유럽 허가당국으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을 때처럼 말이다.
조 대표는 “FDA는 근거중심의학(EBM)을 바탕으로 RWD를 허가에 활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오래전부터 내놓고 있다”며 “과거엔 반드시 시험군과 대조군이 임상에 모두 필요했지만 이젠 대조군을 RWD로 대체하는 등의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몸값 오르는 의료 플랫폼 기업
해외시장에선 허가 및 심사 단계에서 RWD가 각광받으면서 RWD의 키를 쥔 의료 플랫폼기업을 대상으로 한 ‘빅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에비드넷과 유사한 의료 플랫폼 기업인 미국의 플랫 아이언헬스는 2018년 로슈가 2조 원에 사들였다. 칼라일그룹도 지난해 의료 데이터 업체 트라이넷엑스의 지분 절반을 인수했다. 금액은 비공개다.
조 대표는 아시아에서 에비드넷이 RWD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국내에선 에비드넷과 유사한 업체를 찾기 힘든 상태다. 아시아에선 어떨까. 그는 “헬스케어 데이터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정보기술(IT), 의료 데이터, 높은 수준의 의학자가 모두 필요한데 한국은 이 3박자를 갖춘 흔치 않은 나라”라며 “중국 및 일본보다 한국의 RWD가 그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정보
설립일 2017년
상장 여부 비상장
주요 사업 임상 관련 서비스 제공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정밀의료 서비스의 성장성 기대
by 정순욱 한국투자파트너스 이사
표준화를 통해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 국내외 9200여 건의 의료 연구를 지원한 저력이 있다. 또 신한생명, 아주대병원 등 20곳과 마이데이터 컨소시엄을 구축해 환자의 진료정보와 통합해 자신의 의료 데이터에 기반한 다양한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헬스케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 큰 성장이 기대된다.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