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에서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평화로운 은퇴는 쉽지 않다. 영화<무숙자(My name is nobody), 1973>에서 한때 서부 최고의 총잡이였던 주인공은 여생을 평화롭고 자유롭게 보내고 싶어 하지만 전설적인 그를 이겨야 새로운 전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법자들은 계속 그를 쫓아다니면서 그의 자발적 은퇴를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젊은 날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슬기로운 은퇴 시점을 준비해야만 한다. 은퇴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소프트랜딩이 아닌 충격적인 불행한 마침표를 찍게 되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례를 보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여생을 맞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 줄거리 요약>
서부 개척시대가 저물어 가는 무렵, 무법자들은 전설적인 총잡이 백 볼러가드(헨리 폰다 분)를 물리치고 천하제일의 명성을 떨칠 야망에 불타게 된다. 하지만 나이 든 잭은 지긋지긋한 총잡이 세계를 은퇴하고 유럽으로 떠나 평화롭고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 한편 어릴 적부터 잭을 우상으로 여기던 독특한 방랑자 노바디(테렌스 힐 분)가 잭의 주변을 맴돌며 그의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깊어지기 시작한다. 잭은 은퇴를 위해 금광의 이권을 불법적으로 주무르는 금광 업자 설리반과 현실적으로 타협하지만 거대한 조직 폭력조직인 황야의 무법자 '와일드 번치'로 부터 위협을 받게 되면서 그가 원하는 은퇴가 순조롭지 못하게 흘러간다. <관전 포인트>
A. 노바디(Nobody)라고 불리는 방랑자의 정체는?
어릴 적부터 총잡이 잭 볼러가드를 우상처럼 섬기던 노바디는 언젠가는 자신도 잭과 같은 전설적인 총잡이가 되고 싶어 하는 방랑자이다. 그는 배가 고플 때면 강에서 몽둥이로 고기를 때 잡아먹기도 하고, 마을에서 자신을 이방인으로 무시하면 즉각적으로 응징하고, 카니발 행사장에서 흑인들의 얼굴에 음식을 무차별적으로 던지는 게임으로 돈을 버는 백인의 버릇을 고쳐주기도 하는 정의감이 있는 인물이다. 특히 술집에서 만나게 된 와일드 번치 악당들을 신묘한 솜씨로 혼내주자 금광 업자 설리반은 그를 기용하여 전설적인 총잡이 잭 볼러가드를 제거하려고 돈으로 매수를 시도한다.
B. 잭이 자신의 동생을 죽인 금광 업자를 만나 한 행동은?
잭은 자신의 동생 네바다 키드를 죽인 사악한 금광 업자 설리반을 만나 그를 죽이는 복수 대신 그에게서 유럽으로 떠날 뱃값 500달러와 금을 탈취해 떠난다. 이런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는 노바디에게 잭은 "네바다는 내 동생이었지만 등 뒤에서 총을 쏘는 비열한 악당이었다"라며 동생에 대한 복수가 부질없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C. 막강한 와일드 번치 패거리들을 물리친 전략은?
금광 업자 설리반과 잭의 관계를 의심한 와일드 번치 일당 150명은 유럽 행 배를 타기 위해 뉴올리언스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잭을 구름떼처럼 공격해 온다. 이때 잭은 그들이 평소 금속 장식으로 번쩍이는 안장에 개인용 다이너마이트를 소지하고 다닌다는 것을 눈치채고 10마일 밖에서 정확히 다이너마이트 가방에 라이플로 총알을 명중 해 거대 군단을 와해시킨다. 이를 지켜본 노바디는 "역사에 남을 만해"를 연신 되뇌며 위대한 신화를 탄생시킨 잭에게 탄복한다.
D. 은퇴를 희망하는 잭에게 노바디가 제시한 방법은?
금광 업자 설리반의 금괴가 실린 기차를 탈취한 노바디는 기차를 기다리던 잭과 재회하면서 평화로운 은퇴를 원하는 잭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죠, 죽어주는 거죠"라며 은퇴의 묘책을 제시한다. 드디어 번화한 마을 중심가에서 많은 사람과 사진사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과 대결을 벌이게 되고 결국, 이 대결에서 노바디가 먼저 총을 뽑아 잭은 공식적으로 사망하지만, 사실은 유럽으로 자유로운 길을 떠나게 해준다.
E. 잭과 노바디의 관계는?
노바디가 잭에게 "사나이 중의 사나이 우리의 희망"이라며 띄우자 노바디에게 "누구를 추종하면 질투를 하게 되고 허세를 부리게 되지. 속 차리라고, 잘난척 하기도 전에 죽을 테니까"라며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준다. 사실은 노바디가 밉지 않았던 잭은 노바디의 모자에 총을 쏘아 구멍을 내면서 그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충고를 해준 것이다. 두 사람만의 감쪽같은 자작극 대결로 잭은 안전하게 유럽으로 은퇴의 길을 떠날 수 있었고 노바디는 잭을 이긴 새로운 전설로 서부에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잭은 평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들게 산 스타일이었지만 노바디는 위험한 상황도 즐기며 넘길 줄 아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지만, 두 사람은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관계로 진한 우정과 의리가 있는 브로맨스(bromance)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경쾌한 OST가 살벌한 결투의 연속에서도 코믹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완성해 준다. <에필로그>
전설적인 총잡이였던 잭은 결국 죽어야만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세상에서 출세하고 명성을 얻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원할 때 자유롭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잘나갈 때 서서히 가진 것들을 나눠주고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야 불행하지 않은 자발적 은퇴가 가능해진다. 오늘 새롭게 올라오는 미래의 전설들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경험을 아낌없이 물려주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라질 준비자세가 필요하다. 출세보다 어려운 은퇴의 길 잭이 떠나며 노바디에게 했던 의미심장한 말에서 공감하게 된다. "자네도 길바닥에 쓰러뜨려 줄 누군가를 만나야 할텐데, 그 방법만이 방랑자가 이 세상을 떴다는 걸 증명해 줄 게 아닌가?"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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