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시조의 한역] 동창이 밝았느냐, 남구만, 이형상, 강성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1. 남구만(南九萬) 선생의 한역 : ≪약천집(藥泉集)≫
東方明否鸕鴣已鳴(동방명부로고이명)
飯牛兒胡爲眠在房(반우아호위면재방)
山外有田壟畝闊(산외유전롱무활)
今猶不起何時耕(금유불기하시경)

[주석]
東方(동방) : 동방, 동쪽. / 明否(명부) : 밝았느냐? / 鸕鴣(노고) : 노고지리라는 뜻으로 쓴 한자어인 듯한데 이 말의 출처나 용례(用例)가 확인되지 않는다. 보통 鸕는 가마우지를 가리키고, 鴣는 자고새를 가리킨다. / 已(이) : 이미, 벌써. / 鳴(명) : 울다.
飯牛兒(반우아) : 소를 먹이는 아이, 소치는 아이. / 胡爲(호위) : 어째서, 무엇 때문에. / 眠在房(면재방) : 방에서 잠을 자다.
山外(산외) : 산 밖, 산 너머. / 有田(유전) : 밭이 있다, 있는 밭. / 壟畝(농무) : 밭이랑. / 闊(활) : 넓다.
今(금) : 지금. / 猶不起(유불기) : 아직 일어나지 않다. / 何時(하시) : 어느 때, 언제. / 耕(경) : 밭을 갈다.

[한역의 직역]
동방이 밝았느냐? 노고지리가 이미 운다
소 먹이는 아이는 어찌 방에서 잠만 자냐?
산 너머에 있는 밭은 이랑이 넓고 넓은데
지금도 아직 일어나지 않으니 언제 갈꼬?

2. 이형상(李衡祥) 선생의 한역 : ≪병와집(甁窩集)≫
東方欲曙未(동방욕서미)
鶬庚已先鳴(창경이선명)
可憎牧竪輩(가증목수배)
尙耽短長更(상탐단장경)
上平田畝長(상평전무장)
恐未趁日耕(공미진일경)

[주석]
欲曙未(욕서미) : 밝아지려는가?
鶬庚(창경) : 꾀꼬리. 이 한자어가 노고지리라는 의미로 쓰인 예를 역자는 찾지 못하였다. / 已先(이선) : 이미 먼저, 이미 앞서.
可憎(가증) : 밉살스럽다, 얄밉다. / 牧竪輩(목수배) : 소를 치는 녀석들.
尙(상) : 오히려, 아직도. / 耽(탐) : ~을 탐하다, ~에 빠지다. / 短長更(단장경) : 長短更(장단경). 옛날에 일경 이경 삼경을 알려 주던, 짧거나 길던 ‘경소리’인데 여기서는 깊은 밤이나 한잠 정도의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上平(상평) : 윗녘에 있는 들. / 田畝(전무) : 밭이랑. /長(장) : 길다.
恐(공) : 아마도, 아마도 ~할 듯하다. / 未趁日耕(공미진일경) : 해를 따라 밭갈이를 <끝내지> 못하다. 해가 질 때까지 밭갈이를 다 끝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한역의 직역]
동방이 밝아지려는가?
꾀꼬리가 이미 먼저 우네
소치는 얄미운 녀석들은
아직도 한잠에 빠졌구나
윗녘 들 밭이랑은 길거늘
오늘 해지도록 다 못 갈듯...

3. 태헌의 한역
東窓明否雲雀鳴(동창명부운작명)
牧童如前遊夢城(목동여전유몽성)
峴外有田隴尤永(현외유전롱우영)
何日何時能盡耕(하일하시능진경)

[주석]
東窓(동창) : 동쪽으로 난 창. / 雲雀(운작) : 종다리, 종달새. 노고지리는 종다리의 고어이다.
牧童(목동) : 소치는 아이, 목동. / 如前(여전) : 여전히, 아직도. / 遊夢城(유몽성) : 꿈의 성을 노닐다. 잠을 잔다는 의미로 역자가 의역한 표현이다.
峴外(현외) : 재 밖, 재 너머. / 隴(농) : 밭이랑. / 尤(우) : 더욱. 원 시조에 없는 말을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임의로 추가한 글자이다. / 永(영) : 길다.
何日(하일) : 어느 날. 원 시조에 없는 말을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임의로 추가한 한자어이다. / 能盡耕(능진경) : <밭을> 모두 갈 수 있다.

[한역의 직역]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는구나
목동은 여전히 꿈의 성을 노니는 듯
재 너머 있는 밭은 이랑 더욱 긴데
어느 날 어느 때에 모두 갈겠느냐?

[한역 노트]
대개 초등학교 시절에 배우고 외우기도 했을 이 시조는 원작자를 남구만(南九萬:1629~1711) 선생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명한(李明漢:1595~1645) 선생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진행 중에 있고, 또 어느 쪽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원작자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시조의 내용이 평이한 관계로 이에 대해 미시적으로 살펴보는 대신에, 좀은 특별하게 번역하게 된 경위와 소개하게 된 계기 등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남구만 선생과 이형상(李衡祥:1653~1733) 선생은 둘 다 공교롭게도 30자의 한자로 한역(漢譯)하였다. 그러나 남구만 선생은 8언과 7언이 섞인 고시를, 이형상 선생은 5언 6구의 고시를 그 형식으로 취하였다. 역자는 1차적으로 이 한역시들의 형식보다는 두 선생이 원시(原詩)인 시조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의역한 것에 주목하였다. 시기적으로 번역이라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때였고, 또 인멸(湮滅)을 우려하여 한자로 기록해둔다는 정도의 의미로 가볍게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두 선생의 느낌이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의역한 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선생이 만일 한역한 시 또한 독자적인 시임을 자각하면서 번역에 임했다면, 최소한 남구만 선생의 경우는 8언과 7언이 섞인 고시 형식을 결코 취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두 선생이 노고지리의 한역어로 선택한 “노고(鸕鴣)”와 “창경(鶬庚)”이 역자가 판단하기에는 노고지리의 요즘 말인 종다리 혹은 종달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고, 사용 빈도 역시 매우 낮은 한자어라는 사실에 부차적으로 주목하였다. 두 선생이 그 한자어를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중국이나 우리 고전에서 그 용례조차 찾기 쉽지 않은 한역어가 독자인 역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대략 이러한 이유로 고명한 두 선생의 한역시가 이미 전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까마득한 후학(後學)이자 얼척없이 과문(寡聞)인 역자가 ‘또 다시 한역’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분명하게 밝히는 바이지만, 역자가 한역을 새로 하게 된 이유는 무슨 호승지심(好勝之心)이 발동한 때문이 결코 아니다. 두 선생이 기록이라는 의미로 의역한 자취를 이어, 좀 더 직역에 가까운 한역시도 보태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겨우 두 글자 차이지만 글자 수를 줄여 이를 실행에 옮긴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한역시에 대한 호오(好惡)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역시 간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우열이 아니라 관점과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조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데, 세상의 복잡다단한 일에 대한 해석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가을걷이도 얼추 다 끝나가는 이때에 웬 노고지리에 밭갈이 시조냐고 핀잔할 독자가 계실지 모르겠다. 꼭 계절에 맞추어 시를 소개해야 할 의무가 역자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그렇게 하려고 해온 지금까지의 정황에 비추어보자면 다소 의외인 것도 사실이다. 사연을 밝히자면 이렇다. 얼마 전에 국문학이 전공인 한 벗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였는데, 역자의 시조 한역시를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며, 언제 한 턱 낼 테니 칼럼으로도 만나게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맹세코 역자가 그 ‘한 턱’이라는 말에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 벗의 뜻이 고맙고 졸역이나마 활용해준 정성(?) 또한 고마워, 상강(霜降)도 지난 이즈음에 거칠게 몇 줄 글로 엮어 독자들에게 소개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세상을 살다가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별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남구만 선생의 한역시는 압운자가 ‘鳴(명)’·‘房(방)’·‘耕(경)’이고, 이형상 선생의 한역시는 압운자가 ‘鳴(명)’·‘更(경)’·‘耕(경)’이며, 역자의 한역시는 압운자가 ‘鳴(명)’·‘城(성)’·‘耕(경)’이다.

2021. 10. 26.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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