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영화의 기둥' 이태원 영면에…'서편제'·'춘향뎐' 등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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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 발인
영화계 인사들 조문 "한국 영화 알리는데 기여"
영화계 인사들 조문 "한국 영화 알리는데 기여"
한국 영화계의 거목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의 발인식이 26일 엄수됐다. 향년 83세.
고(故) 이태원 전 대표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 대표의 발인은 26일 오전 10일 거행됐으며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고인은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임 감독을 비롯한 정일성 촬영감독, 임상수 감독, 정지영 감독, 배우 최민식, 문성근, 조승우, 신현준, 배성우 등이 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찾아 조문했다.
문성근은 조문을 마친 뒤 "고인은 한국 영화의 기둥이었다"며 "임권택 감독과 한국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신 어른이셨다"고 말했다.
배우 김규리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제서야 소식을 접한다"며 "제게 영화 '하류인생'으로 생애 처음 베니스국제영화제에도 가볼 수 있게 해주셨는데 너무 죄송하고 안타깝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전 대표는 1983년 대흥영화사를 설립하고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시작으로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등 영화를 제작했다. 고인은 임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충무로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서편제'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며, '취화선'은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 칸 영화제 수상작이 됐다.
고인은 1988년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 1990년대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을 지냈고 1998년엔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한국 영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2002), 백상예술대상 특별상(2003) 등을 받았다.
이 전 대표는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2004)을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고(故) 이태원 전 대표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 대표의 발인은 26일 오전 10일 거행됐으며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고인은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임 감독을 비롯한 정일성 촬영감독, 임상수 감독, 정지영 감독, 배우 최민식, 문성근, 조승우, 신현준, 배성우 등이 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찾아 조문했다.
문성근은 조문을 마친 뒤 "고인은 한국 영화의 기둥이었다"며 "임권택 감독과 한국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신 어른이셨다"고 말했다.
배우 김규리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제서야 소식을 접한다"며 "제게 영화 '하류인생'으로 생애 처음 베니스국제영화제에도 가볼 수 있게 해주셨는데 너무 죄송하고 안타깝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전 대표는 1983년 대흥영화사를 설립하고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시작으로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등 영화를 제작했다. 고인은 임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충무로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서편제'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며, '취화선'은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 칸 영화제 수상작이 됐다.
고인은 1988년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 1990년대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을 지냈고 1998년엔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한국 영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2002), 백상예술대상 특별상(2003) 등을 받았다.
이 전 대표는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2004)을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