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 통신업체 차이나텔레콤의 미국 내 사업을 전면 금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인 류허 부총리와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화상 통화를 한 지 몇 시간 만에 나온 조치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화전양면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퇴출당하는 중국 업체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6일(현지시간) 중국 최대 유선통신 사업자이자 3위 이동통신 사업자인 차이나텔레콤의 미국 내 사업 면허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차이나텔레콤은 60일 이내에 미국 내 모든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영업 활동을 해왔다.

FCC는 “차이나텔레콤이 중국 정부의 영향과 통제를 받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면허 취소 이유를 밝혔다. 차이나텔레콤이 미국을 겨냥한 첩보 활동이나 다른 해로운 활동에 가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차이나텔레콤은 “실망스러운 조치”라며 “고객에게 계속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2019년 기준으로 세계 3억3500만 명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선 중국계 미국인 400만 명, 중국인 관광객 연 200만 명, 중국인 유학생 30만 명, 중국 기업 1500여 개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와 별개로 FCC는 또 다른 중국 통신회사 차이나유니콤과 퍼시픽네트워크 및 그 자회사 콤넷에도 안보 위협에 대해 소명하도록 했다. 앞서 차이나텔레콤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등 3개 회사는 지난 5월 뉴욕증시에서 상장폐지가 결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군과 연계된 기업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금지하면서다.

계속되는 미·중 갈등

블룸버그통신은 FCC의 발표에 앞서 이날 오전 옐런 재무장관과 류 부총리가 화상 통화를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 측이 “실용적이고 솔직하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표현하면서 무역과 대만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온 미·중 관계 개선 신호로 여겨졌다. 하지만 몇 시간 뒤 FCC가 차이나텔레콤의 면허를 취소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다.

차액결제거래(CFD) 플랫폼 서비스 업체 IG아시아의 준롱엽 전략가는 “차이나텔레콤의 사업 면허 취소는 미·중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중국 기업에 대해 더 많은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1월 중국과 1단계 무역 합의를 맺은 이후에도 연간 2500억달러(약 294조원)에 달하는 중국 제품에 기존 25% 관세를 계속 부과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 제품에 맞불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달 들어 대중 고율 관세 유지와 1단계 무역 합의 준수 요구를 핵심으로 하는 대중 통상 전략의 기본 골격을 밝히기도 했다.

시 주석이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한 것은 미국 견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은 “최근 국제적으로 발생한 몇 가지 큰일은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의 전략적 자주를 주장한 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 기조에 동참하지 말라는 경고와 유럽 간 관계 개선을 모색하자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