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창고로 쓰이다
도심재생으로 재탄생
동네 분위기에 맞춰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
유리문으로 개방성 강조

단순한 듯 다양한 시각적 깊이
이 건물은 과거 청파로변에 있던 옛 중림시장과 궤를 같이해온 창고 공간이다. 이름 그대로 남는 물건을 자투리 터에 쌓아두고자 얼기설기 지어 올린 가건물에 가까웠다. 중림시장은 1980년대까지 서울에서 번창한 수산시장이었지만 이후 쇠락하면서 함께 쓰이던 이 창고 건물들 역시 동네 흉물로 전락했다.2018년 서울로 주변 도심재생사업의 대상지가 되면서 중림창고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됐다.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이지만 옛 건물의 느낌과 색감을 여전히 남겨 둬 주변 풍경과 괴리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내부는 현대식 공간감에 힘을 준 설계로 세련된 느낌이 든다. 현재 동네 주민이 함께 쓰는 공공시설로, 또 동네 책방으로 사용되며 중림동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보이도록 건물 1층마다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평상시 문을 열어두면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렇게 위계를 없앤 건물은 평상시 인근 주민에게 휴식과 모임의 장소, 또 한시적으로 외부인이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 살리려 노력
강 소장은 골목길, 그리고 마주한 성요셉아파트 1층 상가들과의 조화를 생각해 건물을 설계했다. 원래 있었던 듯한 건물이 되길 희망한 동네 주민들의 바람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외관이다. 회색이 가진 특유의 색감 때문인지 2019년 지어진 비교적 새 건물임에도 수십 년이 지난 오래된 건물 같은 느낌을 준다. 가만히 보면 그 옛날 회색빛 콘크리트 벽돌로 얼기설기 세운 동네 담벼락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같은 색감 덕분에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만일 지나치게 매끈하고 화려한, 또 밝은 색상과 재료로 지어졌다면 마주하고 있는 성요셉 아파트와 큰 이질감이 느껴졌을지 모른다. 원래 오래전 한 골목에 같이 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건물 외관은 단순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단 한 곳도 같은 광경을 볼 수 없다. 시각적 다양함이 숨 쉬고 있는 건물이다. 중림창고는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우수상’과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