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브루스 링컨 지음
허승철 옮김
삼인 / 532쪽│3만2000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미국의 대표적인 러시아사 전문가 브루스 링컨이 2000년에 남긴 유작이다. 그가 쓴 12권의 저서 중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됐다. 18세기 초 도시를 건설할 때부터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 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 이 도시를 배경으로 일어났던 역사를 깊이 있게 짚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시작부터 러시아인에게 주어진 고난과 간난(艱難)을 극복해낸 집념과 의지를 상징한다. 땔감나무 섬, 돌의 섬, 염소의 섬으로 불렸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은 척박한 곳이었다. 핀란드만에서 흘러드는 역류 때문에 바닷물이 자주 범람했고, 9월부터 내린 눈을 5월까지 볼 수 있었다. 수질은 나빴고 토양은 습했다. “도시 건설 과정에서 사망한 노역자 숫자가 전쟁 전사자보다 많았다”는 역사학자 클류쳅스키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러시아인들에게 성스러운 땅에 세워진 ‘약속의 땅’이었다. 계획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제멋대로 뻗어 나간 모스크바가 절대 지니지 못한 정확성과 규칙성이 곳곳에 배어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인들은 이 땅에서 유럽과 접하는 문을 열었다. 이곳으로 유입된 암스테르담과 베네치아, 파리, 로마의 유산은 도시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베르사유를 능가하는 페테르고프 궁전, 바로크식 최후의 위대한 건축물인 겨울궁전(에르미타주 박물관), 파리의 샹젤리제보다 더 웅장한 넵스키 대로에는 유럽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
러시아의 ‘고귀한 영혼’들은 도시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푸시킨과 안나 아흐마토바, 이오시프 브로드스키가 도시 골목에서 시를 읊었고, 니콜라이 고골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도시민의 애환을 작품 속에 녹였다. 글린카와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는 도시에서 캐낸 슬라브적 정서를 악보에 담았다.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귀족적 주제, 하층민의 멜로디, 동서양의 민속적 모티프를 녹여낸 곳도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동시에 이 도시는 음험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이 공존하는 정치의 공간이었다. 음모와 방탕, 부정부패가 판친 예카테리나 여제의 궁중정치, 데카브리스트와 표트르 크로폿킨, 블라디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 같은 혁명가들의 피와 원한이 서린 곳이었다. 그리고 300년 가까이 존속한 로마노프 왕가의 안방에서 ‘피의 일요일’ 직후 “차르는 없다”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적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했다. 화려한 상점과 멋진 아파트 뒤에 있는 쓰레기로 막히고 썩은 물이 고인 통로로 서민들이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 20세기 초엔 아파트 방 하나에 평균 16명이 거주했고, 6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지하 저장고와 벽장, 계단 밑에서 살았다.
20세기 들어 이 도시는 러시아에 닥친 시련을 극복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거듭났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 썩은 고기와 곰팡이 핀 빵 조각으로 연명하던 도시민들은 한 세대 후 ‘도시를 갈아엎겠다’는 히틀러에 맞서 허리띠를 끓여먹고 탱크와 트럭용 윤활유까지 마시며 900일 넘게 버텼다.
우연인지 도시를 대표하는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에는 고난을 이겨내는 러시아 민중의 집념이 집약돼 있다. 핀란드의 깊은 숲속에서 18세기 기술의 한계를 넘어 무게 1360t, 높이 9m의 거대한 바위를 통째로 옮긴 것은 단지 채찍질만으론 이룰 수 없었던 일이다.
한없이 아름다우면서 덧없는 도시, 죄와 벌이 공존하는 공간,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언제나 ‘마법적 힘’으로 러시아인들을 끌어들였고, 이정표를 제시해왔다. 그리고 푸시킨의 표현처럼 청동 기마상은 아직도 달리고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