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일의 미래와 AI
필자의 회사 오라클은 지난해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 근로자들의 심리변화를 살펴본 ‘업무환경과 AI(AI@Work)’ 조사결과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엔 팬데믹이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봤다면,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경력에 대해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서의 상세한 내용은 곧 공개할 예정이지만, 이 조사에 따르면 75%가 넘는 사람들이 지속되는 팬데믹 상황과 뉴노멀 업무환경에서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정체돼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서 외로움과 단절감을 느끼게 돼 이젠 정체된 자신의 경력개발에 도움을 얻고자 로봇, 그러니까 AI에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다는 반응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대한민국 근로자들은 사람보다 AI에 대한 신뢰가 글로벌 평균 수준보다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나아가 향후 자신의 경력개발에 AI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의 조사결과를 보며 2013년 발표된 영화 ‘Her’가 생각났다. 영화는 부인과 별거 중인 한 남자가 새로운 컴퓨터의 AI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이야기로 다룬다. 주인공은 사람들의 대필편지를 서비스해주는 직업을 가진 남자로, AI와 사람 모두에게 사랑의 감정을 둘러싸고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여러 갈등과 마음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종반에 가선 작은 깨달음을 얻은 듯 보인다. 그리고 건물 옥상에서 도시의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영화가 개봉했던 8년 전만 해도 시대를 많이 앞선 상황설정이라 여겼는데, 오늘날 우리가 AI를 대하는 인식과 기대를 보자면 이제 이 영화적 설정은 결코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됐다.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적인 환경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기술의 진보는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 우리 개인들은 더 큰 혼란과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해 점점 자신과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 안에서 편견 없고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내가 필요할 때 받을 수 있다면, AI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미래에 신뢰와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도우미 역할은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활용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는 그동안 생각보다 정작 중요하지 않았던 것에 너무 에너지를 소모해왔던 것은 아닌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외와 정체성에 대한 해결의 출발점은 가치에 비해 우리의 에너지가 넘치게 소모됐던 부분을 찾아내고, 그런 부분은 AI의 힘을 빌려 효율화하고, 더욱 가치 있고 중요한 것에 사람이 직접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