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경영자나 정치인은 말할 기회가 많다. 그때마다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뒤돌아서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애매할 때가 많다.

모든 연설은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야 하는데도, 그들의 발언은 날마다 새 소식을 전하는 뉴스 같다.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같은 내용을 그대로 다시 내보내는 뉴스는 없다. 사건의 전개 양상에 따라 다음 뉴스에서는 추가 정보를 제공한다.

광고는 다르다. 한번 만든 광고는 카피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반복한다. 짧게는 한 달, 보통은 6개월, 길게는 3년도 반복한다. 단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까닭은 광고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기억시키려는 목적 때문이다.

경영자나 정치인이 메시지를 자주 바꾸면 시간이 지난 다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떠한 단어나 이미지도 남지 않는다.

한 표가 소중한 선거판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후보는 메시지를 자주 바꾸고 싶은 과욕을 버리고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하나의 메시지만 채택했다.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맥아더 장군의 전속부관 생활을 무려 9년 동안이나 묵묵히 수행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며,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한 미국의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아이젠하워의 정치광고 ‘아이크’ 편 (1952)
아이젠하워의 정치광고 ‘아이크’ 편 (1952)
아이젠하워의 정치광고 ‘아이크’ 편(1952)을 보자. 1952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선거 참모들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아이디어를 찾느라 고심하다 선거 캠페인을 전문가에게 맡겼다.

“나는 아이크가 좋다(I like Ike).” 어빙 베를린(Irving Berlin)이 쓴 짧은 카피다. 아이크(Ike)는 아이젠하워의 애칭이다.

카피가 평범하다며 선거 참모의 90%가 반대했지만, 아이젠하워는 광고 전문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군인다운 간명한 결정이었다.

살벌한 경쟁이 펼쳐지는 대통령 선거전에서 아이젠하워는 “나는 아이크가 좋다”라는 하나의 메시지로 유권자 곁으로 다가갔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제3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광고에서 쓰인 알파벳은 아이(i), 엘(l), 케이(k), 이(e)라는 네 글자다. 애칭 아이크(Ike)를 활용해 “아이 라이크 아이크”를 수차례 반복했다.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한 것.

“I like Ike”는 수사학에서 말하는 유음중첩법(類音重疊法, paronomasia)을 활용한 카피다. 유음중첩법이란 음은 비슷하지만 의미는 다른 단어를 결합시켜 리듬감을 살리고 의미의 강도를 심화시키는 일종의 말놀이(말장난)인데, 우리나라 판소리 사설에서도 자주 쓰였다.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으로서의 인기나 한국전쟁을 반드시 끝내겠다는 선거 공약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지만, 정치 슬로건도 한 몫 한 것이 분명하다.

선거 참모들은 다른 후보자처럼 접근하지 않았다. 많은 자랑거리를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나는 아이크가 좋다”로 승부수를 던졌으니, 알파벳 네 개가 대통령을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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