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아이디어 좋고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이면 뭐합니까. 변호사법에 막혀 벤처캐피털(VC)에서 투자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리걸테크 기업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리걸테크 기업이 각종 규제에 막혀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률 서비스 기업은 사실상 외부 투자를 받지 못하게 돼 있는 변호사법이 대표적인 리걸테크의 ‘규제 대못’으로 꼽힌다. 외부로부터 투자받으면 변호사의 독립성이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만들어진 규정이다.

하지만 법률 서비스 시장의 성장과 소비자 편의 증진을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리걸테크 VC투자 사실상 전무

변호사법 대못 규제에…리걸테크, 투자 막히고 서비스 '불법' 낙인
29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누적 벤처투자 규모는 5조259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리걸테크 기업들에 대한 VC 투자는 미미한 상황이다. 판결문 검색, 비대면 계약서 체결 등 일부 영역에 대한 투자만 간간이 이뤄질 뿐 법률문서 작성을 도와주는 등 법률 업무에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엔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리걸테크 기업에 대한 외부 투자가 저조한 것은 현행 변호사법상 동업금지 규정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해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선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변호사 고유 업무를 하는 기업에 VC, 사모펀드(PEF) 등이 투자를 하더라도 배당을 주거나 투자에 대한 이익을 공유할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리걸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법률 문서 작성 자동화, 법조문·판결문 등 정보 검색, 변호사 중개, 소송 통계·예측, 온라인 분쟁 해결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법률문서 작성을 비롯한 변호사 고유 업무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효율성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는 변호사는 외부 투자를 유치할 수 없다. 직접 마련한 자금을 토대로 사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숙련도가 높은 고연봉의 개발자를 채용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게 리걸테크 기업 관계자의 공통된 얘기다.

리걸테크 서비스 ‘등기맨’을 운영하는 최철민 최앤리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동업금지 조항은 과거 ‘사무장 로펌’ 등을 막기 위해 나온 조항”이라며 “시대 흐름에 맞춰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변호사와 비(非)변호사의 동업·이익분배 금지를 완화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2018년 추진했지만 변호사업계의 거센 반발로 국회에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리걸테크 시장 육성을 위해 이익을 공유하는 형태의 사업 모델을 이미 허용한 영국 등 다른 국가들과 대조적이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변호사)는 “국내에서도 핵심 법률 업무가 아닌 경우에는 외부 투자 유치에 숨통을 터줄 필요가 있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예외 규정을 두는 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고 말했다.

○합법 광고 서비스도 좌초 위기

리걸테크업계에선 이른바 ‘로톡 사태’를 일으킨 변호사에 대한 광고 규제도 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로앤컴퍼니가 2014년 내놓은 법률 플랫폼 ‘로톡’은 변호사들로부터 일정액의 광고료를 받은 뒤 변호사 목록을 표시해주는 서비스 플랫폼이다.

변호사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직접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 광고’로 사업 내용을 정해 규제를 피하는 듯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로톡이 법률 서비스의 진입장벽을 낮춰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보다 쉽게 변호사를 찾을 수 있는 서비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5월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고 로톡 가입 변호사의 징계를 예고하면서 로톡 사업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최근 “징계 절차가 개시되면 법무부가 감독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지만 대한변협은 징계를 강행하는 분위기다. 최근 상임이사회를 열고 로톡을 탈퇴하지 않은 변호사 200여 명을 특별조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리걸테크산업 위축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 공동협의회장(변호사)은 “높은 기술력이 변호사 업무에 적용된다면 변호사 선임비용, 각종 문서 작성 비용 등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실수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한종/오현아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