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시장의 양대 지향점인 유연성과 안정성이 모두 낮게 나타나 제대로 된 대응이 시급해졌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과도하게 비중을 둬온 고용 안정성도 실제로는 상당히 낮아 왜곡된 정책의 조기 수정이 불가피하다. 어제 발표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정성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는 정부만 몰랐거나 외면해온 노동시장의 실상을 거듭 일깨워주고 있다.

525개 기업 대상의 이 조사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안정성까지 ‘낮은 수준’이라는 결과다. 실직자의 재취업 가능성을 가늠하는 ‘고용 안정성’, 실직 시 소득확보 가능성을 보는 ‘소득 안정성’, 일과 삶의 조화를 보는 ‘결합 안정성’ 등 세 카테고리 모두 5점 척도에서 2.7~2.8(낮음)로 나왔다. 정부가 안정성에 매달리면서 유연성 부재에 따른 부작용과 위험에 대한 우려가 넘쳤는데 안정성까지 ‘보통(3점) 이하’ 상태라는 현실이 안타깝다.

낮은 유연성은 다른 조사에서도 자주 나왔던 그대로다. 고용·해고 등 인력조정, 임금조정, 근로시간 조정, 직무조정·배치전환 등 네 가지 항목 모두 2점대였다. 채용·임금·근로시간·직무부여 전 부문에서 유연성 확보는 지난하기만 하다. 노조가 있으면 유연성 체감도가 낮다는 것과 떨어진 유연성이 법·제도 때문이라는 지적에도 공감이 간다.

일자리시장의 양대 지향축이 모두 부실한 것은 편향된 정책 탓이 크다. 800만 명을 넘어선 ‘비정규직 과보호의 역설’과 다르지 않은 현상이다. 친(親)노조 정책의 출발점으로 ‘비정규직 감축’을 외쳤지만 노·노 갈등과 불공정 논란을 유발했을 뿐, 전체 고용시장에선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해 버렸다. 의욕만 앞세운 채 균형과 절제가 없는 정부의 행보에 고용시장이 움츠러들면서 노동약자인 신규 및 재취업 희망자만 어렵게 만들었다.

‘일자리 정부’가 고용을 위축시킨 정책 오류가 거듭 확인되고 있다. ‘최소한의 유연성 확보도 시도도 않는다’고 그토록 비판받으면서도 ‘마이웨이’ 고집했으면 안정성이라도 높아져야 할 것 아닌가. 게도 구럭도 다 잃은 꼴이다. 유연성도 확보하며 균형을 찾아가면 정부가 무리하지 않아도 시장자율 기능에 따라 안정성도 개선될 수 있는 것은 고용선진국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재취업 프로그램 활성화, 실업자 지원, 학교의 취업교육 강화 등 정부가 해야 할 일,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도 널렸다. 산업계의 실태조사를 냉정하게 수용하기는커녕 ‘기업 시각’이라며 깎아내리고 외면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