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단풍, 이상국
단풍

이상국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태헌의 한역]
丹楓(단풍)

樹木多有所欲言(수목다유소욕언)
是故葉葉藏心魂(시고엽엽장심혼)
春日纔逢秋日別(춘일재봉추일별)
傷悲滿滿身自熱(상비만만신자열)
恰如顔料淚滴瀝(흡여안료루적력)
今向溪谷身自擲(금향계곡신자척)

[주석]
* 丹楓(단풍) : 단풍.
樹木(수목) : 수목, 나무. / 多有(다유) : ~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많이 있다. / 所欲言(소욕언) : 하고 싶은 말.
是故(시고) : 이 때문에, 그래서. / 葉葉(엽엽) : 잎마다, 모든 잎. / 藏(장) : ~을 감추다, ~을 간직하다. / 心魂(심혼) : 마음.
春日(춘일) : 봄날, 봄. / 纔逢(재봉) : 겨우 만나다, 간신히 만나다. / 秋日(추일) : 가을날, 가을. / 別(별) : 헤어지다.
傷悲(상비) : 슬픔. / 滿滿(만만) : 가득하다. / 身(신) : 몸. / 自(자) : 저절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熱(열) : 뜨겁다.
恰如(흡여) : 마치 ~와 같다. / 顔料(안료) : 물감. / 淚(누) : 눈물. / 滴瀝(적력) : (물방울 등이) 뚝뚝 떨어지다. 또는 그 소리.
今(금) : 지금, 이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向溪谷(향계곡) : 계곡을 향하여, 계곡으로, 계곡에. / 自(자) : 스스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擲(척) : ~을 던지다. 이 구절에서 ‘擲’의 목적어는 ‘身’이다.

[한역의 직역]
단풍

나무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래서 나뭇잎마다 마음을 간직하였다
봄에 겨우 만나 가을에 헤어져야 하니
슬픔이 가득하여 저절로 뜨거워진 몸!
마치 물감 같은 눈물 뚝뚝 흘리며
이제 계곡에 몸을 스스로 던지누나

[한역 노트]
당연한 얘기지만 단풍은 나무에 달린 나뭇잎이 물든 것이다. 나무가 나뭇잎이 물들도록 몸에 달고 있기까지는 비바람과 같은 시련이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찬란하게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나무의 품을 떠나야 했던 파란 낙엽들의 슬픔까지 얘기하자면, 나무의 사연이 어찌 적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시인은, 나무는 할 말이 많다고 하였다. 그 나무의 할 말이 많은 마음이 나뭇잎 하나하나에도 각인되는 것으로 여겼기에, 시인은 또 나무가 그 마음을 나뭇잎에 담아냈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단풍이 드는 나뭇잎은 봄에 싹이 터 엄마격인 나무와 만나고 또 형제격인 잎들과 만나 커가면서 세 계절을 함께 보내다가, 가을 끝자락에 이르러 마침내 결별을 해야 하는 존재이다. 짧지만 나뭇잎들에게는 일생이 되는 그 세 계절 동안 고락(苦樂)을 함께 하다가, 서로 이별해야 하는 처지이니 슬픔이 어찌 적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이 이 대목에서 나뭇잎들이 슬픔으로 몸이 뜨거워진다고 한 것은, 슬픔의 정도가 지극함을 강조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역자가 보기에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은, 단풍의 대표적인 빛깔이 붉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붉다는 것은 뜨겁다는 것과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아래에 나오는 “눈물”의 복선(伏線)으로 “뜨거운”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슬프면 눈물이 나고 눈물은 뜨거우니, 슬픔으로 몸이 뜨겁다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수사적(修辭的)인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또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은, 병으로 몸이 뜨거워지는 ‘신열(身熱)’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시조(時調)의 한 구절처럼 다정도 병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슬픔 또한 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단풍에는 이렇게 신열과 같은 슬픔의 격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가 다채로운 색깔의 단풍잎이 날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면, “계곡에 몸을 던지는”은 날아 내리는 단풍의 행선지를 적시한 것이다. 그렇다고 꼭 “계곡”의 문자적 의미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 ‘낮은 곳으로의 단풍잎 투신’이 슬프기는 하여도, 그 투신이 마지막인 것은 아니다. 마침내 뿌리로 돌아간 낙엽이 다시 나무에게 자양(滋養)이 되어 새 잎으로 돌아올 것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시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잎을 죽여서 뿌리를 살리는 나무의 자가(自家) 생성은 스스로 그러한 삶, 곧 자연이자 순리이다. 우리가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이러한 데에도 있다. 그러니 자연과 순리를 거스르는 삶은 그 어떤 현란한 말로도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나뭇잎에 단풍이 드는 것은 우리에게 고운 풍경을 선사하려고 하는 하늘의 뜻이 아니라, 나무가 겨울을 나고 새 봄을 빚기 위하여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자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봄부터 나뭇잎을 몸에 달고 모진 세월을 함께 했지만 언제까지나 붙들어둘 수는 없어, 떠나보내기 위해 나무가 취하는 ‘내려놓음’의 한 방식인 것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아픔이듯, 나뭇잎이 돋고 물들고 떨어지는 것도 아픔이라고 한다. 때가 되면 아픔 속에서 결별해야 하는 것이 어찌 저 나뭇잎뿐이겠는가? 삶이 여울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결별들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흰빛으로 물들게 하는 것을 보면 단풍이 꼭 나무의 일만도 아닌 듯하다.

역자는 3연 7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6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시의 제3행과 제4행을 한시 1구(句)로 처리하였으며, 원시에는 없는 시어를 두어 군데 보충하기도 하였다. 이 한역시는 매구(每句)에 압운하였으나 2구마다 운을 달리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言(언)’·‘魂(혼)’, ‘別(별)’·‘熱(열)’, ‘瀝(역)’·‘擲(척)’이 된다.

2021. 11. 2.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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