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의 논점과 관점] 사과는 리더의 언어다
역대 12명의 대통령 중 사과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퇴임 전까지 열 번 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는 당선인 신분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 농민 사망 사건 때, 형 노건평 씨의 부동산 의혹 사건 때도 어김없이 나와 사과했다. 2007년 신년 연설에선 “부동산, 죄송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번에 잡지 못해 미안합니다”며 고개를 떨궜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사과를 했지만 그만큼 책임을 통감하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는 퇴임 후 가족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극단적 선택’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사과,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는 그런 면에서 대비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10여 차례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나는 사과가 없다. 생각나는 게 부동산 ‘죽비’ 발언 정도다. 왜 그럴까. 사과가 선택적이고 방법도 틀렸기 때문이다. 그는 본인이 책임질 게 없는 사항, 예컨대 세월호나 5·18 문제에 대해선 적극 사과했다. 그러나 검·법 갈등으로 국론이 두 쪽 나고 북한에 의해 공무원이 사살당했을 때, 최측근이 여론조작으로 구속됐을 때, 자영업자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을 때 사과 대신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기저기서 “대통령은 어디에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

문 대통령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인간은 본래 자신에게 불리한 일에는 자기방어적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프로이트는 “부인과 변명, 거짓말은 인간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방어기제”라고 했다. 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영국 팝가수 엘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미안하다는 말이 가장 어려워)’(1976년)가 50년 가까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사과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용기 있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히 사과하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리더라면 과감한 사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위기를 단번에 기회로 바꾸는 승부사 기질도 필수다. 사과를 ‘리더의 언어’라고 하는 이유다.

'통 큰 사과' 후보가 대권 쥘 수도

불행히도 다음 정부를 이끌겠다고 나선 대선후보 중 그런 리더십을 기대할 만한 이가 보이지 않는다. 여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지사부터 그렇다. 그의 모든 언행은 본능적 방어기제에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 거짓말이 드러나면 또 다른 변명과 궤변으로 대응한다. 그러다 보니 말이 엉키고 꼬여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자 전부 ‘부하 탓’을 한다. 그래도 비판이 가라앉지 않자 이번엔 ‘이슈로 이슈를 덮기’ 식으로 ‘묻지마 퍼주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에게 리더로서의 성숙함을 기대하기란 ‘연목구어(緣木求魚)’인가. 야당 경선 후보들이라고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다. 유력 야당 후보는 ‘1일 1실언’에 ‘무개념 사과’로 제 무덤을 파는 수준이다.

그래서 여야 후보들에게 제안한다. 어차피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선심성 공약에선 여야 모두 도긴개긴일 게 뻔하다. 관건은 누가 인간적 면모를 보이느냐가 될 수도 있다. 그간 잘못과 거짓말에 대해 화끈하게, 납작 엎드려 사과 한번 해보시라. 그 진정성을 인정받는 자가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과를 할 ‘도량’이 아니면 진작 그만두는 게 낫고, 법적 책임 문제 때문에 사과를 기피한다면 그 역시 탈락 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