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10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10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타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위해 외국 정부가 보내온 조전(弔電)에 대해 정부가 '배달사고'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져 망신을 사고 있다.

1일 외교부는 중국, 일본, 태국, 쿠웨이트, 바레인, 헝가리, 과테말라, 몰디브, 세이셸, 가봉 등 10개국으로부터 조전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하고 3일 뒤인 지난달 29일 "노 전 대통령이 한·중 수교와 양국 파트너십에 기여했다.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해달라"라는 취지의 조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를 공개하지 않다가 3일이 지나고서야 보도자료를 냈다.

유족 측은 "장례식을 거의 다 마치고 주한 중국대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조전이 왔다는 걸 알게 됐다. 정부에 문의했더니 그제야 말해줬다"고 했다. 사실상 정부가 조전이 온 것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일 논평을 통해 "외교부는 일본, 베트남, 태국 등 다른 여러 외국 정부에서 조전을 보내왔다는 사실도 1일이 되어서야 밝혔다"면서 "'받은 조전은 모두 청와대에 전달했다. 외국 정부로부터 온 조전을 유족에게 반드시 전해드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외교부의 해명이다"라고 지적했다.

허 대변인은 "외교부의 '배달사고'는 인지상정의 측면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보고만 받고 가만히 있던 청와대도 마찬가지다"라며 "문 정권 공무원들은 유족과 국민의 슬픔을 헤아릴 줄 모르는 냉혈한들뿐인가. 3일 동안 누구 하나 나서서 유족과 국민에게 외국 정부의 조전을 전할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조전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에 대한 성과를 인정했다"면서 "문 정권이 노 전 대통령의 공을 중국이 인정하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싱하이밍 중국대사는 시 주석의 조전 발송 소식이 보도되지 않자, 우리 정부에 '왜 공개가 되지 않느냐'며 문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대변인은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이고,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원희룡캠프 박민영 대변인 또한 '조의까지 가로채기? 유치한 시샘이 부른 참극'이라는 제하의 논평을 통해 "조전에 '노 전 대통령이 한중수교와 양국 파트너십에 기여한 점'과 '위로의 뜻'이 분명히 밝혀져 있었는데도 '중국 측이 요청하지 않아서 유족에 전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면서 "애초에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보내는 게 조전인데, 요청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것부터가 비상식적이다"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대체 왜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 문 정부의 시샘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면서 "문 정부가 4년 내내 애타게 구애했는데도 거들떠도 안 보던 시진핑 주석이 노 전 대통령의 공을 치하하자 심통이 났다는 해석이 맞다면 그 자체로도 비루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조의를 가로채는 패륜적 행각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달 28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님은 중국의 오랜 친구"라며 "중·한 수교를 결단한 업적은 지금도 우리 양국 국민들에게 의의가 있다"고 조문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