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중보건 전문가 100명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담배의 해로움을 줄이는 정책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WHO가 담배를 일괄 규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연기를 만들지 않는 담배에 대해선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입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8일 공중보건 및 니코틴 관련 정책 전문가 100명은 성명서를 통해 “비연소 담배 제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담배 위해 감축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성명서엔 금연운동가 클라이브 베이츠 박사를 비롯해 데이비드 너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교수, 루스 보니타 전 WHO 비전염성질환감시국장, 아비게일 프리드먼 예일대 교수, 데이비드 아브람스 뉴욕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한국에선 한국건강위해감축연구회 연구이사로 재직 중인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담배 위해 감축 정책을 도입해야 할 이유로 7가지를 들었다. △담배 위해 감축이 공중 보건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 △액상형 전자담배가 금연을 이끄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 △담배 위해 감축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주요 규제당국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결과를 내놓고 있다는 점 △정책 입안자들의 정책 제안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 △청소년의 전자 담배 사용에 대해서 보다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점 △담배 위해 감축 정책에 대한 공중보건 차원의 사회적 지지가 있다는 점 등이다.

일부 선진국에선 비연소 담배와 기존 담배에 대한 규제를 따로 적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영국은 2030년까지 성인 흡연율을 0%로 만들겠다는 ‘스모크 프리’ 정책의 일환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제로 권하고 있다. 영국 공중보건국은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 대비 위해성이 95% 낮다고 발표한 바 있다.

뉴질랜드도 최근 흡연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일반 담배에 대한 규제를 지속하는 가운데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해서는 더 낮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뉴질랜드 보건관리청은 웹사이트를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위해하며 금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본에선 2014년 궐련형 전자담배 출시 이후 일반 담배의 판매량이 지속 하락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분기 일본의 일반 담배 판매량은 5년 전 같은 기간인 2016년 1분기 대비 42% 감소했다. 일본은 보건당국 차원에서 일반 담배 대체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일반 담배 판매량을 줄였다.

국내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의 대체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상반기 국내에서 일반 담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한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1.6% 증가했다. 박영범·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축이 된 연구팀은 ‘전자담배의 관문 효과 및 시사점에 관한 연구’를 통해 국내 시장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와 일반담배가 대체재 관계에 있음을 수학적 모델로 규명했다.

박 교수는 “이번 성명서 발표를 통해 담배 연기로 인한 사망자를 하루 빨리 줄여야한다는 데에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뜻을 같이했다”며 “이달 초 열리는 WHO 담배규제기본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도 담배 위해 감축 정책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