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실무자 조직적 가담…"개인적 이익 도모하지 않았다" 무죄 확정
하청업체 뒷돈으로 회사 비자금 조성…대법 "배임 아냐"
공사 하도급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더라도 개인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죄로 기소된 전 대우건설 토목사업기획팀장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2007∼2009년 토목사업기획팀장으로 근무한 A씨는 그간 하청 관계에 있던 토목공사업체 대표가 골프장 공사 하도급을 요청하자 "공사 대금을 올려주는 대가로 20억원의 리베이트를 달라"고 요구한 뒤 총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2012년 1심은 A씨가 상관인 토목사업본부장의 지시로 부외 자금(비자금) 조성·수수·집행에 관여했으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더 자세한 내막이 드러났다.

재판부에 따르면 임원과 각 팀에서는 공사 수주를 위한 영업비나 행사 경비, 직원 격려금 등을 법인카드로 충당하기엔 부족하다고 보고 부서 차원에서 리베이트 받은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왔다.

별도로 기소된 전직 토목사업본부장 2명이 본부장으로 재직한 3년여 동안 이렇게 만들어진 돈은 모두 255억원으로 파악됐다.

A씨와 같은 실무자는 연초에 조성이 필요한 자금 규모를 본부장에게 승인받은 뒤 돈을 모았다.

비자금은 본사 지하주차장 창고에 있는 금고나 시내 모처의 오피스텔에 보관됐다.

토목사업본부는 이렇게 만들어진 돈을 공사 설계평가심의위원에 금품 제공 등 불법 로비를 하는 영업활동경비나 착공식, 준공식, 개통식, 제사 등 행사비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직원 격려금과 경조사비, 활동비, 민원처리비, 공상처리비에도 쓰였다.

2심 재판부는 "정상적인 회계 처리를 거치지 않고 부외 자금을 조성한 행위는 기업 활동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해하는 행위이지만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 등이 부외 자금 조성 단계에서 불법이득의사가 실현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사용 모두 임무 위배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자금이 사용된 일시와 장소, 용도 등이 특정되지 않아 재판부는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대법원도 "비자금 조성은 회사의 원활한 운영과 회사 임직원의 관리, 거래처와 유대관계 유지 등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회사와 관련이 없거나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심 판단을 인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