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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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고두현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 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척이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 이 시에 나오는 물미해안이 어디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물미해안은 제 고향 경남 남해에 있습니다. ‘독일마을’로 유명한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가는 길, 두 지명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죠.
이 길에서 ‘결핍이 완숙을 채운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돌아보면 저를 키운 8할은 ‘결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리 식구들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의 작은 절에서 살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옛적 북간도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죠.
어머니는 절집의 허드렛일을 겸한 공양주 보살로 지냈습니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어중간한 삶이었지요. 제가 중학교를 마치고 먼 데 고등학교로 떠나자, 어머니는 이제 됐다 싶었던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물건리에 있는 미륵암에 자리를 잡았지요.
그 암자는 방풍림과 너른 들판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저는 방학 때마다 이곳으로 ‘귀가’했죠. 1998년 초가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결핍’이 더 커졌습니다. 이젠 집도 절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도 없으니까요.
그 허허로움의 끝에서 건진 시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입니다. 해안길을 혼자 천천히 걷는 동안 물미해안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어릴 때는 왜 몰랐을까.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물미해안의 절경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이제야 비로소 발견하다니…’
이곳을 아름다운 여인과 그리운 사람의 모습으로 재발견한 것은 행운이었죠.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소에 ‘노을’이라는 회화적 요소를 얹고, 그 화선지 위에 ‘그리움’이라는 색채를 입히니 시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연이 제 몸에 붓을 대고 시를 써 준 것인지도 모르지요.
얼핏 ‘달콤한 외로움’과 ‘관능적인 풍경’이 먼저 드러날 것 같기도 하지만, 행간에 젖어 흐르는 물기와 알 수 없는 결핍감이 함께 배어 나오는 그림이지요. 특별히 기교를 부리거나 일부러 행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의 몸이 보여주는 걸 그대로 옮긴 것이죠. 다만 운율과 말맛을 다듬는 데에는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 시를 문예지에 발표하고 몇 달 뒤 파리로 1년간 연수를 떠났는데, 그해 가을 정진규 시인이 신문에 쓴 평을 보고 ‘수평으로 누워서 일어서는 시’의 의미를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거기가 어딘지 나는 모르지만 이 가을 그리로 떠나고 싶다. 가을은, 아니 단풍은 산의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바다에서도 ‘멀미’를 할 지경이네. 해안을 돌아앉은 여성의 ‘흰 목덜미’로 보아낸 그 이미지도 새로운 탄생이다. 거기에 해안 삼십 리 길의 가을바람. 가을 햇살. 그것들의 ‘낭창낭창’과 ‘잘 익은’이 내보이는 말씀의 ‘몸’. 그 감성의 유약(柔弱)을 얼른 알아차린 수평선의 팽팽함. 그 남성적 추스름. 수평으로 누워서 일어서는 시.”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고두현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정진규, 2002.10.21.)
1년에 몇 번씩 서울에서 1박2일 일정으로 문학기행팀과 동행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몸을 빌려 시 한 편을 낳게 해준 물미해안의 낭창낭창한 허리를 은근하게 안아보곤 했죠.
그 덕분인지 물미해안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이 났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이곳을 찾은 연인들 사이에 ‘물미해안을 함께 드라이브하면 사랑이 꼭 이뤄진다’는 전설(?)도 생겼지요. 그래서 젊은 여행객이 유난히 많이 찾습니다. 가을 단풍철엔 더욱 그렇죠.
오늘처럼 섬들이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 날에는 그곳이 더 그리워집니다.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는 삼십 리 물미해안, 그 바다에 단풍 드는 모습을 보며 좋은 사람들과 잘 익은 ‘완숙’의 가을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고두현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 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척이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 이 시에 나오는 물미해안이 어디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물미해안은 제 고향 경남 남해에 있습니다. ‘독일마을’로 유명한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가는 길, 두 지명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죠.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선이 아름다운 여인의 허리를 닮았습니다. 그 낭창낭창한 곡선을 타고 미풍이 매끄럽게 흐르지요. 물건리 바닷가의 초승달 같은 방풍림을 지나 은점, 노구, 가인포, 초전 해변을 따라가면 미조항에 닿습니다. 바닷바람을 받으며 그렇게 삼십 리를 가는 길이 물미해안도로이지요.이 길에서 ‘결핍이 완숙을 채운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돌아보면 저를 키운 8할은 ‘결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리 식구들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의 작은 절에서 살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옛적 북간도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죠.
어머니는 절집의 허드렛일을 겸한 공양주 보살로 지냈습니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어중간한 삶이었지요. 제가 중학교를 마치고 먼 데 고등학교로 떠나자, 어머니는 이제 됐다 싶었던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물건리에 있는 미륵암에 자리를 잡았지요.
그 암자는 방풍림과 너른 들판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저는 방학 때마다 이곳으로 ‘귀가’했죠. 1998년 초가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결핍’이 더 커졌습니다. 이젠 집도 절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도 없으니까요.
그 허허로움의 끝에서 건진 시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입니다. 해안길을 혼자 천천히 걷는 동안 물미해안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어릴 때는 왜 몰랐을까.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물미해안의 절경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이제야 비로소 발견하다니…’
이곳을 아름다운 여인과 그리운 사람의 모습으로 재발견한 것은 행운이었죠.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소에 ‘노을’이라는 회화적 요소를 얹고, 그 화선지 위에 ‘그리움’이라는 색채를 입히니 시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연이 제 몸에 붓을 대고 시를 써 준 것인지도 모르지요.
‘수평으로 누워서 일어서는 시’
‘가을’과 ‘노을’, ‘그리움’은 이 시를 관통하는 세 가지 색감입니다. 이는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과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척이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것 좀 보아요’라고 말 건네는 사랑의 언어이기도 합니다.얼핏 ‘달콤한 외로움’과 ‘관능적인 풍경’이 먼저 드러날 것 같기도 하지만, 행간에 젖어 흐르는 물기와 알 수 없는 결핍감이 함께 배어 나오는 그림이지요. 특별히 기교를 부리거나 일부러 행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의 몸이 보여주는 걸 그대로 옮긴 것이죠. 다만 운율과 말맛을 다듬는 데에는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 시를 문예지에 발표하고 몇 달 뒤 파리로 1년간 연수를 떠났는데, 그해 가을 정진규 시인이 신문에 쓴 평을 보고 ‘수평으로 누워서 일어서는 시’의 의미를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거기가 어딘지 나는 모르지만 이 가을 그리로 떠나고 싶다. 가을은, 아니 단풍은 산의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바다에서도 ‘멀미’를 할 지경이네. 해안을 돌아앉은 여성의 ‘흰 목덜미’로 보아낸 그 이미지도 새로운 탄생이다. 거기에 해안 삼십 리 길의 가을바람. 가을 햇살. 그것들의 ‘낭창낭창’과 ‘잘 익은’이 내보이는 말씀의 ‘몸’. 그 감성의 유약(柔弱)을 얼른 알아차린 수평선의 팽팽함. 그 남성적 추스름. 수평으로 누워서 일어서는 시.”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고두현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정진규, 2002.10.21.)
남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2005년 여름 이 시를 표제작으로 삼은 시집이 나왔고, 제10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을 받게 된 뒤로 물미해안을 자주 찾게 됐습니다. 물미해안을 중심으로 남해금산과 노도(서포 김만중 유배지) 등을 둘러보는 문학기행 코스가 생긴 덕분이지요.1년에 몇 번씩 서울에서 1박2일 일정으로 문학기행팀과 동행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몸을 빌려 시 한 편을 낳게 해준 물미해안의 낭창낭창한 허리를 은근하게 안아보곤 했죠.
그 덕분인지 물미해안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이 났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이곳을 찾은 연인들 사이에 ‘물미해안을 함께 드라이브하면 사랑이 꼭 이뤄진다’는 전설(?)도 생겼지요. 그래서 젊은 여행객이 유난히 많이 찾습니다. 가을 단풍철엔 더욱 그렇죠.
오늘처럼 섬들이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 날에는 그곳이 더 그리워집니다.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는 삼십 리 물미해안, 그 바다에 단풍 드는 모습을 보며 좋은 사람들과 잘 익은 ‘완숙’의 가을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