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북반구 겨울을 앞두고 사양산업으로 평가 받던 석탄 기업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세계적 에너지 대란 탓에 석탄 수요가 급증하면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어서다. 세계 최대 채굴기업인 스위스 글렌코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엑사로 등은 넘치는 현금을 활용해 새로운 광물 자원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글렌코어는 구리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용 광물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석탄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넘치는 현금을 이용해 새로운 광물 시장 탐사에 나선 것이다.

글렌코어는 지난해 10월 기준 267억달러(약 31조5500억원)였던 기업가치가 지난달 681억달러로 150% 넘게 증가했다.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석탄 에너지를 찾는 소비자가 급증하면서다.

남아공 석탄기업인 엑사로도 같은 기간 기업가치가 28억달러에서 39억달러로 증가했다. 엑사로는 내년에도 석탄 산업이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호주 석탄기업 화이트헤븐과 미국 석탄기업 피바디에너지도 지난해말 각각 7억달러와 1억달러였던 기업가치가 1년 만에 21억달러와 16억달러로 불어났다.

올해 석탄 가격은 오름세다. 아시아 석탄 가격 지표로 꼽히는 호주산 석탄값은 올초 t당 80에서 지난달 250달러 넘게 치솟았다. 이달 들어 150달러선으로 후퇴했지만 여전히 높다. 주요 석탄 생산국인 남아공과 인도네시아 지역의 공급이 원활치 않은데다 유럽 가스공급이 줄면서 석탄 사용이 늘었다.

수년간 친환경 시장에 투자가 몰리면서 노후 광산들이 시설을 개선하는 것 대신 문을 닫은 것도 석탄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줬다. 아시아 지역에서 여전히 석탄 수요가 늘고 있지만 환경규제 등에 막혀 기업들이 새 탄광에 투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석탄 기업들이 더 많은 현금을 쌓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폴 플린 화이트헤븐 최고경영자(CEO)는 "석탄 입찰 수요가 상당히 높다"며 "수요 공급 관점에서 앞으로 몇년간은 탄탄한 상황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 지침을 따르는 은행들이 신규 탄광 시설에 자금 지원을 줄이면서 석탄 공급이 늘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최소 10년 간 공급 상황이 빠듯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은행들도 석탄 기업들이 당분간 좋은 실적을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JP모간은 글렌코어가 내년 석탄 사업에서만 83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리베룸의 벤 데이비스 애널리스트는 "내년 남아공 석탄기업인 튠겔라리소시스의 잉여현금이 4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튠겔라의 기업가치는 이날 기준 5억8000만달러다.

넘치는 현금을 이용해 이들 기업은 신규 시장을 물색중이다. 엑사로는 망간 구리 보크사이트 등 전략 광물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피바디도 탄소중립 요구에 맞출 수 있는 인수 대상 기업을 찾고 있다.

이들 기업 실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석탄 시장이 호황을 맞은데다 당분간 훈풍이 지속될 것을 고려하면 기업 가치가 여전히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펀드 운용사들이 ESG 지침에 묶여 석탄기업 주식을 보유할 수 없어서다.

반면 친환경 요구가 높아지면서 석탄 기업들의 장기적 미래가 밝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정점을 찍은 석탄 가격이 떨어지면 이들의 실적도 하락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