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AI)을 규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 법의 적용 대상이 광범위해 한국도 기업·정부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상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개최한 'AI 산업발전을 위한 법적·정책적 과제 : EU AI 법안을 중심으로' 웨비나에서 "EU의 AI 규제 법안이 시행되면 파장이 클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문제의 법안은 EU 집행위원회가 올 4월 발표한 'AI에 관한 통일규범의 제정 및 일부 연합제정법들의 개정을 위한 법안'이다. EU 시장에 AI가 적용된 서비스·제품을 출시하는 기업·기관에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다.

박 교수는 "규제 대상 중 '고위험 AI'로 분류된 유형은 '제3자(인증기관) 적합성평가를 받아야 하는 제품 또는 그 안전 요소'로 규정돼 있는데 이 범위가 굉장히 넓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KS 인증과 비슷한 유럽 CE 인증 대상 제품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CE 인증 대상은 △정보통신(IT)기기 △가정용 전기기기 △의료기기 △전선 △배터리 △오디오·비디오 기기 등이 있다.

박 교수는 "이들 제품에 AI를 적용하는 경우 리스크관리시스템·품질관리시스템 구축, 적합성평가, 기술문서 작성, 투명성 및 활용자 정보 제공 등 의무가 주어진다"며 "너무 의무가 많아서 지키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고위험 AI에 대한 의무를 위반한 기업에겐 글로벌 매출의 최대 6%를 벌금으로 물린다.

박 교수는 "EU는 AI의 잠재적 위험이 크다고 얘기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하나도 제시 못했다"며 "상당히 문제가 있는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EU 집행위원회는 물론 유럽의회도 AI 규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통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박 교수는 "고위험 AI에 속하는 제품군별로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미국 등과의 공조 대응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U가 AI 규제 법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AI와 플랫폼 산업에서 앞서 가는 미국,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많다. 따라서 이해관계가 맞는 우방국과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국내에도 AI를 통합적으로 규율하는 법안이 7개 발의돼 있는 상태다. '인공지능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인공지능에 관한 법률' 등이다.

김영훈 AWS코리아 실장은 "AI가 수행하는 업무들에 대해선 현행법으로 충분히 다뤄질 수 있음에도 AI 전반을 규제하는 일반법이 필요한지부터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발의된 법안들을 보면 AI에 대한 정의가 포괄적이고 각종 사전 승인 규정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법이 통과되면 AI 관련 사업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민준/이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