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번 눈감은 비리, 기업 몰락의 출발점
한때 미국 7대 대기업에 꼽힐 정도로 잘나가던 에너지 기업 엔론은 대형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들통나면서 2007년 파산했다. 엔론의 분식 규모는 13억달러(약 1조5353억원)에 달했다.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한국의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비윤리적 기업의 사례’로 등장할 정도다. 이렇게 큰 부정이 일어나는 동안 왜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을까. 엔론의 경영진과 직원들이 특별히 탐욕스럽고 사악했기 때문일까.

세계적인 기업 컨설턴트이자 위기관리 전문가인 호세 에르난데스는 《회사는 이유 없이 망하지 않는다》를 통해 “기업 문화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단언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기업에서든 도덕적 해이와 비리는 발생한다. 하지만 조직 문화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기강이 바로 선 기업은 조기에 부정을 잡아내 대형사고를 예방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몰락하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핵심 요소로 보상 체계를 든다. 부도덕하지만 유능한 직원이 더 많이 보상받는 시스템을 갖추면 결국 기업은 ‘비리 백화점’이 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엔론은 직원들이 신사업을 벌이면 벌일수록 많은 보너스를 받도록 임금 체계를 설계했다. 실패할 게 뻔한 날림 사업이라도 공들여 기획한 우량 사업과 마찬가지로 보너스를 지급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실패할 신사업을 앞다퉈 쏟아냈고, 자연히 조직 전반의 윤리 의식도 느슨해졌다.

저자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윤리적인 기업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실전 지침으로 일곱 단계를 제시한다. 인과관계를 조사하고 로드맵을 짜서 문화를 재정립하는 등 제목은 하나 마나 한 얘기지만 세부 내용은 설득력이 있다. 저자의 컨설팅 경험과 함께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비리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고위 경영진은 쳐내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장은 해당 경영진의 능력과 인맥이 아쉬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해고가 유일한 답이라는 설명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