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자를 모를 때 생기는 일
“‘무운을 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이틀 동안 검색창을 달군 질문이다. ‘무운(武運)’은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무인(武人)의 운수를 의미하지만, 그 뜻을 모르니 답답했을 법하다. 심지어 한 방송기자는 무운을 ‘운이 없다’(無運)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어제는 여야 대표의 성을 딴 ‘송이대첩’이란 말이 등장했다. 대첩(大捷)은 ‘큰 승리’를 말한다. ‘한산대첩’도 한산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크게 이겼다는 뜻이다. 굳이 ‘큰 싸움’을 말하려면 ‘대전(大戰)’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이른다. 학술용어는 90%가 넘는다. 수학 시간에 ‘등호(等號)’가 같을 등(等), 표지 호(號)라는 것을 알면 ‘서로 같음을 나타내는 부호’라는 의미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역사 시간에 나오는 ‘사화(士禍)’도 ‘선비(士)가 화(禍)를 입은 일’을 뜻한다. 이를 모르면 ‘한자 문맹(文盲)’이 된다.

앞뒤 문장의 맥락을 알면 되지 않겠는가 싶지만, 단어 뜻을 모르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신년 연하장에 “새해 명복(冥福: 죽은 사람이 받는 복)을 빕니다”라고 쓰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암살(暗殺: 몰래 죽이다)’의 뜻을 모르니 “김구 선생이 암(癌)에 걸려 돌아가신 거예요?”라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다.

인터넷과 모바일에서도 ‘육하원칙’을 ‘6가원칙’, ‘혈혈단신’을 ‘홀홀단신’, ‘야반도주’를 ‘야밤도주’, ‘환골탈태’를 ‘환골탈퇴’라고 쓰는 사람이 많다. ‘공황장애’를 ‘공항장애’, ‘사면초가’를 ‘사면초과’로 잘못 쓴 예도 부지기수다. 한술 더 떠 ‘인간증명서(인감증명서)’ ‘임신공격(인신공격)’ 같은 정체불명 단어를 만나면 헛웃음이 나온다.

한글은 소리를 적는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다. 소리글자인 한글로만 표기해서는 뜻을 완전히 알기 어렵다. 게다가 한자어는 다른 나라 말이 아니라 엄연한 한국어다. 법률·건설 분야 등의 지나친 한자용어는 순화해야 하지만 한자어 자체를 외국어 취급해선 안 된다.

지난해 한국 학생들의 문해율(文解率: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비율)이 25%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학자들이 “한글과 한자의 두 날개로 날아야 우리말이 산다. 고교 때까지 2000자(字)만 배워도 ‘한자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