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제 S-400 도입에 발목잡혀 F-35 프로그램서 퇴출
'숙적' 그리스 F-35·라팔 도입하며 공군력 개선
[특파원 시선] F-35 마다한 터키가 F-16 개량에 매달리는 까닭
최신예 F-35 스텔스 전투기도 마다한 터키가 한 세대 전 기종인 F-16 전투기 개량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달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면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최우선 요구도 F-16 개량용 부품의 수출 허용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요청에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과 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당장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고 답했다.

[특파원 시선] F-35 마다한 터키가 F-16 개량에 매달리는 까닭
F-35 공동개발국이었던 터키가 F-35 도입은커녕 F-16 개량에도 허덕이는 처지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애초 터키는 2014년 5월 F-35 도입을 결정하고 F-35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초기부터 공동개발국에 이름을 올린 덕에 터키는 F-35 100대분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는 '신의 한 수'로 통했다.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는 F-35 전투기는 전략무기로 분류돼 이른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무기'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F-35 구매국은 한국을 비롯해 영국·호주·이스라엘·일본 등 미국의 최우방국뿐이다.

그러나 이 '신의 한 수'는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 도입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터키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시리아 북동부에서 이따금 날아오는 로켓·박격포 공격을 막기 위해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구매를 추진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터키의 과도한 기술 이전 요구에 난색을 보이며 패트리엇 판매를 금지했다.

[특파원 시선] F-35 마다한 터키가 F-16 개량에 매달리는 까닭
그러자 터키는 돌연 2017년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 구매를 발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한다는 소식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큰 충격을 줬다.

나토의 설립 목적 자체가 구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함이었으며, 현재도 나토 동맹국은 연합작전의 효율성을 위해 암묵적으로 러시아제 무기의 도입은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S-400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였다.

S-400의 정확한 성능은 검증된 바 없으나, F-35와 같은 스텔스 전투기도 포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가 F-35와 S-400을 동시에 운용할 경우 F-35의 레이더 반사 면적이나 전자신호 등 극비 정보가 S-400에 연동된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에 넘어갈 수 있다.

미국은 터키가 S-400 도입을 발표하자 즉각적으로 반발하며 전방위 압력을 가했다.

미국은 F-35와 S-400 중 양자택일을 요구했고, 미 상원은 2018년 4월 터키에 F-35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도 터키는 2019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S-400을 자국에 반입했으며, 터키 공군의 F-16 전투기를 상대로 시범 운영까지 마쳤다.

그러자 미국은 2019년 7월 공식적으로 터키를 F-35 공동개발 프로그램에서 퇴출하고 F-35 판매를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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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가 S-400에 발목을 잡혀 미국과 갈등을 빚는 사이 터키의 오랜 숙적 그리스는 공군력 현대화에 속도를 냈다.

2010년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자금 수혈을 받은 그리스는 약 10년 만에 IMF 체제를 졸업하고 지난해 10월 미국과 F-35 20대를 도입하는 데 합의했다.

여기에 그리스는 지난해 프랑스와 라팔 전투기 24대를 도입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터키와 그리스는 15세기 말 그리스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이후 수백 년간 앙숙 관계를 이어왔다.

약 400년간의 독립 투쟁 끝에 그리스는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쇠락하자 오히려 오스만 제국의 본토로 진격하기에 이른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내우외환이 겹치면서 멸망했지만, 터키인은 훗날 국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로 그리스를 포함한 외세를 몰아내고 공화국 수립에 성공한다.

현재 양국은 나토 동맹국으로 묶여있지만 수백 년 묵은 국민감정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동지중해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과 석유·천연가스 등 자원 개발이 얽히면서 에게해(터키와 그리스 사이 바다)는 양측의 불꽃 튀는 자존심 싸움의 장이 됐다.

[특파원 시선] F-35 마다한 터키가 F-16 개량에 매달리는 까닭
특히, 양국 공군이 그 선봉에 서 있다.

양국 전투기는 수시로 에게해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도그파이트'(근접 추격)를 벌인다.

터키 국방부가 그리스 전투기를 몰아냈다며 자국 전투기가 그리스 전투기를 '록온'(조준)한 영상을 공식 트위터 계정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그리스가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는 차치하더라도 4.5세대급으로 분류되는 라팔만 도입하더라도 구형 F-16C/D를 보유한 터키는 그리스 공군을 막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

F-35 도입이 꼬인 가운데 그리스와 공중 전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터키는 러시아제 전투기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역시 최신예 스텔스기인 수호이(SU)-57의 판매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4.5세대 전투기인 SU-35의 판매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SU-35를 도입하면 그리스와 공중 전력의 균형은 맞출 수 있을지라도 터키와 미국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를 수 있다.

일각에서는 터키가 러시아 전투기마저 도입할 경우 나토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파원 시선] F-35 마다한 터키가 F-16 개량에 매달리는 까닭
결국 대미 관계를 악화하지 않으면서 공군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존 F-16C/D를 최신의 F-16V로 개량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평이다.

F-16 개량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얻는 과정에서 F-35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기롭게 F-35도 걷어 차버린 터키가 F-16 개량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