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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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기준금리 인상을 놓고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은이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자 KDI는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KDI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취임한 2014년 이후 긴축적 통화정책을 펼 때마다 이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총재·금통위원을 배출하면서 통화정책에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한 KDI에 대한 반감까지 얹어지면서 한은도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신경전의 발단은 KDI가 지난 4일 내놓은 '민간부채 국면별 금리인상의 거시경제적 영향' 보고서다. KDI는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성장률이 0.08~0.15%포인트 깎인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어 "금리인상으로 물가상승률과 부채증가율 하락폭은 크지 않다"며 "경기회복을 저해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결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반면 한은은 지난 9월에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상반된 분석을 내놨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이면 물가 상승률과 가계부채 증가율이 각각 0.04%포인트, 0.4%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한 것이다. 금리인상의 효과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KDI 보고서에 한은 관계자들은 "일개 연구기관의 분석을 하나 하나 반박할 이유가 없다"거나 "통화정책에 트집을 잡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경제학계는 양 기관이 '입맛'에 맞게 분석 보고서를 냈다고 봤다. 물가안정을 정책 목표로 삼은 중앙은행은 '매파'(통화 긴축 선호)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반면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성장에 무게를 두는 정부를 대변하는 만큼 강성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다.

두 기관 충돌의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DI 원장을 역임한 김중수 전 한은 총재 자리를 이주열 총재가 넘겨 받은 뒤부터 신경전이 격화됐다. '전관예우' 차원에서 김중수 전 총재 시절에는 잠잠했던 KDI는 이 총재가 들어서면서 통화정책을 향해 포문을 연다.

KDI는 2014년 11월 25일 열린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내놓으면서 "현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낮출 여지가 있고, 좀 더 낮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달 뒤인 12월에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했다. 이 총재는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KDI가 내년 성장률을 3.5%, 근원물가상승률을 2.0%로 전망했는데 이를 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없다"고 정면 비판했다. 그러면서 "디플레가 우려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과하다"고 반박했다.

KDI는 2018년 11월에 금리인상을 시사한 한은에 의견을 냈다. 당시 발간한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내수 경기가 둔화되는 등을 감안하면 현재 수준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11월에도 보고서를 통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 분석이 나올 때마다 한은 관계자들은 "'월권'에 가깝다"거나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인사권과 맞물려 한은이 KDI를 바라보는 시선은 특히 곱지 않다. KDI가 한은 총재와 금통위원을 배출하며 '점령군' 역할을 한 바도 있어서다. 금통위원이 비상임직에서 상임직으로 바뀐 1997년 이후 김중수 전 총재, 이덕훈 전 금통위원, 강문수 전 금통위원, 함준호 전 금통위원, 조동철 전 금통위원, 신인석 전 금통위원 등 6명의 KDI 출신인사가 한은 고위직을 꿰찼다.

김 전 총재 때는 연공서열을 뒤엎는 인사를 진행해 한은 내부의 상당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KDI 출신 전직 금통위원은 "한은에서 일할 때 고립됐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며 "통화정책을 놓고 임원들과 의견 충돌이 잦았던 탓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