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 AK 푸르지오 인근에 모여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 사진=이송렬 기자
신길 AK 푸르지오 인근에 모여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 사진=이송렬 기자
"당첨되셨어요? 웃돈 1000만원 드릴께 지금 파세요."
견본주택에서 나온 기자가 지나가자 한 중개업자가 다가와 웃돈을 줄테니 오피스텔을 팔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그는 "오피스텔 산다고 하셨죠? 지금 (웃돈) 3000만원에 물건 나왔습니다. 당장 계약하세요"라고 긴박하게 권했다.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신길 AK 푸르지오’ 계약이 진행되는 견본주택 현장은 '떴다방'으로 보이는 부동산 관계자들이 가득했다. 계약 기간이 하루 밖에 되질 않으니 매수자와 매도자를 즉각 연결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신길 AK 푸르지오는 서울 여의도 업무지구 인근인 영등포구 신길동에 공급하는 오피스텔이다. 아파트 투자가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오피스텔에 12만명이 넘는 투자자들과 실수요자들이 몰렸다. 100실 미만 오피스텔로 계약 즉시 전매가 가능한 탓에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을 연결하려는 업자들이 몰려들어 진풍경을 빚어냈다.

전화 한 번에 웃돈 수천만원 붙어

서울시 양천구 목동 현장에 차려진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길 AK 푸르지오의 웃돈은 다양하게 형성됐다. 전용 78㎡로 단일 면적인 이 단지는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7000만원까지 웃돈이 붙었다.

현장에서 만난 A 중개 관계자는 "당첨자가 발표됐던 전날(4일) 저녁에는 웃돈이 7000만원까지 붙었다"며 "현장에 나오니 4000만~5000만원이었고, 오후 들어서는 3500만~4000만원선"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곳곳에서 웃돈 수천만원이 붙는 광경을 포착할 수 있었다. B 중개 관계자는 당첨자로 추정되는 수요자에게 "웃돈 1000만원을 드릴테니 저에게 파시라"고 제안했다. 잠시 후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지금 웃돈이 3000만원 붙었다며 사실 의향이 있으면 얘기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2000만원의 웃돈을 추가해 거래를 한 것이다.

계약 시간 마감이 다가오자 중개업자들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며 계약을 재촉했다. C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금이 아니면 이런 가격에 오피스텔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웃돈 2000만원이면 (매수하실) 의향이 있느냐"고 제안했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분위기가 과열되는 양상이다.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와 SNS 단체대화방에서는 '온라인 떴다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청약에 당첨된 사람과 매수인을 연결해주면서 수수료를 받는다.

한 온라인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구체적인 계약 방법과 금액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전날 7000만원이던 웃돈이 현재 3000만원대로 내려왔다"며 "당첨자의 계약금을 대신 내면 계약 이후 명의이전을 하는 방식으로 매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신길 AK 푸르지오 모델 하우스에 붙어있는 현수막. 사진=이송렬 기자
신길 AK 푸르지오 모델 하우스에 붙어있는 현수막. 사진=이송렬 기자

"사실상 도박장" 분위기 과열 지적도

이런 과열 양상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신길 AK 푸르지오 오피스텔 청약 홈페이지는 신청자가 몰려드는 탓에 마비됐고, 시행사가 청약 신청 마감 시간을 연장해야 했다. 96실 모집에 총 12만5919명이 접수했고 평균 경쟁률은 1312대 1을 기록했다. 83실 모집이 이뤄진 한 면적대에는 11만1963명이 몰려 1349대 1의 경쟁률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신길 AK 오피스텔 청약을 두고 분위기가 너무 과열됐다고 지적한다. 이 단지는 일반적인 아파트가 아닌 오피스텔이어서다. 발코니 확장이 불가능한 오피스텔은 비슷한 면적 아파트보다 좁다.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낮아 추후 매도에 불리하고 관리비도 훨씬 높다.

신길동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수요자들이 관심이 많다고 해서 현장에 나왔는데 여기가 부동산 중개를 하는 곳인지 투기판인지 알 수가 없다"며 "웃돈이 분 단위로 계속 바뀌고 정확한 시세도 없어 중개업자인 나도 헷갈릴 지경"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또 다른 공인 중개 관계자도 "최근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등 비(非)아파트 상품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웃돈을 누가 얼마나 더 먹느냐의 '눈치싸움'이다"라며 "실수요자들의 영역이라기보단 투자자들만의 영역인 것 같다. 이게 도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