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채근담' 번역서 없어…대부분 후대 일본책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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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논문 발표…"일부 구절 빠진 채 유통"
"조선 후기에도 널리 읽혀…맹목적·교조적 해석 지양해야" 국내에서만 수백 종이 출간된 중국 고전 '채근담'(菜根譚) 번역서와 소개서 가운데 문헌학 측면에서 내용이 완벽한 책이 사실상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의 채근담 번역서가 원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후대에 일본에서 간행된 책을 옮겼으며, 고증 작업이 결여됐고 견강부회에 가까운 해석이 적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7일 학계에 따르면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한국문화'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채근담의 국내 수용 과정과 번역을 분석해 "대단히 많은 채근담 텍스트 중 어떤 것도 완전하다고 평가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채근담은 명나라 후기인 1607∼1613년에 홍자성(洪自誠)이 완성한 책이다.
함축적이고 짧은 말로 고결한 취향, 처세의 교훈, 속세를 넘어서는 인생관을 표현하는 문학 장르인 청언(淸言)으로 분류된다.
20세기 이후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영문으로도 번역됐다.
지금도 '동양의 탈무드', '동양 최고의 잠언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자기계발서로 널리 알려졌다.
안 교수 분석에 따르면 채근담 판본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나뉜다.
명나라 만력 연간인 1620년 이전에 나온 초간본(初刊本)과 명나라 이후에 들어선 청대에 통용된 청간본(淸刊本)이다.
안 교수는 "초간본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도서관이 소장한 목판본을 제외하면 전하는 책이 거의 없다"며 본문에는 세부 제목 없이 전집 222칙(則·고전에서 글을 세는 단위)과 후집 141칙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근담 초간본과 유사한 판본이 고렴(高濂)이 지은 '준생팔전' 증보본에 부록으로 실렸고, 일본에서는 초간본이 아닌 준생팔전 수록본을 저본(底本)으로 하는 책이 1822년 간행됐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준생팔전 수록본과 일본에서 찍은 '화각본'(和刻本) 채근담에 대해 "초간본과 대조하면 후집 136∼141칙이 누락됐다"며 "현재 유통되는 대부분의 채근담에도 여섯 칙이 빠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초간본과 준생팔전 수록본은 전문가도 접하기 쉽지 않아서 현대 출판계에서는 화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해 왔다"며 "채근담이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히게 된 데에는 화각본의 영향이 매우 크지만, 이후 나온 번역서는 화각본처럼 일부 구절을 누락하거나 일부 글자를 잘못 읽는 오류를 답습했다"고 지적했다.
채근담 판본 중 또 다른 계열인 청간본에 대해서는 "종류가 많고 복잡하다"면서도 여러 가지 특징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청간본은 수성(修省), 응수(應酬), 평의(評議), 한적(閑寂), 개론(槪論) 등 5개 항목으로 분류해 386칙을 실었다"며 "개론을 제외한 4개 항목에 수록한 185칙은 초간본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청간본은 초간본과 비교해 편차와 항목, 수록 순서가 완전히 달라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책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1708년 강희제 칙명으로 만들어진 판본을 청간본의 모본(母本)으로 추정했다.
만주어와 한문을 병기한 만한합벽본(滿漢合璧本)인 이 책은 일반 청간본에 비해 112칙이 적지만 구성과 수록 순서가 같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채근담은 국내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조선시대에는 채근담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설은 사실일까.
이에 대해 안 교수는 18세기 중국을 다녀온 사신을 통해 채근담이 조선에 수용됐고, 특히 만한합벽본이 많이 유통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의사인 이재우가 1790년에 쓴 서문이 붙은 채근담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면서 "만한합벽본 중 한문 부분만 필사한 채근담이 식자들 사이에서 제법 읽혔고, 초간본은 유통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일제강점기에 만해 한용운이 채근담 중 일부를 번역한 '정선강의채근담'을 펴내면서 채근담이 국내에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용운은 화각본이나 만한합벽본이 아닌 청간본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대에는 화각본이 대세가 됐다.
김구용, 조지훈이 1950년대에 내놓은 채근담은 모두 화각본을 번역한 책이다.
안 교수는 스테디셀러인 조지훈의 채근담에 대해 "지금 읽어도 유려하고 시적인 멋이 있으며 문체가 평이하다"면서도 "자연(自然), 도심(道心), 수성(修省), 섭세(涉世) 등으로 새롭게 편집한 것은 원본의 면모를 훼손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조지훈이 은둔과 자연친화, 소극적인 처세를 지나치게 부각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채근담에는 현실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 철학 요소와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강조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 안 교수 생각이다.
안 교수는 "채근담을 21세기 경영환경에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등 견강부회 해석이 상당히 심하다"며 "홍자성이 유교, 불교, 도교의 맹목적 수행을 비판한 것처럼 채근담의 교조적 해석은 또 다른 폐단을 낳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조선 후기에도 널리 읽혀…맹목적·교조적 해석 지양해야" 국내에서만 수백 종이 출간된 중국 고전 '채근담'(菜根譚) 번역서와 소개서 가운데 문헌학 측면에서 내용이 완벽한 책이 사실상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의 채근담 번역서가 원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후대에 일본에서 간행된 책을 옮겼으며, 고증 작업이 결여됐고 견강부회에 가까운 해석이 적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7일 학계에 따르면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한국문화'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채근담의 국내 수용 과정과 번역을 분석해 "대단히 많은 채근담 텍스트 중 어떤 것도 완전하다고 평가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채근담은 명나라 후기인 1607∼1613년에 홍자성(洪自誠)이 완성한 책이다.
함축적이고 짧은 말로 고결한 취향, 처세의 교훈, 속세를 넘어서는 인생관을 표현하는 문학 장르인 청언(淸言)으로 분류된다.
20세기 이후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영문으로도 번역됐다.
지금도 '동양의 탈무드', '동양 최고의 잠언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자기계발서로 널리 알려졌다.
안 교수 분석에 따르면 채근담 판본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나뉜다.
명나라 만력 연간인 1620년 이전에 나온 초간본(初刊本)과 명나라 이후에 들어선 청대에 통용된 청간본(淸刊本)이다.
안 교수는 "초간본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도서관이 소장한 목판본을 제외하면 전하는 책이 거의 없다"며 본문에는 세부 제목 없이 전집 222칙(則·고전에서 글을 세는 단위)과 후집 141칙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근담 초간본과 유사한 판본이 고렴(高濂)이 지은 '준생팔전' 증보본에 부록으로 실렸고, 일본에서는 초간본이 아닌 준생팔전 수록본을 저본(底本)으로 하는 책이 1822년 간행됐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준생팔전 수록본과 일본에서 찍은 '화각본'(和刻本) 채근담에 대해 "초간본과 대조하면 후집 136∼141칙이 누락됐다"며 "현재 유통되는 대부분의 채근담에도 여섯 칙이 빠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초간본과 준생팔전 수록본은 전문가도 접하기 쉽지 않아서 현대 출판계에서는 화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해 왔다"며 "채근담이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히게 된 데에는 화각본의 영향이 매우 크지만, 이후 나온 번역서는 화각본처럼 일부 구절을 누락하거나 일부 글자를 잘못 읽는 오류를 답습했다"고 지적했다.
채근담 판본 중 또 다른 계열인 청간본에 대해서는 "종류가 많고 복잡하다"면서도 여러 가지 특징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청간본은 수성(修省), 응수(應酬), 평의(評議), 한적(閑寂), 개론(槪論) 등 5개 항목으로 분류해 386칙을 실었다"며 "개론을 제외한 4개 항목에 수록한 185칙은 초간본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청간본은 초간본과 비교해 편차와 항목, 수록 순서가 완전히 달라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책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1708년 강희제 칙명으로 만들어진 판본을 청간본의 모본(母本)으로 추정했다.
만주어와 한문을 병기한 만한합벽본(滿漢合璧本)인 이 책은 일반 청간본에 비해 112칙이 적지만 구성과 수록 순서가 같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채근담은 국내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조선시대에는 채근담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설은 사실일까.
이에 대해 안 교수는 18세기 중국을 다녀온 사신을 통해 채근담이 조선에 수용됐고, 특히 만한합벽본이 많이 유통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의사인 이재우가 1790년에 쓴 서문이 붙은 채근담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면서 "만한합벽본 중 한문 부분만 필사한 채근담이 식자들 사이에서 제법 읽혔고, 초간본은 유통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일제강점기에 만해 한용운이 채근담 중 일부를 번역한 '정선강의채근담'을 펴내면서 채근담이 국내에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용운은 화각본이나 만한합벽본이 아닌 청간본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대에는 화각본이 대세가 됐다.
김구용, 조지훈이 1950년대에 내놓은 채근담은 모두 화각본을 번역한 책이다.
안 교수는 스테디셀러인 조지훈의 채근담에 대해 "지금 읽어도 유려하고 시적인 멋이 있으며 문체가 평이하다"면서도 "자연(自然), 도심(道心), 수성(修省), 섭세(涉世) 등으로 새롭게 편집한 것은 원본의 면모를 훼손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조지훈이 은둔과 자연친화, 소극적인 처세를 지나치게 부각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채근담에는 현실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 철학 요소와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강조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 안 교수 생각이다.
안 교수는 "채근담을 21세기 경영환경에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등 견강부회 해석이 상당히 심하다"며 "홍자성이 유교, 불교, 도교의 맹목적 수행을 비판한 것처럼 채근담의 교조적 해석은 또 다른 폐단을 낳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