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철스크랩) 가격이 13년 만에 t당 60만원을 뚫는 등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계 철강업계가 철광석 대신 고철 사용 비중을 대폭 늘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고철을 전략물자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공급대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7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철스크랩의 가격 기준이 되는 ‘중량A’ 고철 평균가격은 이달 첫째주 t당 60만5000원을 기록했다. 작년 12월 평균(31만2000원)의 두 배 수준이다. 지난 6월 말 t당 50만원을 넘어선 뒤 횡보하던 고철 가격은 10월 한 달 동안 14% 뛰었다. 중량A는 상태가 좋은 철근이나 H빔 조각으로 구성된 고철로 국내 철강업체들이 전기로 가동에 활용하는 원재료다.

고철 가격이 t당 60만원을 넘어선 것은 2008년 이후 13년 만이다. 당시 고철 가격은 중국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입량이 급감, t당 67만원까지 올랐지만 이듬해 30만원 선으로 급락한 뒤 20만~30만원 선을 유지해왔다.

최근 고철 가격 폭등은 과거와 달리 철강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가스 감축을 요구하자 철강업계가 철광석을 석탄으로 녹여 쇳물을 얻는 고로(용광로) 공법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로에 철광석 대신 재활용 원료인 고철을 넣으면 탄소 배출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포스코, 중국 바오우철강 등 대형 철강사들은 쇳물 생산에 투입되는 고철 비중을 현재 10%대에서 2025년까지 30%로 높일 계획이다.

고철을 전략물자화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은 6월부터 고철 수출 금지 법안을 추진 중이다. 작년까지 고철 수입을 금지했던 중국은 올 들어 수입을 재개하며 물량 확보에 나섰다.

고철 가격 상승의 여파는 국내 제조업체 전반에 미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고철을 재활용한 제품이 철근과 형강 등 건설자재로 쓰였지만 선박용 후판과 자동차 강판으로 용도가 확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철 비중이 장기적으로 50%까지 늘어나면서 후방 산업의 원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