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년 탄소중립' 제시 후 경직된 에너지 억제 드라이브, 전력대란 초래
민심 악화·경기 급랭에 장기집권 기반 닦는 6중전회 코앞 '전력난 해소' 선언
민심 놀라 밀린 '시진핑표 탄소저감'…중국발 미세먼지 우려도
중국이 전력 공급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산업 현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한 전력대란 사태가 일단 진정 국면을 맞는 모습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야심 차게 선포한 '2030년 탄소 정점 도달, 206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력난이 촉발된 가운데 중국 당국은 결국 민심 악화와 경기 급랭에 직면해 에너지 소비 감축 정책 강도를 낮추는 길을 택했다.

중국의 전력 공급 정상화는 중국 제조업 정상화를 넘어 세계 공급망 회복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크다.

하지만 인접국인 한국의 처지에서는 중국의 탄소 배출 저감 목표가 후퇴함에 따라 중국발 미세먼지 유입 문제 완화를 기대하는 어려워질 수 있다.

◇ 전력대란 부른 중국의 '이중 통제' 정책
중국은 7일 '전력공급 정상화'를 선언했다.

중국 전역의 전기 공급을 책임지는 국가전력망공사는 이날 성명에서 지난 6일부터는 일부 에너지 고소비 및 고오염 기업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전력 공급 제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중순 이후부터 광둥성, 저장성 등 최소 20개 성(省)급 행정구역에서 산업용 전기를 중심으로 제한 송전이 이어져 중국의 많은 제조업 기업이 생산에 큰 차질을 빚었는데 이제는 전기가 필요한 기업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만큼 전기를 쓸 수 있게 됐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중국의 에너지 대란이 일어난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세계적 원자재난 속에서 중국 내 전력 공급의 70%가량을 책임지는 석탄 공급 부족이 중국 발전소의 석탄 수급난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중국의 에너지 대란의 근본 원인을 '에너지 소비 이중 통제'(能耗雙控)로 불리는 당국의 경직된 에너지 소비 통제 정책에서 찾았다.

'에너지 소비 이중 통제'란 중앙정부가 연초 세운 계획에 따라 각 지방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에너지 소비량, 총 에너지 소비량의 양대 기준을 일정 수준 이내로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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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이중 통제' 기준이 매해 제시되기는 했다.

하지만 과거 '이중 통제' 목표는 각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하달받은 무수히 많은 정책 목표 중 하나에 불과했다.

특히나 '이중 통제' 목표는 각 지방정부 지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성장률 목표와 상충하는 지표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경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 주석이 작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국의 탄소 배출량이 2030년까지 정점을 찍고 내려가 2060년에는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을 계기로 사정이 달라졌다.

올해부터는 저탄소가 최고 지도자가 내린 '특명'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중국의 경제계획 총괄 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내놓은 상반기 점검 보고서에서 대부분 지역이 '이중 통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오면서 중국 관가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당장 9월 끝나는 3분기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각 지방정부들이 경쟁적으로 관내 공장에 전기를 아예 끊거나 제한 공급에 들어갔는데 이는 전국적 전력 대란이라는 일대 혼란으로 이어졌다.

산업 현장에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전력 사정이 특히 나빴던 선양(瀋陽) 등 일부 동북 3성 지역에서는 산업용이 아닌 가정용 전기까지 끊어져 블랙아웃(blackout·대정전)까지 발생하면서 민심이 동요하자 중국 중앙당국은 다시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중앙 정부는 전력난을 융통성 없이 '한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식'(一刀切)의 문제 해결에 나선 지방 당국의 경직성 탓으로 돌리면서 민심 수습에 나섰다.

◇ 시진핑 '3대 지도자' 등극할 6중전회 직전 '전력대란 해소'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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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국 중앙정부가 '이중 통제' 목표 달성 완화 허용을 시사하면서 전력 대란 문제는 근본적 완화 계기를 찾았다.

중앙 당국은 국영기업들에 석탄 증산을 강력하게 지시했고, 전력 요금 인상을 허용해 발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발전량을 늘리도록 유인책도 제공하면서 결과적으로 전력 공급이 정상화됐다.

중앙 당국이 최고 지도자인 시 주석이 주창한 정책이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을 부담을 감수하면서 전력 공급 정상화에 나선 것은 최근 중국의 급속한 경기 둔화 우려와도 관계가 크다.

전력난은 산업 가동에 큰 지장을 초래해 헝다(恒大) 사태로 인한 부동산 경기 위축과 함께 중국 경기 급랭의 주된 요인이 됐다.

헝다 사태로 인한 부동산 시장 급랭, 세계 공급망 병목 현상, 전력난 등의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

특히 전력난은 산업 현장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전력난이 본격화한 9월부터 두 달 연속 경기 위축 국면이 이어졌다.

결국 시 주석이 야심 차게 나라 안팎에 선포한 저탄소 정책 차원에서 추진되던 에너지 소비 강력 억제 정책이 민심 동요와 경기 위축 우려 속에서 후퇴하는 모습이다.

중국 전력 당국의 '전력난 해소 선언'이 나온 시점도 눈길을 끈다.

국가전력망공사의 발표는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닦는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이는 중국 당국이 시 주석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에 잇는 3대 지도자의 반열에 올리려는 6중전회라는 중대 정치 행사를 앞두고 주민들의 불만과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중국의 전력 공급이 재개됐다는 것은 다시 중국 전역의 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전체 전력 생산의 약 70%를 화력발전소가 담당하는데 중국 내 화력발전은 거의 절대적으로 석탄에 의존한다.

따라서 매년 겨울철을 전후로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에도 대거 유입되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올해도 유의미하게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커졌다.

이미 이달 들어 베이징을 중심으로 짙은 스모그가 나타나 각급 학교의 야외 활동이 중단되고 일부 고속도로가 폐쇄되는 등 중국 내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날이 빈번해졌다.

다만 중국의 산업 가동 정상화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공급망 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세계 인플레이션 우려도 다소나마 완화할 전망이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심각한 요소수 부족 현상도 중국의 석탄 부족 및 전력 대란 사태와 관련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어 중국의 전력 공급 회복에 따른 영향은 다층적일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