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대통령, 부인은 실세부통령…니카라과의 70대 '파워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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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과 싸웠던 오르테가·무리요 부부, 스스로 독재의 길로
딸의 성폭행 폭로에 남편 편든 무리요, 사실상 '공동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75) 니카라과 대통령과 로사리오 무리요(70) 부통령 겸 영부인이 장기 집권을 향해 가고 있다.
7일(현지시간) 중미 니카라과 대선에서 또 한 번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들 부부는 '혁명 동지'로 처음 만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오르테가는 10대 때 일찌감치 좌익 산디니스타 혁명전선(FSLN)에 가담해 친미 우파 독재 정권인 소모사 가문(1936∼1979년 집권) 타도에 힘을 보탰다.
FSLN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털다 체포돼 1967년부터 7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석방 후 쿠바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고 오기도 한 그는 1979년 FSLN이 마침내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린 후 실질적인 국가수반 역할을 했다.
이어 1984년 대선서 승리해 이듬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FSLN의 뿌리가 된 혁명가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를 모계 친척으로 둔 무리요 부통령은 영국과 스위스 등에서 유학 후 역시 소모사 가문 축출을 위해 18살에 FSLN에 들어갔다.
둘은 1977년 처음 만나 곧 함께했고, 7명의 자녀를 뒀다.
정식 결혼은 2005년에 했다.
1990년 대선에서 패한 오르테가가 재집권을 위해 절치부심한 17년간, 그리고 2007년 마침내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라 권력을 굳혀가는 동안 무리요의 역할은 단순히 내조 이상이었다.
무리요가 이전 결혼에서 낳은 딸이 1998년 오르테가로부터 11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을 때 무리요는 딸 대신 오르테가 편에 섰다.
그는 딸을 가리켜 '미친 여자',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이 의혹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없으며 이후 산디니스타 성향의 판사가 오르테가의 혐의를 벗겨줬다.
2007년 재집권 후 오르테가는 다시는 권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차근차근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우방인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정권으로부터 받은 오일머니로 빈민을 위한 정책을 폈다.
2010년 대법원을 통해 대통령 연임을 가능하게 하고, 2014년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앴다.
2017년 무리요가 부통령을 합류한 뒤 부부는 2018년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야권을 철저히 탄압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유력 대선주자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을 무더기로 체포하며 아예 경쟁자의 싹을 없앴다.
이 과정에서 무리요는 영부인 겸 부통령을 넘어 '공동 대통령'에 가까웠고, 고령의 오르테가를 대신하는 최고 실세로 여겨졌다.
시인이기도 한 무리요 부통령은 오르테가 대통령이 좀처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동안 국영 언론에서 활발히 정부 정책을 홍보했다.
전기 작가 파비안 메디나는 과거 오르테가를 다룬 책에서 "오르테가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무리요에게서 찾았고, 무리요는 오르테가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수단을 발견했다"고 표현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내부의 반대 목소리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기 연장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이 '파워커플'은 앞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오르테가·무리요 부부는 결국 그들이 무너뜨렸던 소모사 가문의 가족 독재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딸의 성폭행 폭로에 남편 편든 무리요, 사실상 '공동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75) 니카라과 대통령과 로사리오 무리요(70) 부통령 겸 영부인이 장기 집권을 향해 가고 있다.
7일(현지시간) 중미 니카라과 대선에서 또 한 번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들 부부는 '혁명 동지'로 처음 만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오르테가는 10대 때 일찌감치 좌익 산디니스타 혁명전선(FSLN)에 가담해 친미 우파 독재 정권인 소모사 가문(1936∼1979년 집권) 타도에 힘을 보탰다.
FSLN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털다 체포돼 1967년부터 7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석방 후 쿠바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고 오기도 한 그는 1979년 FSLN이 마침내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린 후 실질적인 국가수반 역할을 했다.
이어 1984년 대선서 승리해 이듬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FSLN의 뿌리가 된 혁명가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를 모계 친척으로 둔 무리요 부통령은 영국과 스위스 등에서 유학 후 역시 소모사 가문 축출을 위해 18살에 FSLN에 들어갔다.
둘은 1977년 처음 만나 곧 함께했고, 7명의 자녀를 뒀다.
정식 결혼은 2005년에 했다.
1990년 대선에서 패한 오르테가가 재집권을 위해 절치부심한 17년간, 그리고 2007년 마침내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라 권력을 굳혀가는 동안 무리요의 역할은 단순히 내조 이상이었다.
무리요가 이전 결혼에서 낳은 딸이 1998년 오르테가로부터 11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을 때 무리요는 딸 대신 오르테가 편에 섰다.
그는 딸을 가리켜 '미친 여자',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이 의혹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없으며 이후 산디니스타 성향의 판사가 오르테가의 혐의를 벗겨줬다.
2007년 재집권 후 오르테가는 다시는 권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차근차근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우방인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정권으로부터 받은 오일머니로 빈민을 위한 정책을 폈다.
2010년 대법원을 통해 대통령 연임을 가능하게 하고, 2014년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앴다.
2017년 무리요가 부통령을 합류한 뒤 부부는 2018년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야권을 철저히 탄압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유력 대선주자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을 무더기로 체포하며 아예 경쟁자의 싹을 없앴다.
이 과정에서 무리요는 영부인 겸 부통령을 넘어 '공동 대통령'에 가까웠고, 고령의 오르테가를 대신하는 최고 실세로 여겨졌다.
시인이기도 한 무리요 부통령은 오르테가 대통령이 좀처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동안 국영 언론에서 활발히 정부 정책을 홍보했다.
전기 작가 파비안 메디나는 과거 오르테가를 다룬 책에서 "오르테가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무리요에게서 찾았고, 무리요는 오르테가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수단을 발견했다"고 표현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내부의 반대 목소리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기 연장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이 '파워커플'은 앞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오르테가·무리요 부부는 결국 그들이 무너뜨렸던 소모사 가문의 가족 독재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