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관악캠퍼스의 노후 기숙사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거주형 대학 제도(RC·residential college)’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RC는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부 교육을 받는 제도로, 미국 아이비리그와 영국 명문대들이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연세대가 2014년부터 1학년 학생이 송도캠퍼스에서 1년간 생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도 2007년부터 도입 논의를 시작했지만,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2016년을 마지막으로 논의를 중단한 상태다.
서울대, 접었던 '거주형 대학' 다시 한번?

소속감과 학풍 조성에 유리

서울대 측은 일단 “노후한 관악캠퍼스 기숙사 920~926동에 대한 재건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제시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학가에선 서울대가 장기간 시행을 고려하다가 접은 프로젝트를 다시 거론한 만큼 성사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교육계에선 RC의 가장 큰 장점으로 학생들의 소속감과 공동체 정신을 자연스럽게 고양할 수 있다는 것을 꼽는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같은 영국의 종합대학이 오랜 기간 RC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구성원에게 소속감을 불러일으켰다.

서로 다른 학과의 학생, 교수들 간 소통이 활발해져 학제 간 융·복합이 원활하게 추진된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안정적인 정주 환경을 마련해 세계적인 석학들을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도 연세대를 비롯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려대 세종캠퍼스 등이 이 제도를 시행 중이다.

2014년 연세대 송도캠퍼스에서 RC를 체험한 재학생 고민석 씨(26·교육학과)는 “다른 대학은 수업 시간에만 동기와 만나는데 송도캠퍼스에선 하루 종일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과 지내다 보니 유대감이 높아지고, 진로를 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만큼 자취방을 구할 필요가 없어 주거비도 절약됐다”고 덧붙였다.

‘재추진 공식화’ 조심스러운 서울대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서울대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학생들의 반발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대는 2007년 처음으로 RC 도입을 검토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서울대는 2007년 3월 발표한 ‘서울대 장기발전계획 2007-2025’에서 세계 10위권 대학에 진입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RC 도입을 제시했다. 이후 시흥캠퍼스에 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당시 재학생들이 “학생 사회 이원화와 대학의 기업화가 우려된다”며 격렬히 반대했다. 2013년 천막 농성에 이어 2016년에는 학생들이 6개월 가까이 대학본부를 점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시흥캠퍼스 도입은 무산됐으나, 이후 관악캠퍼스에 RC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2018년 총장선거 때 오세정 현 총장을 비롯해 대부분 후보가 관악캠퍼스에 RC를 도입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오 총장 취임 후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재추진 필요성이 물밑에서 제기된 것이다.

다만 교육계 일각에선 “이미 학과 및 단과대 체제가 공고한 한국의 대학 문화 속에서 RC 도입이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기숙 의무화로 인한 학생들의 자율성 침해, 코로나19 사태 후 확산한 비대면 수업 방식도 논란거리다.

최예린/장강호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