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형주 기자
사진=오형주 기자
“전환적 공정성장은 국가와 기업, 개인의 역량 강화를 포함한 공급 능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수요 측면에 중점을 뒀던 소득주도성장과 차별화된 개념입니다.”

8일 경기 안산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만난 하준경 경제학부 교수(사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경제슬로건인 전환적 공정성장과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의 차이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하 교수는 지난 2일 출범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이 후보 직속 ‘전환적 공정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당 선대위에서 경제학자 중 유일하게 공식 직책을 받았다.

하 교수는 기업가의 혁신을 경제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꼽은 조지프 슘페터의 성장론을 연구한 중도 성향 거시경제학자로 분류된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브라운대에서 거시경제 및 경제성장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에서 행원과 금융경제연구원 과장 등으로 8년여 동안 근무해 중앙은행의 역할 등 화폐금융론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 교수 스스로도 자신을 ‘슘페터리언 성장론을 전공한 케인지언’으로 소개한다.

이 후보와는 올초 ‘국가부채 논쟁’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 후보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정 건전성을 놓고 설전을 벌이면서 “외국 빚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정부 적자는 민간의 흑자이고 나랏빚은 민간 자산”이라는 하 교수의 주장을 인용했다. 이하는 인터뷰 전문.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 매출증대 정책

Q. 교수님께는 한국은행에서 근무했고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대체로 주류경제학자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경제브레인을 자처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저는 원래 정치권에 가까운 사람이 아닙니다. 언론사 칼럼을 오래 써왔죠. 칼럼을 쓰면서 한국 경제의 여러 문제를 많이 다뤘습니다. 논문도 많이 썼고요. 올해 초 이재명 후보가 제 칼럼을 본 뒤 만나자고 연락해왔습니다.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한국 경제의 여러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식견과 리더십을 갖추신 분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상당히 실용적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를 잘 알고, 정치인 답지 않게 금융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한국 경제의 많은 문제는 사실 ‘돈의 흐름’에서 생겼는데 그런 문제를 잘 해결할 것 같았습니다.


Q. 이재명 후보에 대해선 평소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A. 저는 원래 중도 성향입니다. 케인지언에 가깝다고 보면 되죠. 문재인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케인지언 성향이니까 이쪽(민주당)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언론에 글을 쓸 때는 (현 정부에) 비판적으로 씁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하려는 건 격려해 주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제가 성남시에 거주하면서 시장일 때부터 ‘일을 잘 한다’고 많이 느껴왔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일이 되게 하는 스타일’이라고 봅니다. 성남시에서 학생들 교복을 챙겨주는 등 어떻게 보면 소소한 생활밀착형 정책들을 하는 걸 봤습니다. 주민들이 ‘일을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정책들을 주로 시행하시더라고요.


Q. 이재명 후보는 전국민에 기본소득을 나눠주자고 주장합니다. 교수님께서도 지난 2월 칼럼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지원의 단순·신속성에 주목하셨는데요. 기본소득에 대해 어떤 입장이십니까.

A. 경제학적으로 데이터 생산 노동에서 ‘좋아요’ 누르기 같은 행동은 일반적인 생산함수로 설명이 잘 안 됩니다. 한계생산이 체감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만큼 보수를 정확히 측정해 지급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가가치를 플랫폼이 다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이런 생산함수 특징 때문에 생기는 이득을 데이터 생산 노동자에 나눠줘야 한다는 논의는 예전부터 경제학계에서 있었습니다.

알바 등 비정형 노동자가 많아지면서 기존의 복지전달 체계가 애매해진 면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뭔가 소득보장이나 보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이해할 수 있죠.

물론 기본소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사실 완전한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이 먹고 살만큼은 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긴 어렵죠. 디지털세만 해도 우리가 이제 디지털 전환하는데 세금을 왕창 매길 수 없습니다. 탄소배당도 일부 할 순 있겠지만 아무래도 금액 면에선 제한적이고요.

다만 먼 미래에 산업구조가 완전히 바뀌면 기본소득이 필요한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의 가능성을 실험해보자는 것입니다.

기술전환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탄소배당이나 국토보유세를 한국 현실에서 기본소득과 연결시킬 여지가 있습니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은 부동산 세제의 선진화를 위한 이행과정에서 필요한 수단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적 합의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어디까지나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한 수단일 뿐 입니다.
사진=이재명 후보 민주당 예비경선 출마선언 영상 캡쳐
사진=이재명 후보 민주당 예비경선 출마선언 영상 캡쳐
Q. 이재명 후보의 재난지원금 추가 지원 주장도 논란거리입니다. 현재 ‘위드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었고 정부부채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추가적 지원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A.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다 떠안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상공인들이 진 빚의 증가율이 20% 가량 됩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빚 증가율은 13%입니다. 전체 가계 대비 소상공인 빚이 추가로 증가한 부분을 액수로 환산하면 약 70조원입니다. 이 70조원은 소상공인들이 온전히 떠안은 액수인 것이죠.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소비 비중으로 환산한 가계소비 감소분도 약 70조원입니다. 결국 우리가 소비를 평소처럼 했으면 그 70조원은 소상공인에 갔을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단절로 소비가 70조원 줄면서 소상공인들이 70조원의 빚을 진 셈입니다.

그래서 70조원 정도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상공인 빚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매출 증대를 위한 정책패키지입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 매출지원에 해당됩니다. 소멸형 지역화폐로 줘서 골목상권에 돈을 돌게 하자는 겁니다.

지난 9월 지급한 5차 재난지원금 사용기간이 오는 12월 말 끝납니다. 이에 따라 갑자기 소비진작 정책 흐름이 끓길 수 있습니다. 재난지원급 추가 지급은 코로나19 종식 전까지 소상공인 매출증대 정책 흐름을 이어가자는 취지입니다. 70조원 중 일부는 매출지원 하고 일부는 손실보상이나 빚 탕감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빚 탕감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쉽게 빨리할 수 있는 것이 매출지원입니다. 70조원 중 20~25조원을 매출지원하려면 1인당 50만원씩 지급하면 됩니다. 15조원이면 30만원이고요. 재정부담을 고려해 이걸 한 번에 주거나 두 차례에 걸쳐 나눠줄 수 있습니다.

비경제적 측면에선 국민에 대한 위로의 성격도 있습니다.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1인당 300만원 이상 지급했습니다. 일본도 100만원 가량 줬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준 액수가 50만원이니까 나머지 50만원을 채워서 최소한 일본 수준으로 맞추자는 겁니다.


Q. 이재명 후보는 재난지원금 추가지급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국가부채가 전 세계적으로도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인데 가계부채 비율은 높은 수준인 점을 근거로 듭니다.
과거엔 교수님 칼럼을 인용해 “외국 빚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정부 적자는 민간의 흑자이고 나랏빛은 민간의 자산”이라는 주장도 했는데요. 오늘날 개방경제 현실에서 정말 그렇게 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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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외국 빚에 대한 의존도를 우선 판단해야 합니다. 한국은 순대외채권이 수천억달러에 달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달러가 유입되느냐 여부입니다. 한국은 순달러 유입국입니다.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고 있고요. 그건 우리가 외국에 넷(순)으로 빚을 지고 있진 않다는 뜻입니다. 국가부채가 사실은 우리 민간에 대한 부채와 다름없다는 얘깁니다.

민간에 여유자금이 많으면 누군가 수요해줘야 하는데 아무도 안하면 결국 그 돈이 어디 고여있게 됩니다. 그게 많이 고이면 유동성 함정이 되고요. 한국은 돈이 부동산에 고여 있습니다. 그래서 집값이 계속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돈의 흐름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한 합니다. 거기에 국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중요시하는 건 경제성장입니다. 성장 물꼬를 터서 기업들이 많이 생겨 그 돈을 수요하면 돈의 흐름이 잡힙니다. 그러면 국가가 부채를 많이 안 져도 경제가 저절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물꼬를 터줄 때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합니다. 국가 투자로 길을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이 후보도 말씀하셨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주변에 일자리 생겨난 것과 비슷한 얘깁니다.

요즘 중요한 생산요소는 사람, 지식, 그리고 기술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생교육과 지식, 연구개발(R&D) 투자, 산업전환 인프라를 까는 데 국가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혁신은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안전망을 꼭 필요로 합니다. 안전망이 잘 돼 있을수록 혁신이 잘 된다는 연구결과가 많습니다. ‘이게 망해도 내가 재기할 수 있다’는 안전망이 있으면 민간이 더욱 리스크 테이킹 할 여건이 마련됩니다.

우하향을 우상향의 지속성장으로 바꾸는 게 성장경로 전환입니다. 미사일이 다른 궤도로 옮겨가려면 연료를 많이 써서 추진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한 번 새로운 궤도에 안착하면 그 다음엔 연료를 많이 안 써도 수월하게 움직입니다. 그 역할을 국가재정이 맡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물론 한국은 개방경제라 외국에 빚을 너무 많이 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겪으면서 ‘외채망국론’이 나왔죠. 국가는 빚을 덜 졌지만 민간이 외국돈을 쉽게 빌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 트라우마’ 이후 굉장히 보수적으로 변했습니다. 적자국이 갑자기 흑자국이 되고, 대외채권국이 됐죠.

참 좋은 일이긴 한데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내수가 위축됐다는 것입니다. 경상수지 흑자를 내더라도 내수가 좀 경제를 받쳐 주는게 좋습니다. 이처럼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국가가 재정을 활용해 레버리지를 일으켜 민간으로 자금이 흐르게 하자는 것입니다.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선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하고, 그러려면 세금 낼 인구가 많아야 합니다. 인구가 줄면 어떤 정책도 먹힐 수 없죠.

그래서 지금은 재정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정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재량껏 쓰는 것이라 시장의 규율을 받지 않습니다. 설령 국가부채비율이 명목상 높은 상황이더라도 재정지출에 따른 사회적 수익률이 자금조달 비용보다 높다면 써야죠. 돈을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안 쓰면 문제입니다.

지금 제가 볼 때는 돈을 써야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장 저출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출산율이 1%도 안 되는 건 비정상적 상황이죠. GDP 대비 소비의 비중도 45%는 너무 작습니다. 미국은 70%가 넘습니다. 너무 소비를 안하다 보니 내수가 심하게 위축됐습니다. 정책적 노력을 통해 경제가 굴러가게 만들면 다시 건전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재명은 시장의 움직임과 신뢰 중시"

Q. 이재명 후보가 지난달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뒤 채권시장에서는 3년 만기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이상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A. 이재명 후보는 사실 시장 움직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재난지원금은 새로 빚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남는 세수로 지급하자는 얘깁니다. 설사 빚을 내게 되더라도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성장 등 사회적 수익률이 높다면 충분히 지급할 가치가 있습니다. 경제성장의 성과로 나중에 세금이 충분히 많이 걷히면 얼마든지 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장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하면 감안을 해야죠. 거시경제 균형을 넘어 외국돈을 끌어다 재난지원금을 나눠주자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항상 시장의 반응을 보고 시장과 거시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책을 펴야죠.

현재 3년물 국채금리가 2% 수준인데요. 작년보다 높아지긴 했지만 그동안 물가가 올라간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상승한 것은 아닙니다. 실질금리를 따져보면 더욱 올라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은 ‘국채는 국가통합의 시멘트’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자 해밀턴은 각 주들의 부채를 통합해 국채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당시 남부 주들은 거부했습니다. 북부 주들이 빚이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밀턴이 남부에 가까운 워싱턴DC를 수도로 정하는 것으로 타협해 국채를 만들게 됐습니다.

해밀턴의 국채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국채는 만기가 와도 상환 없이 계속 차환 발행됐습니다. 일종의 ‘시뇨리지(화폐주조차익)’이 생기면서 산업정책과 기술투자 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해밀턴의 말대로 미국이 진정한 연방국가로 도약하게 하는 시멘트 역할을 했죠.

조만간 앙겔라 메르켈의 뒤를 이어 차기 독일 총리가 될 올라프 숄츠 사회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유럽에 ‘해밀턴 모멘트’가 왔다”고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유럽은 각국 통화만 ‘유로’로 통합하고 재정 통합은 아직 이루지 못한 상황입니다. 앞으로는 유럽 각국이 공동의 채권을 발행하는 해밀턴 모멘트가 올 것이란 의미죠. 숄츠가 유럽연합(EU)의 리더인 독일 총리가 되면 로 공동 국채를 발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국채를 잘 활용하는 건 경제정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국민의 노후대비 자금이 부동산 보단 국채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국채가 민간 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이동하게 하는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끔 하자는 것이죠. 물론 신뢰는 중요합니다. 국채를 무한히 찍으면 신뢰가 떨어지고 비용은 커집니다. 국채가 안전한 투자상품이라는 신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Q.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선별·보편지급 논란도 뜨겁습니다.

A. 저는 선 보편지원, 후 선별환수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보편적으로 주고 거둘 때 환수하자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복지지원은 타켓팅을 많이 하죠. 아동수당이나 각종 출산지원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소비진작이나 코로나19 피해 지원은 누가 피해를 많이 입고 적게 봤는지 모른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지금 선별을 하자면 어떤 경우엔 2년 전 데이터를 갖고 해야 합니다. 거기다 한국은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 실시간 소득 파악도 쉽지 않습니다. 사각지대도 많고요.

이런 상황에선 급하니 일단 모두에 주고 나중에 세금 낼 때 피해가 적었던 사람을 찾아 환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건 사실 선진국들이 많이 합니다. 미국의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은 선 보편지원 후 선별환수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결과적 선별인 셈이죠. 줄 때 선별하는 것보단 나중에 선별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입니다.

미국 경제학자 중에서는 아예 재난지원금을 경기변동에 따라 상설화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종의 ‘자동 안정화 장치’인데요. 경기가 안 좋아지면 1인당 얼마씩 자동으로 지급하자는 것이죠. 그러면 정책의 시차 문제도 없어지고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도 피할 수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제학자였던 클라우디아 삼이 이런 주장을 2019년부터 해왔습니다.


Q. 이재명 후보의 경제정책은 결국 돈을 무한정 풀어 경기를 살리자는 현대화폐이론(MMT)에 근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MMT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국가 권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채를 무한히 발행해 중앙은행이 다 사주고 모든 사람의 일자리를 보장해준다는 건 쉽지 않은 얘깁니다. 한국이 그렇게 한다고 하면 국제시장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시장의 신뢰는 중요합니다. 만약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시장에서 불신을 받으면 안 됩니다. 국가정책에서 시장의 신뢰라는 제약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한국은행에 대해서 민주당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은이 소상공입·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한은의 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고 발권력을 동원해 취약계층 지원이나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자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A. 중앙은행은 신뢰가 중요합니다. 돈을 막 찍어서 여기저기 쓰고 하면 신뢰가 떨어져 사람들이 한국은행권을 안 쓸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가치는 중요하죠. 기본적으로 한은에 맡겨진 의무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란 점을 존중해야 합니다. 중앙은행을 정부에서 따로 떼어 독립시킨 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손발을 묶은 것과 비슷합니다. 율리시즈가 사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손발을 묶은 것과 같죠.

그런데 몇몇 나라들은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로 고용안정을 넣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현실에서 고용안정을 넣는 것이 필요한지 검토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만약 넣는다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의 하위목표로 넣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한은이 소상공인 채권매입에 나서는 것이 어떤 득실이 있는지는 앞으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면 해볼 순 있겠습니다. 하지만 잠재적 비용은 중앙은행의 신뢰가 될 것입니다.

공급능력 중시하는 '역량강화 국가'가 비전

사진=오형주 기자
사진=오형주 기자
Q. 이재명 후보는 ‘성장의 회복’을 강조하며 ‘전환적 공정성장’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슘페터리언 성장론의 대가인 교수님께서 맡으신 역할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전환적 공정성장은 지금 한국사회와 경제발전 단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과거 정부의 성장전략과는 어떻게 다른지요.


A. 전환적 공정성장은 소득주도성장과 다릅니다. 저는 소득주도성장은 하나의 구호이고, 실제로 한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고 봅니다. 소주성은 기본적으로 수요를 진작해 성장한다는 거죠. 물론 수요는 케인지안적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장기성장은 수요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장기성장을 위한 기술혁신은 결국 사람의 역량이 더 커져야 하고, 기업과 국가 역량 커져야 가능합니다.

공정과 전환, 성장은 모두 다 중요한 가치고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성장을 해야 공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똑똑한 사람 10명이 있는데 줄 수 있는 일자리는 1개 뿐이면 어떤 기준으로 배분해야 합니까. 어떻든 불공정하단 얘기가 나올 겁니다. 이를 해결할 근본적 방법은 기회(일자리)를 10개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실질적 공정이 중요한 겁니다. 실질적 공정이 되려면 그만한 성장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정해야 전환도 가능합니다.

기술전환이 대표적입니다. 기술을 바꾸면 손해보는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이 사람들이 기술혁신에 동의하게 하려면 공정한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 사람만을 위한 전환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전환이란 점을 설득해야 하죠.

모든 사람이 그런 기술혁신 역량을 강화하게끔 만드는 공정은 절차적 공정이 아닌 공정한 기회를 의미합니다. 누구는 기술을 배울 기회가 있는데 누군 없는 상황에서 같은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이런 부분은 결국 국가가 해결해야 합니다. 전환적 공정성장은 이런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다른 성장론과 큰 차이를 나타냅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수요 측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수요와 일자리를 중요시하죠. 상대적으로 역량강화는 소홀히 한 측면이 있습니다. ‘휴먼뉴딜’ 얘기가 나왔지만 실질적 내용은 부족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토건사업으로 쏠렸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말은 좋은데 실체가 불분명했죠.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건 분명 중요한 과제인데 실질적으로 국가 투자가 얼마나 이뤄졌는지는 의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소주성과 함께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을 다뤘지만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진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전환적 공정성장은 공정-전환-성장이 연결됩니다. 수요 뿐 아니라 역량 등 공급능력을 중시하는 ‘역량강화 국가’를 만들자는 얘깁니다.


Q.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정경제에 대한 구체적 의견이 궁금합니다.

A. 공정경제는 분명 일정부분 성과가 있었습니다. 하진 아직도 대·중소기업 관계에서는 중소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등 불만이 팽배합니다. 힘의 불균형이 있으니 당연히 운동장은 기울었습니다. 국가는 이런 근본적인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켜야 합니다. 그렇다고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없애면 안 됩니다. 오히려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은 더 키워줘야 하죠. 중소기업은 강소기업 되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국가가 중소기업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기술을 전파(스필오버)하고 지배구조 등 문제 해결을 도와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강조한 ‘억강부약’을 통해 애초에 이런 불법행위가 덜 일어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강자를 억누르는게 아니라 반칙과 특권을 억누르자는 것입니다. 힘의 격차가 생기면 정상보다 비정상 거래를 하려는 유혹이 생깁니다. 강자는 반칙이나 특권을 쓰기 보단 국제경쟁력으로 눈을 돌려 혁신해야 합니다. 약자는 역량을 키우게 도와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힘의 균형입니다.


Q. 문재인 정부는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부동산 정책에서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강조합니다.
교수님께선 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정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A. 거시경제학자로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후대비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렀다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집권 직후 돈의 흐름을 다른 곳으로 돌렸어야 하는데 임대사업자 양성화 정책 등으로 부동산으로 쏠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전세나 임대료는 비교적 안정화 됐지만 집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번엔 전세금도 올랐습니다. 전세금은 금리와 역의 관계가 있는데 코로나19로 금리가 더 떨어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임대차3법은 취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이 임차인을 내쫓고 들어와 살게 하는 결과를 낳았죠. 지방은 물론 심지어 해외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서울에 사는 세입자를 내보내는 일도 있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건 세제입니다. 1가구1주택 위주로 재편되면서 규제차익이 너무 커졌습니다. 1가구1주택에 너무 많은 혜택을 몰아주다보니 다주택자는 집을 파는 대신 자녀들에 증여해 1주택자로 만드는 길을 택했습니다. 어찌보면 가구분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쓴 것입니다. 자연히 주택수요는 더욱 늘어났습니다.

공급도 세제도 금융정책도 모두 ‘핀셋’으로 이뤄졌습니다. 한쪽을 틀어막으면 다른 쪽에서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결국 돈은 계속 부동산 시장에서만 돌게 됐죠. 금융규제를 듬성듬성 하다 보니 ‘쓰나미’를 막지 못했습니다.

세금은 단순하고 투명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다주택자는 투기꾼이지만 임차인 입장에선 임대인입니다. 1주택자와 규제차익이 너무 심하면 곤란합니다. 정부는 처음엔 임대사업자를 우대했다가 나중엔 죄악시했습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노인이 이제 와서 서울 들어와서 살겠다고 나서는 건 규제차익에 의한 인센티브 왜곡 현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식 부동산 세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보유세는 높지만 취등록세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양도세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Q.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음식점 총량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음식점 총량제는 상당한 이론적 실증적 기반이 있는 주장입니다. 미국에서는 레스토랑 총량제와 비슷한 정책을 실시하는 주들이 있습니다. 주류 판매면허의 경우 18개주에서 제한합니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주에서는 인구 3000명당 1개로 묶어놨습니다. 면허를 거래할 수도 있고요. 다른 주에서도 음식점을 새로 내려면 소방법 등 여러 까다로운 규제를 거치게 해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진입장벽을 둔 것은 극심한 경쟁은 모두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기술의 첨단(프런티어)을 달리는 기업들은 경쟁도가 높을수록 혁신이 잘 됩니다. 그런데 프런티어에서 거리가 먼 기업들, 예컨대 음식점 등 자영업자의 경우는 경쟁이 심할수록 하루하루 생존이 벅차 혁신이 쉽지 않습니다. 경쟁도와 혁신 사이에 ‘U자형’ 관계가 있는 것인데요.

따라서 음식점의 경우는 적정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총량제를 언급한 건 조금 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인구구조 변화도 중요한 고려요인입니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자영업 창업이 급증하고 있는데요. 이 후보 말씀은 이처럼 자영업으로 유입되는 수요를 줄인다는 전제 하에 총량을 조절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당연히 자영업 진입수요를 줄이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우선이죠. 하지만 자영업 문제를 그냥 방치할 수 없다는 화두를 던진 것입니다.

저희가 준비한 정책 중엔 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와 관련한 정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준비된 창업, 고부가가치 창업으로 유도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총량제 등으로 진입장벽을 높이는 건 향후 과제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안산=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