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워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주요 정보를 제출받은 가운데 중국 언론이 이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9일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자료 확보 소식을 전한 기사에서 "미국은 세계 반도체 위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반도체 관련 기업으로부터 기밀 데이터를 강탈했다"며 "미국은 이번에 실질적으로 명백한 약탈을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내에서는 미국이 이 자료를 향후 대중 반도체 제재 확대에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 앞서 화웨이를 제재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는 핵심 정보로 쓰일 것이라는 게 중국 측 시각이다.

중국이 특히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은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의 핵심 정보가 미국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9월 말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고객사 정보 등 총 26개 항목 설문을 제시하며 8일까지 답하라고 요구했다. 대다수 반도체 기업들은 기한에 맞춰 미국에 자료를 제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스1]
중국은 '글로벌 공장'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반도체를 외국 기업에 크게 의존해왔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의존도가 매우 크다. 첨단 시스템 반도체는 TSMC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실제로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전년보다 14% 증가한 3800억 달러(한화 약 448조원)에 달했다. 이는 작년 중국의 전체 수입액 중 약 18%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중국도 화웨이, 알리바바 등 자국 대형 기술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인공지능(AI) 칩, 스마트폰용 시스템온칩(SoC) 등 여러 반도체 설계 기술을 발전시켜나가고 있지만 최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TSMC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부문이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회사인 SMIC는 첨단 미세공정 문턱으로 여겨지는 14㎚ 공정 제품 양산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단계다. 중국 반도체 설계 회사들에게 '최첨단 반도체' 생산은 맡길 수 없는 실정이다.

푸젠성이 운영하는 '해협 소비자 신문'은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미국과 교섭을 시도했지만 현재로서는 별 효과가 없다"면서 "삼성은 다국적 기업이고 미국 투자자들도 삼성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데다 국가 안보 앞에서 한국 정부는 기업 이익을 희생시켜가며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제공된) 데이터를 사용한다면 중국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중국은 기술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공급망을 단단히 장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TSMC 자료 제출을 둘러싸고 중국 측에서 추측이 나오는 것은 기술 전쟁을 벌여온 중국과 미국 간 긴장으로 인한 불신이 반영됐다"고 짚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