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기업에 대한 경찰 수사가 우편조서 등 서면 중심으로 이뤄진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경찰서로 소환해 조사하는 방식도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9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양벌규정에 따라 기업을 수사할 때는 서면 위주로 하라’는 내용을 담은 양벌규정 관련 수사 지침을 각 시·도 경찰청에 전달했다. 이번 지침은 양벌규정에 따른 기업 수사 절차를 간소화한 것이 골자다. 경찰이 양벌규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수사 지침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벌규정은 법을 직접 위반한 피의자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법인에도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이다. 경영 책임자와 법인을 모두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중대재해처벌은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에도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적용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를 보면 경제 관련 법률에 있는 형사처벌 규정 가운데 92%는 양벌규정을 적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36.2%는 징역, 과태료 등 여러 처벌 조항이 중복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과도한 처벌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이와 관련한 기업들의 불만은 적지 않았다. 그동안 경찰에는 양벌규정과 관련한 명확한 수사 지침이나 법령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사안에 따라 기업과 그 대표를 수사하는 방식이 제각각이었다. 기업 대표가 일일이 경찰서에 나와 조사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겨 경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있었다.

경찰과 달리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기업 대표를 조사할 때 가능한 한 우편 등을 통해 진술받도록 훈령 등에 규정하고 있다.

경찰도 이번 지침을 통해 양벌규정 대상 기업이나 대표를 수사할 때 우편조서와 진술서 위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기업 대표에 대한 소환 조사를 지양하는 것도 원칙에 담겼다.

과실 유무를 두고 다툼 소지가 있거나 해당 기업이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정황이 드러날 때는 대표를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양벌규정 관련 수사 지침이 마련돼 수사 절차가 간소화된 만큼 기업이 영업활동에서 입는 피해도 최소화될 것”이라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