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세대출 규제, 합리적 대안 찾을 때
전세자금대출의 이자는 세입자가 매월 납입하지만, 원금은 집주인이 만기에 반환한다. 서류상 차주와 실질적 차주가 달라, 자신의 대출 여력을 넘어선 주택에 대한 갭투자를 자극한다.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적절한 규제 없이는 가계대출도 집값도 잡기 어렵다.

금융당국 입장에서 보면, 전세자금대출의 이자에 대해서는 세입자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산정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원금에 대해서는 집주인의 DSR에 반영해야 할지, 세입자의 DSR에 반영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원금을 집주인 DSR에 반영시킨다면, 당장 집주인들로 하여금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라는 소리냐”는 비판이, 세입자 DSR에 반영한다면 “전셋값은 다락같이 올려놓고, 집 없는 서민들을 월세살이로 내몬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신규 임대차 계약의 전세자금대출 원금을 집주인과 세입자의 DSR 산정에 적절히 나눠 반영하되, 전자의 비율을 크게 잡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 이후, 동일 조건으로 혹은 임대료를 5% 이내 인상해 재계약할 때마다 집주인의 DSR에 포함되는 부분을 대폭 낮추고, 세입자의 DSR에 포함되는 부분을 점진적으로 소폭 올리는 방안을 고려해 보자.

신규 전세 계약에서 집주인의 DSR 반영 비율을 크게 잡아야 하는 이유는, 갭투자를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전세를 끼고 주택을 새로 구입하는 갭투자뿐 아니라, 자신이 살던 집을 새로운 세입자에게 전세를 주고, 새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적용돼야 한다. 재계약부터는 집주인의 DSR 반영 비율을 낮추는 이유는, 전세 계약의 장기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 높은 DSR 규제를 받기보다는, 기존 계약을 갱신해 DSR을 낮추고자 할 유인이 생긴다. 이후 갱신 계약에서도 임대료를 올리기 쉽지 않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신규 전세 계약에서는 본인의 DSR 반영 비율이 낮아서 전세자금대출을 받기가 어렵지 않다. 소득이 낮은 2030 청년층의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계약 갱신 때 본인의 DSR 반영 비율이 소폭 상승하겠지만, 이는 최초 계약 당시 낮췄던 DSR 반영 비율을 조정하는 과정이다. 재계약 시 DSR 반영 비율의 조정은, 실질적으로 반환하는 원리금의 상승이 아닌, 추가 대출 여력에 대한 규제인 만큼, 세입자 입장에서는 추가 대출 여력을 포기하는 대신, 해당 주택에서 계약을 연장하고 장기로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세입자 입장에서 높아지는 DSR이 부담된다면, 다른 집을 찾아 낮은 DSR로 신규 전세 계약을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예로 신규 전세 계약 시 전세자금대출 원금 전액을 집주인의 DSR에 계상하되, 재계약 시점부터는 세입자의 DSR에 일부 계상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타인의 전세자금대출에 기반한 갭투자를 적절히 규제하고, 세입자보다 집주인에게 더 계약 갱신의 유인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임대차 3법보다 월등한 주거정책이다. 이와 더불어, 재계약 시 전·월세 전환율로 월세 비중을 낮추고 보증금 비중을 높이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각자의 DSR 반영 비율을 낮춰준다면, 전세가 과도하게 월세화되는 추세도 막을 수 있다.

사전적 의미의 DSR은 연간 소득 대비 총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책의 영역에서 DSR은 ‘원리금 상환 비율’이라기보다는 개인별 ‘대출 여력’으로 인식된다. 대출 여력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인 만큼 일률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정책적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주체의 유인체계를 조정하는 시장친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신규 계약 시 집주인과 세입자의 적절한 DSR 반영 비율을 찾고, 재계약 시 적절한 조정 비율을 찾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금융당국이 마이크로 데이터에 기반한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골든룰’을 찾고 점차 미세조정을 통해 규제를 촘촘하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