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에 걸릴라" 은행들 몸 사려…쪼그라드는 마이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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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이터 적용 상품 비교·추천
은행들 금소법 위반 소지 커져
9월말에나 확정된 금융위 가이드
업계 "시간 촉박…일정에 차질"
은행들 금소법 위반 소지 커져
9월말에나 확정된 금융위 가이드
업계 "시간 촉박…일정에 차질"
“9월 말에야 가이드라인이 나왔는데 한 달 만에 서비스 출시를 완료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1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신용정보원이 주최한 마이데이터 준비상황 점검회의 곳곳에서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국이 사업자 인허가 권한을 쥔 상황에서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간담회에서 다음달 1일로 정해진 마이데이터 시범 서비스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내 손 안의 PB(프라이빗 뱅킹)’로 기대를 모아온 마이데이터 사업이 시작 전부터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빠듯한 사업 시행 일정에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핀테크사들이 줄줄이 초기 불참을 선언했고, 금융회사들은 사업 범위 재검토에 들어갔다. 자산 관리 등 맞춤형 금융 서비스 사업의 ‘청사진’으로 제시됐던 서비스들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발목이 묶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문에 따르면 당국은 이달 말까지 마이데이터 허가업체 간 개인 신용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비공개 베타(시범) 서비스를 완료할 예정이다. 다음달 1일부터 한 달간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를 받은 업체들은 공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다. 대신 내년 초부터는 API망을 갖추지 못한 업체는 모바일 앱을 통해 각종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신용정보법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스크래핑(데이터 긁어오기)’ 방식의 데이터 수집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API망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는 개인 신용정보 범위조차 지난 9월 30일에야 확정됐다. 한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무슨 정보가 오갈지 알아야 망을 구축할 수 있는데 범위가 너무 늦게 확정되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며 “전 직원이 매달리고 있지만 인력과 시간이 모자라 연초 서비스 출시는커녕 기존 서비스마저 중단할 처지”라고 토로했다.
빅테크들도 서비스를 차질 없이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한 빅테크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보안성과 안정성이 중요한 금융 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대량의 데이터를 갖고 서비스를 검증한다”며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서비스를 내면 사고나 민원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올해는커녕 내년 초에 제대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A은행은 넷플릭스를 많이 보는 개인에게 적합한 신용카드 등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구상했다가 최근 방향을 틀었다. 금소법 유권해석에 따르면 카드 상품을 비교·추천하려면 ‘카드모집인’이나 ‘제휴모집인’으로 등록해야 하고, 카드모집인으로 등록하더라도 한 카드사의 상품만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카드를 직접 추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기준이라면 ‘현재 소비 습관에 지금 쓰는 카드는 맞지 않다’는 식의 조언만 가능하다”며 “상품명을 제공할 수 있는지 당국의 유권해석이 내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이 마이데이터 사업 시행의 목적인 ‘소비자 편의’를 줄이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B은행 관계자는 “금융 상품 추천 서비스를 구상하다가 빅테크의 금융 상품 비교 서비스가 금소법 위반 대상이라는 당국 판단이 나온 뒤 잠정 중단했다“며 “금소법은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의미가 있겠지만, 당초 구상한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활용도는 크게 낮추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진우/김대훈/빈난새 기자 jwp@hankyung.com
지난 1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신용정보원이 주최한 마이데이터 준비상황 점검회의 곳곳에서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국이 사업자 인허가 권한을 쥔 상황에서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간담회에서 다음달 1일로 정해진 마이데이터 시범 서비스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내 손 안의 PB(프라이빗 뱅킹)’로 기대를 모아온 마이데이터 사업이 시작 전부터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빠듯한 사업 시행 일정에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핀테크사들이 줄줄이 초기 불참을 선언했고, 금융회사들은 사업 범위 재검토에 들어갔다. 자산 관리 등 맞춤형 금융 서비스 사업의 ‘청사진’으로 제시됐던 서비스들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발목이 묶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데이터 ‘도로’도 구축 못 했다
사업에 제동이 걸린 것은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시간이 너무 촉박하게 주어진 것이 주된 이유다. 지난 8월 금융당국은 마이데이터 허가를 받은 금융사와 핀테크사에 10월 15일까지 마이데이터 표준 API(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망 구축을 완료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마이데이터를 통해 주고받는 개인 신용정보가 ‘자동차’라면, 표준 API망은 개인 신용정보가 오가는 ‘도로’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위해 정보를 주고받는 표준 API망은 필수적이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내년 1월 1일부터 정식으로 시작된다.공문에 따르면 당국은 이달 말까지 마이데이터 허가업체 간 개인 신용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비공개 베타(시범) 서비스를 완료할 예정이다. 다음달 1일부터 한 달간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를 받은 업체들은 공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다. 대신 내년 초부터는 API망을 갖추지 못한 업체는 모바일 앱을 통해 각종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신용정보법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스크래핑(데이터 긁어오기)’ 방식의 데이터 수집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API망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는 개인 신용정보 범위조차 지난 9월 30일에야 확정됐다. 한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무슨 정보가 오갈지 알아야 망을 구축할 수 있는데 범위가 너무 늦게 확정되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며 “전 직원이 매달리고 있지만 인력과 시간이 모자라 연초 서비스 출시는커녕 기존 서비스마저 중단할 처지”라고 토로했다.
빅테크들도 서비스를 차질 없이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한 빅테크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보안성과 안정성이 중요한 금융 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대량의 데이터를 갖고 서비스를 검증한다”며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서비스를 내면 사고나 민원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올해는커녕 내년 초에 제대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금소법 리스크에 은행들도 발 뺀다
은행들도 마이데이터 사업 범위를 축소하거나 결정을 미루고 있다. 사업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은 미미한 반면 당국이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금융사와 핀테크가 판매할 수 있는 금융상품 범위를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법 위반 소지만 커졌다는 판단에서다.예를 들어 A은행은 넷플릭스를 많이 보는 개인에게 적합한 신용카드 등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구상했다가 최근 방향을 틀었다. 금소법 유권해석에 따르면 카드 상품을 비교·추천하려면 ‘카드모집인’이나 ‘제휴모집인’으로 등록해야 하고, 카드모집인으로 등록하더라도 한 카드사의 상품만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카드를 직접 추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기준이라면 ‘현재 소비 습관에 지금 쓰는 카드는 맞지 않다’는 식의 조언만 가능하다”며 “상품명을 제공할 수 있는지 당국의 유권해석이 내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이 마이데이터 사업 시행의 목적인 ‘소비자 편의’를 줄이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B은행 관계자는 “금융 상품 추천 서비스를 구상하다가 빅테크의 금융 상품 비교 서비스가 금소법 위반 대상이라는 당국 판단이 나온 뒤 잠정 중단했다“며 “금소법은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의미가 있겠지만, 당초 구상한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활용도는 크게 낮추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진우/김대훈/빈난새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