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 "영화랑 같은 기간에 3배 작업, 미장센 신경 못써" [인터뷰+]
김지운 감독이 첫 드라마를 연출한 소회를 밝혔다.

지난 4일 애플TV+(플러스) 한국 서비스 오픈과 함께 '닥터 브레인'(Dr.브레인)이 공개됐다. 아직 2회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묘한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는 평이다.

'닥터 브레인'은 다른 사람의 뇌를 엿볼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가미한 SF드라마다. 뇌에 담긴 의식과 기억에 접속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집념을 가진 뇌과학자의 감정의 여정을 다룬다. 현재까지 공개된 2회 분량의 영상에서는 아내와 아들의 죽음 뒤에 의문의 사건이 있었고, 이를 깨닫게 된 주인공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추적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영화 '조용한 가족'부터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인랑'까지 매 작품마다 다른 색채를 뽐내왔던 김지운 감독이 드라마에 처음 도전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모았다.

김지운 감독은 2013년 '라스트 스탠드'로 할리우드에 이미 진출해 아놀드 슈왈제네거 등의 배우들과 작업한 바 있다. 애플TV 플러스를 통해 '닥터 브레인'을 선보이게 된 김지운 감독은 "영화와 같은 작업 기간 내에 3배 가까이 촬영을 해야 해서 미장센에는 신경쓰지 못했다"며 "스토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만 생각했다"고 지난 작업 과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주인공 도 박사 역을 맡은 이선균에 대해 "믿고 의지했다"며 "연극, 영화, 드라마의 폭넓은 경험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줬다"면서 극찬했다.

▲ 첫 드라마 연출이다.

모든게 새로웠다. 영화를 하던 패턴이 있었는데, 드라마는 주어진 시간에 영화의 2~3배 이상을 찍어야 했다. 미장센이나 이런 것에 신경쓰기 보다는 스토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만 생각했다. 영화보다 기민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했다.

▲ 드라마 도전의 어려움은 없었나.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이야기의 완결성을 가져가고,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게 시리즈 드라마의 매력이며 특징이 아닐까 싶다. 그런 걸 재밌게 잘 해내고 싶었다. 그 생각을 가지며 작업했다.

▲ '닥터 브레인'을 작업해면서 새롭게 경험한 부분이 있을까.

한 편을 통째로 알게 된 느낌이랄까. 이번에 연출을 하면서 프로듀서의 영역까지 수행했다. 연출만 했을 때 신경쓰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집중에 방해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 편의 콘텐츠가 나오는 전 과정을 꿰뚫게 되면서 이 작품의 균형있게 보는데 도움이 됐다. 제가 작업을 하면서 가장 압박이 된 건 영화와 같은 기간에 3배의 내용을 담아야 했다는 거다. 필요한 것들을 우선 찍어나가야겠다 싶었다.

▲ 국내는 제작과정이 감독 중심이라면 해외는 프로덕션 중심이라는 말이 있다.

앞서 할리우드에서 그런 경험을 했고, 이번에 한 것들이 아주 낯설진 않았다. 한국의 영화 현장은 전통적으로 제왕적인 시스템 속에서 감독이 정점에 있는 수직적인 관계다. 최근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미국은 수평적이다. 결과를 도출할 때 의견을 조율하면서 결정하는 방식이다. '닥터브레인'도 그렇게 작업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한 개인의 판타지를 공유하며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보여주는 대상은 대중이다. 공감대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 (드라마는) 출발 자체가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는 감독 개인의 스타일이 관객들과 만나는 지점을 고민한다면, 드라마와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라는 제작 시스템은 대중적인 목표를 향해 가는 거 같다. 그럼에도 감독의 표현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닥터브레인'도 그렇게 제작돼 그 부분에 대해 이견이나 불만은 없었다.

▲ 각 에피소드마다 보여주고 싶은게 있었나?

1화에는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래서 호러적인 분위기가 많았다. 그래서 매회 각기 다른 장르를 구사했다. 의도했던 건 아니었다. 각 회차에서 갖고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다 보니 매회 장르가 달라졌다. 그래서 액션이 강한 회차가 있었고 누아르, 미스터리 스릴러, 휴머니즘 등 각각 강화된 장르가 있었다.

▲ 다양한 장르를 어떻게 버무렸을까.

과장되게 표현할 수 없으니까, 예를 들어 DC나 마블의 슈퍼히어로처럼 보여줄 순 없을 거 같았다. 뇌를 통해 신체의 변화까지 영향받을 수 있다는 걸 염두했다. 각각의 장면을 어떻게 흥미롭게 전달할지에 대해 집중했고, 그러다 보면 제가 그동안 활용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래서 여러 장르를 혼합할 수 있었다.

▲ 여러 작품 중에 왜 '닥터브레인'을 선택했을까.

웹툰을 보고 소재도 마음에 들었고, 높은 완성도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다. 이 분위기만 가져만 가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고민했을까.

뇌과학을 많이 공부했고, 정재승 뇌과학 박사님께 많은 자문을 구했다. 먼저 뇌를 들여다보는 게 가능한지 이론적으로 확인했다. 이론적으론 가능했다. 쥐 실험까지는 성공했다고 하더라. 그런 연구 결과의 사진과 80% 흡사한 그래픽이 나오도록 했다.

▲ 애플TV는 매주 한 번씩 공개되는 방식이다.

우리에게는 매주 공개되는 드라마가 있지 않나. OTT를 생각하면 익숙하지 않는 방식인데, 매회 한편씩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게 애플만은 아니라는 얘길 들었다. 익숙한 것이 있는데 새로운 걸 가져야 한다는 점은 각자가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 함께했던 배우들과 작업은 어땠나.

박희순 배우 빼곤 주요 배역들 대부분이 저랑 처음 했고, 서지혜, 이재원 배우는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많이 한 분이었다. 이선균 씨는 연기적 스펙트럼이 넓지 않나. 연극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을 많이 했고 '나의 아저씨'를 보며 '좋은 배우로 성장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이 의지했다. 아무리 좋은 배우라도 흔들릴 때가 있고, 각각의 장면을 소화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선균 배우는 어떤 장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더라. 대단했다. 박희순 씨는 믿고 보는 배우고, 이유영 씨는 현장에서 항상 몰입돼 있었다. 서지혜 씨는 힘이 있는 캐릭터를 원했는데, 딱 맞아떨어졌고, 이재원 씨는 상황을 유연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했는데 워낙 유머러스하더라. 유머는 호흡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이재원 씨는 굉장히 부드럽고 유연하게 해냈다.

▲ 특히 이선균 배우의 어떤 면이 도 박사와 맞아떨어졌나.

도 박사라는 인물 자체는 뇌의 이상 구조 때문에 차갑고 무감해야 했다. 이선균 배우는 무감한 부분을 잘 살릴 수 있을 거 같았다. 관객들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야하는데, 무감할 경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조금씩 온도를 높여보자고 했고, 그 부분을 기존의 인물설정을 유지하면서 바로바로 수용해냈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고, 인물 이해력이 넓은 이선균 배우였기에 가능했고, 함께 작업하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선균 씨는 호감을 주는 중년 남성의 느낌 아닌가. 그래서 관객들도 그 인물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 이번 작품을 통해 얻고 싶은 평이 있었나.

반응을 잘 안 보지만, 초반엔 '어떻게 분위기가 가나' 하면서 찾아보긴 한다. 이번엔 이야기 전달성에 중점을 뒀기에 그 부분이 좋았다는 평을 듣고 싶다. 여기에 김지운 감독 특유의 음악, 화면을 다루는 스타일 등이 잘 빚어졌다는 말이 나온다면 제가 들을 수 있는, 듣고 싶은 칭찬이 아닐까 싶다.

▲ 스스로도 계속 다른 형식에 도전하는 거 같다.

남들이 보면 재수없다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계속 장르를 바꿔왔다. 액션을 하고 나면, 그 장르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누아르를 하거나 이런 욕망이 있다. 그래서 '놈놈놈' 다음에 '악마를 보았다'를 했고. 성공했다고 같은 장르를 연속해서 하고 싶진 않더라. 편안하게 똑같은 걸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걸 하고 싶다. 장황하게 말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호기심이다. 새로운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다음 작품을 하는 거다.

▲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도전이 많아졌다.

환경이 달라졌다. OTT가 활발해지면서 도전적인 소재를 할 수 있다. 다만 큰 화면에 보여줄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다. 큰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함이 있으니까. 꼭 물량을 투입하라는 건 아니다. 감정에도 스펙터클은 있으니까.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전 영화 작업은 계속할 거다. 영화 산업의 위축으로 어쩔 수 없이 OTT, 드라마로 가는 부분이 있겠다는 걱정은 있다. 물론 드라마를 하니 드라마적인 재미는 있더라. 엔딩을 고민하고, 그게 관객들과 맞아떨어지게되면 쾌감도 있고. 그런 부분에서 드라마를 생각한다.

▲ 엔딩이 궁금하다. 시즌2를 준비하고 있을까.

시즌1으로 모든 게 종결되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스토리로 퍼져나가는걸 고려했다. 끝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걸로 종결하고 싶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