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추모탑에 헌화·분향하기 위해 이동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항의에 막혀 추모탑 입구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추모탑에 헌화·분향하기 위해 이동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항의에 막혀 추모탑 입구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예고한 대로 10일 광주를 찾아 ‘전두환 발언’과 ‘개 사과’에 대해 사과했다. 경선 승리 이후 대선 주자의 첫 지방 일정으로 호남행을 선택했다. 호남 지역과 중도층을 끌어안겠다는 행보다. 하지만 윤 후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필사적으로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탑 접근을 막아서면서 그는 헌화와 분향을 하지 못한 채 묵념만 하고 돌아섰다.

윤 후보는 이날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직후 준비해간 입장문을 꺼내 읽었다. 그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제 발언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는 40여 년 전 5월의 광주 시민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광주의 아픈 역사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고 광주의 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다”고 말했다.

앞서 윤 후보는 당 경선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 호남 사람도 그런 얘기를 한다”고 발언했다가 여야 모두의 비판을 받았다. 윤 후보는 각 분야 전문가를 발굴하고 책임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유감 표명과 사과를 했다. 그 와중에 윤 후보의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리면서 논란은 한층 증폭됐다.

이날 윤 후보가 사과하러 광주를 찾았지만 5·18 유가족 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쇼하러 왔냐” “문재인 대통령을 배신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묘지 분향 등을 저지했다. 윤 후보는 길을 막아서는 시위대 탓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추모탑 50m 전에 멈춰 서서 묵념하는 데 그쳤다.

윤 후보는 참배 직후 ‘항의하는 분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을 받자 “저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5월의 영령들에게 분향도 하고 참배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많은 분이 협조해 줘서 사과드리고 참배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이번 광주 방문이 ‘정치적 자작극’이라는 비난이 제기된 데 대해 “저는 쇼는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권에선 평가가 갈렸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로 나섰던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은 SNS에 “문재인 정권이 하지 못한 역사의 이 아픔을 윤 후보가 품어 안아야 한다”고 글을 올리며 긍정 평가를 내렸다. 반면 제3지대 대권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대선캠프는 “초보 정치인의 노이즈 마케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견제구를 던졌다.

윤 후보는 이용섭 광주시장이 자신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위해 5·18 민주화 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5·18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헌법 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답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역사 왜곡을 당 차원에서 막아 달라는 요청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허위 사실과 날조로 왜곡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허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윤 후보는 이날 5·18 민주화운동을 이끈 인권운동가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전남 화순 생가와 5·18 민주공원을 방문한 데 이어 11일에는 전남 목포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찾은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할 계획이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