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 섰거라'…日 정부, 작정하고 반도체 산업 지원한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일본 정부가 외국 반도체 회사가 일본에 공장을 신설할 때 뿐 아니라 기존 반도체 공장을 업그레이드하는 기업에도 보조금을 지원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회사) 업체인 TSMC의 생산공장 유치를 계기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키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기존 반도체 공장의 신규투자를 지원하는 새로운 보조금 제도를 마련한다고 11일 보도했다. 최신 반도체 제조장비를 도입하거나 방화대책에 투자하는 기업에 비용의 일부를 분담하는 방식이다.

TSMC가 구마모토현에 신설하는 반도체 공장에 투자비의 절반을 지원하는 보조금과는 별도의 제도다. 범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존 공장의 업그레이드를 장려해 일본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한 조치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동작제어를 담당하는 마이콘과 전력을 제어하는 파워반도체 등 기계, 전자제품에 폭넓게 사용되는 제품이 지원 대상이다.

기존 공장을 업그레이드하면 제품의 불량률을 낮춰 생산효율을 높일 수 있고, 화재나 재해로 반도체 생산이 중단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2019년 기준 일본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84개의 반도체 공장이 있다. 대부분 노후화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화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3월에는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의 이바라키 히타치나카시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일부 생산라인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반도체 부족이 심각해져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대량으로 공장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아사히카세이엘렉트로닉스의 미야자키현 반도체 공장에서도 작년 10월 화재가 발생해 야마하와 파나소닉 등이 생산에 차질을 빋었다.

기존 공장의 업그레이드에 보조금을 주면 기업들이 노후화한 공장에 재투자하는 대신 동남아시아와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반도체를 국가안전보장상 중요한 산업으로 지정하고 해외의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조만간 보조금 규모를 확정해 올해 추가경정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다. 경제산업성은 수천억엔(수조원) 규모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산안이 확정되면 일본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은 첨단 반도체 신설 지원과 범용 반도체 업그레이드 지원 등 2단계로 이뤄진다. 첨단반도체 신설 지원은 일본 최대 연구개발(R&D) 지원기구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에 새로 설립하는 기금으로 운영한다.

TSMC와 같이 투자비의 절반을 일본 정부가 분담하는 대신 반도체 수급상황이 나빠지면 증산을 요구할 수 있고 생산한 물량도 일본에 우선 공급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조건을 위반하면 보조금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범용 반도체 보조금은 경제산업성이 기존 공장에 새로운 제조장치와 시스템 등을 도입하는 비용의 일부를 직접 보조한다.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를 일본에서 제조해 국내 기업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경제안정보장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