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기 전문업체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는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다. 수요를 알 수 없는 불모지 개척에 섣불리 나섰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전까지 마땅히 사람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세포 전(前)처리 작업을 자동화한 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으로 세계 매출 상위 제약사 10개 사의 마음을 훔친 비결에 대해 물었다.
김남용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대표 / 사진=이우상 기자
김남용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대표 / 사진=이우상 기자
세포실험이나 세포치료제 생산 단계에 항상 빠지지 않는 작업이 있다. 바로 세포를 염색하는 일이다. 염색을 통해 생산이나 실험에 필요한 세포만 골라낼 수 있다. 하지만 염색에 앞서 사용하는 원심분리기는 세포에 피로도를 높이거나 망가뜨릴 수 있고, 분리 후 염색약을 세척하는 단계는 대표적으로 ‘손을 타는’ 작업으로 꼽힌다. 얼마만큼 숙련이 됐느냐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실험실 수준이 아니라 세포를 생산하는 단계에선 아예 품질 관리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는 세포 염색 후 세척 과정 또는 염색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사람 손을 배제해 실험값의 재현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남용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대표는 “우리 제품을 사용했을 때 균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매출 상위 10곳 글로벌 빅파마가 모두 고객사가 됐다”고 했다. 그는 “우리 자동화 기기를 이용하면 전처리의 핵심 프로세스를 30분에서 2분까지로 단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NIST 주도 세포분석 표준화 작업 참여
큐리옥스는 지난 6월부터 미국 표준기술과학연구소(NIST) 주도의 세포분석기술 표준을 제정하기 위한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NIST가 제정하는 표준은 향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약을 승인하는 절차에 활용될 수 있어 제약업계 전반에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비교적 우연한 기회에 컨소시엄에 대해 알게 됐다”며 운을 뗐다. 지난 5월께 고객사인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NIST가 세포분석기술 표준 제정을 위한 컨소시엄을 열었으니 한번 참여해보라는 권유였다.

김 대표는 “5월 말 NIST에 컨소시엄 참여 의사를 보낸 뒤 불과 한 달 만에 참여해달라는 확답을 받았다”며 “컨소시엄을 통해 미국 허가당국, 글로벌 제약사와 함께 내년까지 세포 분석에 필요한 표준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NIST가 주도하는 ‘유세포 분석 표준 컨소시엄’의 목적은 세포실험 및 세포치료제 생산에 필요한 세포분석기술의 표준화다. 표준화를 거쳐 균일한 품질의 세포치료제를 만들 수 있게 되면 향후 FDA의 신약 심사 표준으로 도입될 수 있다. 시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애질런트테크놀로지, 서모피셔 같은 글로벌 분석기기 업체 외에도 세포치료제를 생산하거나 개발 중인 아스트라제네카, BMS, 카이트파마 같은 글로벌 업체들도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김 대표는 “참여 기업 중 국내 업체는 큐리옥스뿐이며 세포 염색 및 전처리 자동화 기술을 갖춘 곳도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美 표준 등재 시 6조 원 시장 열릴 것
큐리옥스는 지난해 4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95%가 해외 매출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먼저 큐리옥스의 진가를 알아봤다. 수작업으로 하던 전처리 과정을 자동화하자 세포치료제의 품질 수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들쭉날쭉하던 수율이 균일해졌다.

김 대표는 “세포치료제의 생산수율이 기존 손으로 전처리 작업을 할 때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는 현장 결과를 얻었다”며 “세포분석에 필요한 표준을 제정하려는 NIST가 큐리옥스의 컨소시엄 합류를 환영한 까닭”이라고 했다.

글로벌 매출 상위 10곳 대형 제약사는 물론 카이트파마와 알로젠테라퓨틱스 같은 세포치료제 선도업체부터 찰스 리버 등 대형 임상시험수탁업체(CRO)가 큐리옥스의 고객사로 합류했다. 김 대표는 “컨소시엄에서 세포 전처리 자동화가 표준이 되면 국내외 실험실 및 제약시설에만 6조 원 규모의 시장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애질런트 등을 거쳐 2008년 창업했다. 싱가포르 국립연구소에 시제품을 공급하며 창업 지원을 받은 인연 때문에 첫 본사의 위치는 싱가포르였다. 하지만 2018년 첫 제품 출시 후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을 받자 2019년 국내 벤처캐피털의 러브콜을 받고 한국으로 본사를 옮겼다. 누적 투자유치금액은 260억 원이다. 데일리파트너스와 쿼드자산운용, IMM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등이 벤처투자자로 참여했다.

내년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도 준비 중이다. 키움증권을 상장주관사로 선정하고 기술특례를 통한 코스닥시장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글로벌 빅파마 외에도 우리 제품을 이용하는 국내 기업들이 많아져 실험과 생산에서의 효율을 높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핫 컴퍼니] 세포 전처리 표준 노리는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핫 컴퍼니] 세포 전처리 표준 노리는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