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하이라이트 ❷ MARKET] 진단, 백신에 이어 세포치료제… 영역 확장하는 마이크로플루이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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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마이크로리터) 이하 단위에서 일어나는 유체 흐름을 제어하는 학문이다. 이렇게 작은 단위에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보게 되는 유체들의 흐름과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가령 사이다와 콜라를 한 컵에 넣는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두 액체는 별다른 조작을 가하지 않더라도 대류, 와류 등의 작용에 의해 서로 섞이게 된다. 일반적으론 서로 다른 두 액체가 섞이는 현상을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컵이 아닌 지름이 ㎛ 단위의 아주 작은 관을 통해 두 유체가 지나갈 경우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컵에서처럼 난류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대신, 유체가 섞이지 않고 일정하게 흐르는 측방유동(laminar flow) 현상이 발생한다. 이렇게 좁은 관을 흐르는 두 액체를 섞기 위해선 관의 모양을 바꾸거나 관 내부에 벽을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유체 흐름에 패턴을 줘 위치별로 유속이 달라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소형기계장치(MEMS) 기술을 적용해 믹서 역할을 하는 구조체를 관에 별도로 만들게 된다.
서로 다른 관을 타고 흐르는 A, B 두 액체를 좁은 관에서 한데 만나게 하면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두 액체가 서로 섞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액체가 ‘A-B-A-B’ 식으로 교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이용해 유체를 통제하고자 유체에 흐름을 만들어주는 펌프, 유체 흐름을 끊어주는 밸브 등이 마이크로플루이딕스에 쓰인다.
반도체와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왜 다른 길을 갔을까
㎛ 단위로 설계되는 바이오칩에 믹서, 펌프, 밸브 등을 부착해야 한다는 건 이 기술의 상용화에 큰 걸림돌이 됐다. MEMS 기술을 이용하는 또 다른 분야인 반도체칩과 대비하면 마이크로플루이딕스의 허들이 더 잘 보인다. 반도체칩은 전자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저항을 가하는 게이트나 전류를 흐르게 하는 파워서플라이를 활용한다. 전자 작용인 만큼 부피가 큰 장치를 만들어 칩에 달아줄 필요가 없다. 반면 유체는 밸브, 펌프 등으로 물리적인 조작을 가해야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MEMS 기술로 ㎛, ㎚(나노미터) 등의 단위에서 이들 통제장치를 균일한 품질 수준으로 값싸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품질 수준을 확인할 때 쓸 수 있는 평가·관측 장비까지 나노미터(㎚)를 구분할 정도로 고도화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진단 분야에서 접목돼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했다. 조그마한 바이오칩 하나로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합하는 ‘랩온어칩’ 기술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가격경쟁력 면에선 신속면역진단이, 정확도 면에선 종합효소연쇄반응(PCR)을 이용하는 분자진단이 우위에 있는 편이었다.
메신저 리보핵신(mRNA) 백신의 등장은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신약 개발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게 하는 전기를 마련해줬다. mRNA는 체액에 있는 RNAse(RNA 분해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된다. 이를 막기 위해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를 지질나노입자(LNP)로 둘러싸는 방식을 쓰고 있다. LNP는 음전하를 띠는 mRNA에 달라붙는 양이온성 지질, LNP 구조체의 모양을 유지시켜 안정성을 높여주는 콜레스테롤과 인지질, 친수성을 높여 체내에서 입자가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게 해주는 폴리에틸렌글리콜(PEG)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신을 양산하기 위해선 대량생산시설에서 이 네 가지 요소 물질로 구성된 LNP 구조체를 mRNA와 잘 결합시켜주는 작업이 필수다.
기존엔 mRNA와 LNP를 결합하기 위해 다소 과격한 방법을 썼다. 플라스크 속에 LNP 구조체의 요소물질들을 층층히 쌓아올린 얇은 지질막을 만든 뒤 여기에 mRNA가 담긴 용액을 넣는다. 그리고 플라스크를 물리적으로 빙빙 돌려 두 물질을 결합시켜주는 ‘지질 필름 방식’이 그랬다. 하지만 이 방식은 유체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 보니 어떤 부위에선 mRNA와 LNP가 서로 만나지 않아 수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mRNA는 들어있지 않은 빈 LNP만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티믹서(turbulent mixer)’로 불리는 믹서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 그대로 ‘T’ 자 모양의 튜브를 이용한다. T 자의 가로획 ‘―’의 양쪽 방향에서 mRNA와 LNP를 각각 높은 압력으로 내보내 두 물질을 인위적으로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두 물질을 빠른 속도로 부딪치게 하니 단시간에 많은 양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하지만 이 과정으론 mRNA와 LNP의 결합체를 고른 크기로 만들기 어렵고 높은 생산수율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LNP 기반 mRNA 백신 개발에 도전하는 인벤티지랩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이용하면 유체 흐름을 조절해 일정한 크기로 두 물질을 결합하는 게 가능하다. 서로 다른 관을 타고 흐르던 mRNA와 LNP를 하나의 관에서 만나게 한 뒤 관 내부에 굴곡, 빗장 등의 패턴으로 믹서를 만들어 이들 입자가 서로 결합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합한 이들 물질은 분자들 간 상호작용에 의해 지질이 mRNA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된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얼마나 섞이게 하는지에 따라 mRNA와 LNP 결합체의 생산수율이 결정된다.
한계점도 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높은 압력을 활용하기 어렵다 보니 빠르게 생산하는 데는 티믹서 방식이 유리하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조건 하에서 생산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압력을 높이게 되면 측방유동이 사라지고 믹서 없이도 두 물질이 섞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미세관들이 압력으로 손상될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진 품질 수준을 일정하게 만드는 데는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방식이, 생산 속도 면에선 티믹서 방식이 우위에 있는 편이다.
국내에선 에스티팜과 인벤티지랩이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적용해 내년 임상 진입을 목표로 mRNA 백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에스티팜은 mRNA 안전성을 끌어올리는 캡핑(Capping) 기술과 mRNA·지질 양산 기술을 확보했다. 인벤티지랩은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도입해 의약품을 양산해본 경험이 있는 회사다.
당초 이 회사는 LNP 결합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의 약물 입자를 만드는 데에 이 기술을 활용해왔다. 약물이 흐르는 미세관 옆에 다른 관을 붙여 물을 쏴주게 되면 물 입자와 약물 입자가 교차하면서 약물의 흐름을 끊어주게 된다. 이를 일정한 속도로 반복해 일정한 크기의 약물 입자를 만드는 게 이 회사의 기술이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mRNA 백신 개발이 화두가 되면서 인벤티지랩은 LNP와 mRNA의 결합에서도 이 기술의 사업화 가능성을 발견했다. 같은 기반 기술로 한쪽에선 약물의 분리를, 다른 한쪽에선 약물을 결합시키게 된 것이다.
인벤티지랩 김동훈 부사장은 “LNP와 mRNA의 결합률을 9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며 “이르면 내년 2분기 중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GMP) 시설을 구축해서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생산 능력 면에서도 에스티팜이 요구하는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특수표면 처리로 기술 난제 해결한 나노엔텍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일찍이 쓰였던 진단 영역에서도 기술 혁신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진단 시장에서 파괴력을 갖기 위해선 비용 절감이라는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업계 평가다.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각종 진단이 가능한 시장에서 유체 흐름을 통제하느라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바이오칩으로 승부를 보려면 무언가 비교 우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노엔텍은 랩온어칩 기술을 이용해 별도 펌프 없이도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방식을 적용한 면역진단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나노엔텍이 개발한 ‘프렌드 칩’을 쓰면 전처리, 항원·항체 반응, 검출 등을 모두 신용카드보다 작은 칩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 칩은 지름이 30㎛에 불과한 얇은 미세관을 이용한다. A4 용지의 두께에 불과할 정도로 좁은 관이다. 펌프 없이 이 미세관에 주입된 혈액이 일정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회사는 플라스틱 재질인 칩 표면을 플라스마로 특수처리했다. 소수성을 띠는 칩 표면을 친수성으로 바꿔 검체가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세관을 흐르는 검체는 칩 앞부분에 달린 형광물질과 결합하게 된다. 그다음 칩에 부착된 항원이나 항체와 결합하게 되면 이 형광물질이 빛을 내는 원리다. 형광의 광도를 측정하면 검체 속 표적 물질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를 3~5분 안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비타민D나 호르몬처럼 크기가 작지만 그 양을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특히 활용하기 좋은 검사법이다.
나노엔텍은 이 기술을 적용해 비타민 D, 테스토스테론, 갑상선호르몬 진단키트 등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제품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엔 코로나19 항체진단키트로 FDA의 긴급사용승인(EUA)을 따내기도 했다.
나노엔텍은 정량분석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려 혈액 내 백혈구 계수 장치도 미국 시장에 공급 중이다. 랩온어칩 기술을 적용한 1회용 칩을 이용해 혈액 속 백혈구의 양을 측정해 혈액제제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장비다.
이 회사는 조혈모줄기세포의 이식 시점을 파악하기 위해 조혈모 줄기세포의 양을 측정하는 장비로도 FDA의 승인을 얻은 바 있다. 김유래 나노엔텍 융합기술팀장은 “세포치료제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면역세포의 활동량이나 계수를 확인할 수 있는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노주사기로 CAR-NK 치료제 개발 꿈꾸는 펨토바이오메드
다른 바이오 영역에서도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활용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신약 개발 시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암 분야가 대표적이다. 펨토바이오메드는 유전자세포치료제에서 이 기술의 잠재력을 한층 끌어올린 벤처기업이다. 앞서 다뤘듯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생산 공정에 활용하기 위해선 고비용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생명이 달린 항암 분야에선 대체할 수 있는 치료제가 마땅치 않은 경우라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가격경쟁력보다는 치료 효과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펨토바이오메드는 아직 상용화된 적이 없는 키메릭 항원수용체 NK세포(CAR-NK)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유전자를 편집시켜 치료 효과를 끌어올린 면역세포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선 면역세포 안에 개량 유전자를 넣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존엔 세포를 감염시켜 유전자를 전달하는 바이러스 전달체(바이럴 벡터)로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했다. 하지만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는 그 자체가 독성으로 작용해 종양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NK세포의 경우엔 문제가 더 있다. T세포와 달리 NK세포는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지 않는다. NK세포의 핵 조작 자체가 어렵다는 제약도 있다.
펨토바이오메드는 별도의 전달체 없이 세포 내로 고분자 물질을 주입할 수 있는 ‘셀샷’ 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보다 작은 ㎚ 단위의 지름을 가진 주사기로 유전물질을 세포핵과 세포질에 삽입하는 게 가능하다.
이 회사는 반도체처럼 식각 공정을 이용해 ㎛ 단위의 초소형 주사기를 만든다. 이후 펨토초 단위로 쬘 수 있는 레이저를 이용해 ㎚ 단위로 제품을 정교하게 다듬어 극미세 주사기를 제작한다. 기존 식각 방식으로는 ㎚ 단위까지 정교하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렇게 만든 주사기로 미세관을 지나가는 세포 속에 mRNA와 같은 유전물질을 집어넣게 된다.
mRNA는 세포질 속 리보솜과 결합해 특정 단백질을 만든다. NK세포는 특정 암 항원을 겨냥하는 기능이 T세포보다 떨어진다. NK세포 속에 특정 암 항원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단백질을 mRNA 주입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수억 원에 달하는 면역세포치료제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T세포는 면역거부 반응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세포를 활용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없다. 일일이 환자 맞춤형으로 만들어야 하니 약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반면 NK세포는 다른 사람의 것을 투입하는 게 가능해 생산이 훨씬 수월하다.
그간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를 쓰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온 mRNA를 탑재한 NK세포치료제를 개발하기란 쉽지 않았다. mRNA를 NK세포가 담긴 세포배양액 속에 넣으면 RNAse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현 펨토바이오메드 대표는 “기존 방식으로 NK세포에 mRNA를 도입하려면 세포 표면의 RNAse를 씻겨 낸 뒤 완충액(버퍼)에 넣어 mRNA와 섞고, 다시 이 NK세포를 세포배양액에 넣어주는 복잡한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셀샷을 적용하면 세포배양액에서 mRNA를 바로 세포 속에 주입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그간의 신약 개발은 어떠한 임상 데이터를 얻느냐가 핵심이었다면 CAR-T 치료제와 같은 세포치료제에선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생산 공정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세포치료제 생산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상당수 해결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주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컵이 아닌 지름이 ㎛ 단위의 아주 작은 관을 통해 두 유체가 지나갈 경우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컵에서처럼 난류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대신, 유체가 섞이지 않고 일정하게 흐르는 측방유동(laminar flow) 현상이 발생한다. 이렇게 좁은 관을 흐르는 두 액체를 섞기 위해선 관의 모양을 바꾸거나 관 내부에 벽을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유체 흐름에 패턴을 줘 위치별로 유속이 달라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소형기계장치(MEMS) 기술을 적용해 믹서 역할을 하는 구조체를 관에 별도로 만들게 된다.
서로 다른 관을 타고 흐르는 A, B 두 액체를 좁은 관에서 한데 만나게 하면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두 액체가 서로 섞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액체가 ‘A-B-A-B’ 식으로 교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이용해 유체를 통제하고자 유체에 흐름을 만들어주는 펌프, 유체 흐름을 끊어주는 밸브 등이 마이크로플루이딕스에 쓰인다.
반도체와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왜 다른 길을 갔을까
㎛ 단위로 설계되는 바이오칩에 믹서, 펌프, 밸브 등을 부착해야 한다는 건 이 기술의 상용화에 큰 걸림돌이 됐다. MEMS 기술을 이용하는 또 다른 분야인 반도체칩과 대비하면 마이크로플루이딕스의 허들이 더 잘 보인다. 반도체칩은 전자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저항을 가하는 게이트나 전류를 흐르게 하는 파워서플라이를 활용한다. 전자 작용인 만큼 부피가 큰 장치를 만들어 칩에 달아줄 필요가 없다. 반면 유체는 밸브, 펌프 등으로 물리적인 조작을 가해야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MEMS 기술로 ㎛, ㎚(나노미터) 등의 단위에서 이들 통제장치를 균일한 품질 수준으로 값싸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품질 수준을 확인할 때 쓸 수 있는 평가·관측 장비까지 나노미터(㎚)를 구분할 정도로 고도화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진단 분야에서 접목돼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했다. 조그마한 바이오칩 하나로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합하는 ‘랩온어칩’ 기술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가격경쟁력 면에선 신속면역진단이, 정확도 면에선 종합효소연쇄반응(PCR)을 이용하는 분자진단이 우위에 있는 편이었다.
메신저 리보핵신(mRNA) 백신의 등장은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신약 개발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게 하는 전기를 마련해줬다. mRNA는 체액에 있는 RNAse(RNA 분해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된다. 이를 막기 위해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를 지질나노입자(LNP)로 둘러싸는 방식을 쓰고 있다. LNP는 음전하를 띠는 mRNA에 달라붙는 양이온성 지질, LNP 구조체의 모양을 유지시켜 안정성을 높여주는 콜레스테롤과 인지질, 친수성을 높여 체내에서 입자가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게 해주는 폴리에틸렌글리콜(PEG)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신을 양산하기 위해선 대량생산시설에서 이 네 가지 요소 물질로 구성된 LNP 구조체를 mRNA와 잘 결합시켜주는 작업이 필수다.
기존엔 mRNA와 LNP를 결합하기 위해 다소 과격한 방법을 썼다. 플라스크 속에 LNP 구조체의 요소물질들을 층층히 쌓아올린 얇은 지질막을 만든 뒤 여기에 mRNA가 담긴 용액을 넣는다. 그리고 플라스크를 물리적으로 빙빙 돌려 두 물질을 결합시켜주는 ‘지질 필름 방식’이 그랬다. 하지만 이 방식은 유체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 보니 어떤 부위에선 mRNA와 LNP가 서로 만나지 않아 수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mRNA는 들어있지 않은 빈 LNP만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티믹서(turbulent mixer)’로 불리는 믹서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 그대로 ‘T’ 자 모양의 튜브를 이용한다. T 자의 가로획 ‘―’의 양쪽 방향에서 mRNA와 LNP를 각각 높은 압력으로 내보내 두 물질을 인위적으로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두 물질을 빠른 속도로 부딪치게 하니 단시간에 많은 양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하지만 이 과정으론 mRNA와 LNP의 결합체를 고른 크기로 만들기 어렵고 높은 생산수율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LNP 기반 mRNA 백신 개발에 도전하는 인벤티지랩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이용하면 유체 흐름을 조절해 일정한 크기로 두 물질을 결합하는 게 가능하다. 서로 다른 관을 타고 흐르던 mRNA와 LNP를 하나의 관에서 만나게 한 뒤 관 내부에 굴곡, 빗장 등의 패턴으로 믹서를 만들어 이들 입자가 서로 결합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합한 이들 물질은 분자들 간 상호작용에 의해 지질이 mRNA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된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얼마나 섞이게 하는지에 따라 mRNA와 LNP 결합체의 생산수율이 결정된다.
한계점도 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높은 압력을 활용하기 어렵다 보니 빠르게 생산하는 데는 티믹서 방식이 유리하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조건 하에서 생산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압력을 높이게 되면 측방유동이 사라지고 믹서 없이도 두 물질이 섞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미세관들이 압력으로 손상될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진 품질 수준을 일정하게 만드는 데는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방식이, 생산 속도 면에선 티믹서 방식이 우위에 있는 편이다.
국내에선 에스티팜과 인벤티지랩이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적용해 내년 임상 진입을 목표로 mRNA 백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에스티팜은 mRNA 안전성을 끌어올리는 캡핑(Capping) 기술과 mRNA·지질 양산 기술을 확보했다. 인벤티지랩은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도입해 의약품을 양산해본 경험이 있는 회사다.
당초 이 회사는 LNP 결합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의 약물 입자를 만드는 데에 이 기술을 활용해왔다. 약물이 흐르는 미세관 옆에 다른 관을 붙여 물을 쏴주게 되면 물 입자와 약물 입자가 교차하면서 약물의 흐름을 끊어주게 된다. 이를 일정한 속도로 반복해 일정한 크기의 약물 입자를 만드는 게 이 회사의 기술이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mRNA 백신 개발이 화두가 되면서 인벤티지랩은 LNP와 mRNA의 결합에서도 이 기술의 사업화 가능성을 발견했다. 같은 기반 기술로 한쪽에선 약물의 분리를, 다른 한쪽에선 약물을 결합시키게 된 것이다.
인벤티지랩 김동훈 부사장은 “LNP와 mRNA의 결합률을 9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며 “이르면 내년 2분기 중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GMP) 시설을 구축해서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생산 능력 면에서도 에스티팜이 요구하는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특수표면 처리로 기술 난제 해결한 나노엔텍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일찍이 쓰였던 진단 영역에서도 기술 혁신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진단 시장에서 파괴력을 갖기 위해선 비용 절감이라는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업계 평가다.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각종 진단이 가능한 시장에서 유체 흐름을 통제하느라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바이오칩으로 승부를 보려면 무언가 비교 우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노엔텍은 랩온어칩 기술을 이용해 별도 펌프 없이도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방식을 적용한 면역진단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나노엔텍이 개발한 ‘프렌드 칩’을 쓰면 전처리, 항원·항체 반응, 검출 등을 모두 신용카드보다 작은 칩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 칩은 지름이 30㎛에 불과한 얇은 미세관을 이용한다. A4 용지의 두께에 불과할 정도로 좁은 관이다. 펌프 없이 이 미세관에 주입된 혈액이 일정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회사는 플라스틱 재질인 칩 표면을 플라스마로 특수처리했다. 소수성을 띠는 칩 표면을 친수성으로 바꿔 검체가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세관을 흐르는 검체는 칩 앞부분에 달린 형광물질과 결합하게 된다. 그다음 칩에 부착된 항원이나 항체와 결합하게 되면 이 형광물질이 빛을 내는 원리다. 형광의 광도를 측정하면 검체 속 표적 물질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를 3~5분 안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비타민D나 호르몬처럼 크기가 작지만 그 양을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특히 활용하기 좋은 검사법이다.
나노엔텍은 이 기술을 적용해 비타민 D, 테스토스테론, 갑상선호르몬 진단키트 등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제품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엔 코로나19 항체진단키트로 FDA의 긴급사용승인(EUA)을 따내기도 했다.
나노엔텍은 정량분석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려 혈액 내 백혈구 계수 장치도 미국 시장에 공급 중이다. 랩온어칩 기술을 적용한 1회용 칩을 이용해 혈액 속 백혈구의 양을 측정해 혈액제제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장비다.
이 회사는 조혈모줄기세포의 이식 시점을 파악하기 위해 조혈모 줄기세포의 양을 측정하는 장비로도 FDA의 승인을 얻은 바 있다. 김유래 나노엔텍 융합기술팀장은 “세포치료제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면역세포의 활동량이나 계수를 확인할 수 있는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노주사기로 CAR-NK 치료제 개발 꿈꾸는 펨토바이오메드
다른 바이오 영역에서도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활용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신약 개발 시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암 분야가 대표적이다. 펨토바이오메드는 유전자세포치료제에서 이 기술의 잠재력을 한층 끌어올린 벤처기업이다. 앞서 다뤘듯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생산 공정에 활용하기 위해선 고비용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생명이 달린 항암 분야에선 대체할 수 있는 치료제가 마땅치 않은 경우라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가격경쟁력보다는 치료 효과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펨토바이오메드는 아직 상용화된 적이 없는 키메릭 항원수용체 NK세포(CAR-NK)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유전자를 편집시켜 치료 효과를 끌어올린 면역세포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선 면역세포 안에 개량 유전자를 넣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존엔 세포를 감염시켜 유전자를 전달하는 바이러스 전달체(바이럴 벡터)로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했다. 하지만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는 그 자체가 독성으로 작용해 종양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NK세포의 경우엔 문제가 더 있다. T세포와 달리 NK세포는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지 않는다. NK세포의 핵 조작 자체가 어렵다는 제약도 있다.
펨토바이오메드는 별도의 전달체 없이 세포 내로 고분자 물질을 주입할 수 있는 ‘셀샷’ 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보다 작은 ㎚ 단위의 지름을 가진 주사기로 유전물질을 세포핵과 세포질에 삽입하는 게 가능하다.
이 회사는 반도체처럼 식각 공정을 이용해 ㎛ 단위의 초소형 주사기를 만든다. 이후 펨토초 단위로 쬘 수 있는 레이저를 이용해 ㎚ 단위로 제품을 정교하게 다듬어 극미세 주사기를 제작한다. 기존 식각 방식으로는 ㎚ 단위까지 정교하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렇게 만든 주사기로 미세관을 지나가는 세포 속에 mRNA와 같은 유전물질을 집어넣게 된다.
mRNA는 세포질 속 리보솜과 결합해 특정 단백질을 만든다. NK세포는 특정 암 항원을 겨냥하는 기능이 T세포보다 떨어진다. NK세포 속에 특정 암 항원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단백질을 mRNA 주입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수억 원에 달하는 면역세포치료제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T세포는 면역거부 반응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세포를 활용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없다. 일일이 환자 맞춤형으로 만들어야 하니 약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반면 NK세포는 다른 사람의 것을 투입하는 게 가능해 생산이 훨씬 수월하다.
그간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를 쓰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온 mRNA를 탑재한 NK세포치료제를 개발하기란 쉽지 않았다. mRNA를 NK세포가 담긴 세포배양액 속에 넣으면 RNAse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현 펨토바이오메드 대표는 “기존 방식으로 NK세포에 mRNA를 도입하려면 세포 표면의 RNAse를 씻겨 낸 뒤 완충액(버퍼)에 넣어 mRNA와 섞고, 다시 이 NK세포를 세포배양액에 넣어주는 복잡한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셀샷을 적용하면 세포배양액에서 mRNA를 바로 세포 속에 주입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그간의 신약 개발은 어떠한 임상 데이터를 얻느냐가 핵심이었다면 CAR-T 치료제와 같은 세포치료제에선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생산 공정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세포치료제 생산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상당수 해결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주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