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하이라이트 ❶ ANALYSIS] 연구실의 흥밋거리에서 신약 제조공정 기술로 변모한 마이크로플루이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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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근배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본래 1990년대 후반 유체역학 연구 분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서의 측면이 강했던 연구 분야다. 당시 ‘반짝 유행’을 타는 연구가 되리라는 학계의 예상과는 달리 20년 넘게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의 독립적인 기술·학문으로서 인정받을 만큼 긍정적인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에서 ‘마이크로’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때의 마이크로는 ‘1000분의 1㎜(밀리미터)’를 뜻하는 ㎛(마이크로미터)가 아니라 1000분의 1㎖(밀리리터)를 가리키는 ㎕(마이크로리터)다. 1㎣에 들어가는 정도의 물방울 용량이다. 성냥개비 머리 크기나 큰 바늘의 귀에 들어갈 만한 크기다.
유체역학을 전공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단순한 연구분야로 여겨져 한때는 다소 우습게 보이는 유동 현상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학기술과 바이오·의료 기술이 융합되면서 매우 적은 용량의 유체를 정밀하게 다룰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리터 단위의 영역에선 무게와 표면적의 관계로 인해 비롯되는 유체 조작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면 얻어낼 수 있는 대단히 높은 재현성이 공존하고 있다. 기술장벽만 넘어서면 고재현성을 가진 바이오메디컬 소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살려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적용한 바이오칩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이오칩이 뜨거운 이슈였던 2000년대 초반엔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바이오칩 기반 샘플추출기, 유체혼합기, DNA 단백질 분리기 등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요즘 코로나19 진단에 많이 쓰이는 유전자·바이러스 증폭기인 PCR 증폭 장비에도 적용됐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 대형 증폭 장비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지면서도 크기가 줄어든 소형 장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매력 덕분에 바이오 의료 분야에 특화된 형태로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발전한 것이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영역의 확장
2000년대 후반부터는 세포를 한 줄로 나란히 흘려보내면서 분석하는 장비인 ‘셀 사이토메트리(세포분석기)’, ㎛~㎚(나노미터) 크기에 불과한 물질을 분리할 수 있는 ‘마이크로파티클 분리기’, DNA 및 단백질을 검지해 질병을 진단하는 바이오센서, 극소량의 화학물질을 균일하게 반응시키는 ‘마이크로 화학반응기’ 등에서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쓰이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제약 시장에서 화두가 되던 약물전달시스템(DDS)을 최적화하는 쪽으로 사용 영역이 확장되면서 일부 기업은 제품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공학적 소자를 개발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이 기술에 대한 의학자, 생물학자들의 요구를 정리해보면 매우 단순하다. ‘보다 정량적이고 재현성이 뛰어나며 작은 크기의 소자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통상 소자를 작게 만들수록 소자의 재현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소자의 크기를 작게 만드는 것 자체가 고난도 기술인데, 재현성까지 살려야 한다. 고재현성과 소형화라는 기술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최적의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의학, 생명공학 등에서 대부분의 연구 분야는 유체와 관련이 있고 심지어 이러한 연구환경에서 만들어진 물질들의 평가 공정도 유체 환경에서 구축되는 경우가 많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범위에 맞는 장비 개선 이루어져야
20년 이상 기술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여전히 넘지 못한 기술장벽이 존재한다. 유체가 흘러가는 작은 마이크로채널 내의 유체를 조절하기 위해선 펌프, 밸브, 검사장비 등 외부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장비를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범위로 적용하기엔 여전히 크다. 일부 장비는 냉장고만한 크기로 미세 소자들을 다루는 데 쓰기가 쉽지 않다.
향후 이 분야에 특화된 전용 장비가 개발되거나 유체 흐름을 통제하고 검사하는 장비를 한데 합치는 ‘올인원’ 방식으로 장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올인원 방식은 초소형기계장치(MEMS) 개발과도 병행돼야 한다. 반도체 기술에서 시작한 MEMS의 연구 역사는 마이크로플루이딕스보다 15년 정도 더 길다. 이 덕분에 마이크로플루이딕스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부 제공할 수 있지만 여전히 밸브나 펌프 시스템과 같은 핵심 장치의 경우엔 개발 수준이 낮아 후속 연구가 절실하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시스템이 하드웨어 플랫폼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많은 바이오 물질 및 화학물질을 원하는 용량, 크기로 제작·제어하고 나아가 측정까지 하는 유체 관련 조작 툴이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광학·제어 장치와 일원화할 수 있다면 전체 제작공정에서 오염원이 존재하지 않는 약물·화학 합성기,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는 게 가능하다. 보다 안전하면서 값싼 바이오메디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바이오의약품 개발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스템 구축을 통한 기술 활용 기대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mRNA 기반 신약에서도 이 기술의 유용성이 각광받고 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mRNA를 탑재한 LNP의 양산에서 현재까지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합성, 여과, 추출 등의 공정을 한데 합친 시스템으로 구축해 LNP와 mRNA를 합성할 경우 오염 발생 가능성을 더 낮춘 의약품 제조가 가능해질 것이다. 높은 재현성을 바탕으로 백신의 안정성과 안전성을 제고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향후 마이크로플루이딕스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이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세계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임근배
영남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호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삼성종합기술원에 있으면서 초소형기계장치(MEMS) 기술을 적용한 랩온어칩을 연구했다. 세계 최초로 혈류를 따라 이동하는 작동형 내시경을 개빌했다. 지난 2월엔 유체 수송과 이온 교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다공성 음이온 교환막 개발에 성공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에서 ‘마이크로’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때의 마이크로는 ‘1000분의 1㎜(밀리미터)’를 뜻하는 ㎛(마이크로미터)가 아니라 1000분의 1㎖(밀리리터)를 가리키는 ㎕(마이크로리터)다. 1㎣에 들어가는 정도의 물방울 용량이다. 성냥개비 머리 크기나 큰 바늘의 귀에 들어갈 만한 크기다.
유체역학을 전공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단순한 연구분야로 여겨져 한때는 다소 우습게 보이는 유동 현상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학기술과 바이오·의료 기술이 융합되면서 매우 적은 용량의 유체를 정밀하게 다룰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리터 단위의 영역에선 무게와 표면적의 관계로 인해 비롯되는 유체 조작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면 얻어낼 수 있는 대단히 높은 재현성이 공존하고 있다. 기술장벽만 넘어서면 고재현성을 가진 바이오메디컬 소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살려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플루이딕스를 적용한 바이오칩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이오칩이 뜨거운 이슈였던 2000년대 초반엔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바이오칩 기반 샘플추출기, 유체혼합기, DNA 단백질 분리기 등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요즘 코로나19 진단에 많이 쓰이는 유전자·바이러스 증폭기인 PCR 증폭 장비에도 적용됐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 대형 증폭 장비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지면서도 크기가 줄어든 소형 장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매력 덕분에 바이오 의료 분야에 특화된 형태로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발전한 것이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영역의 확장
2000년대 후반부터는 세포를 한 줄로 나란히 흘려보내면서 분석하는 장비인 ‘셀 사이토메트리(세포분석기)’, ㎛~㎚(나노미터) 크기에 불과한 물질을 분리할 수 있는 ‘마이크로파티클 분리기’, DNA 및 단백질을 검지해 질병을 진단하는 바이오센서, 극소량의 화학물질을 균일하게 반응시키는 ‘마이크로 화학반응기’ 등에서 마이크로플루이딕스가 쓰이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제약 시장에서 화두가 되던 약물전달시스템(DDS)을 최적화하는 쪽으로 사용 영역이 확장되면서 일부 기업은 제품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공학적 소자를 개발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이 기술에 대한 의학자, 생물학자들의 요구를 정리해보면 매우 단순하다. ‘보다 정량적이고 재현성이 뛰어나며 작은 크기의 소자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통상 소자를 작게 만들수록 소자의 재현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소자의 크기를 작게 만드는 것 자체가 고난도 기술인데, 재현성까지 살려야 한다. 고재현성과 소형화라는 기술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최적의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의학, 생명공학 등에서 대부분의 연구 분야는 유체와 관련이 있고 심지어 이러한 연구환경에서 만들어진 물질들의 평가 공정도 유체 환경에서 구축되는 경우가 많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범위에 맞는 장비 개선 이루어져야
20년 이상 기술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여전히 넘지 못한 기술장벽이 존재한다. 유체가 흘러가는 작은 마이크로채널 내의 유체를 조절하기 위해선 펌프, 밸브, 검사장비 등 외부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장비를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범위로 적용하기엔 여전히 크다. 일부 장비는 냉장고만한 크기로 미세 소자들을 다루는 데 쓰기가 쉽지 않다.
향후 이 분야에 특화된 전용 장비가 개발되거나 유체 흐름을 통제하고 검사하는 장비를 한데 합치는 ‘올인원’ 방식으로 장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올인원 방식은 초소형기계장치(MEMS) 개발과도 병행돼야 한다. 반도체 기술에서 시작한 MEMS의 연구 역사는 마이크로플루이딕스보다 15년 정도 더 길다. 이 덕분에 마이크로플루이딕스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부 제공할 수 있지만 여전히 밸브나 펌프 시스템과 같은 핵심 장치의 경우엔 개발 수준이 낮아 후속 연구가 절실하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시스템이 하드웨어 플랫폼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많은 바이오 물질 및 화학물질을 원하는 용량, 크기로 제작·제어하고 나아가 측정까지 하는 유체 관련 조작 툴이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광학·제어 장치와 일원화할 수 있다면 전체 제작공정에서 오염원이 존재하지 않는 약물·화학 합성기,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는 게 가능하다. 보다 안전하면서 값싼 바이오메디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바이오의약품 개발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스템 구축을 통한 기술 활용 기대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mRNA 기반 신약에서도 이 기술의 유용성이 각광받고 있다. 마이크로플루이딕스는 mRNA를 탑재한 LNP의 양산에서 현재까지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합성, 여과, 추출 등의 공정을 한데 합친 시스템으로 구축해 LNP와 mRNA를 합성할 경우 오염 발생 가능성을 더 낮춘 의약품 제조가 가능해질 것이다. 높은 재현성을 바탕으로 백신의 안정성과 안전성을 제고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향후 마이크로플루이딕스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이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세계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임근배
영남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호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삼성종합기술원에 있으면서 초소형기계장치(MEMS) 기술을 적용한 랩온어칩을 연구했다. 세계 최초로 혈류를 따라 이동하는 작동형 내시경을 개빌했다. 지난 2월엔 유체 수송과 이온 교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다공성 음이온 교환막 개발에 성공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