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9년전 '박근혜표 예산' 소동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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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때마다 재정으로 買票 시도
기재부는 박근혜 후보 추경 거부
'이재명표 지원금'에도 결기 세워야"
장진모 마켓부문장 겸 금융부장
기재부는 박근혜 후보 추경 거부
'이재명표 지원금'에도 결기 세워야"
장진모 마켓부문장 겸 금융부장
![[이슈 프리즘] 9년전 '박근혜표 예산' 소동 데자뷔](https://img.hankyung.com/photo/202111/07.14213013.1.jpg)
정치권의 압박이 거칠어지자 박 장관은 묘수를 짜냈다. 전직 장관들을 초청해 공개 행사를 열고 “재정 건전성을 정부의 힘만으로 지키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무책임한 재정 포퓰리즘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지성인들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달라”고 읍소하면서 대여론전을 펼쳤다.
이번엔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섰다. 여권 내 합리적 소신파로 평가받는 김 총리는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막 뒤진다고 돈이 나오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고 이 후보를 점잖게 꾸짖으며 기재부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가 완고하게 버티자 여당은 꼼수를 꺼냈다. 올해 예상되는 초과세수를 내년에 걷어 연초에 1인당 20만~25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초과세수의 일정 부분은 공적자금 및 채무상환에 사용하도록 규정한 국가재정법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에 대해서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일단 “정부가 자의적으로 세금납부를 유예하면 국세징수법에 저촉된다”고 물러서지 않고 있다.
9년 전 얘기를 꺼낸 건 여당 대선 후보들이 ‘집권 프리미엄’을 활용하려는 나쁜 버릇을 꼬집으려는 게 아니다. 그에 맞서는 ‘곳간지기’의 역할과 자세를 말하려는 것이다. 9년 전 박재완 장관은 박근혜 후보의 추경 요구를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직한 한국인’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포퓰리즘에 맞설 배짱을 갖고 있는 관료”라고 극찬했다.
기재부는 문 정부 내내 “재정 파수꾼이 안 보인다”는 오명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 여당과 각을 세우며 ‘결기’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액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기대어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항목을 신설하려는 것을 정부가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정부는 예산안 편성 권한을 갖고 있는 기재부를 가리킨다.
단적으로 홍 부총리가 사인을 하지 않으면 ‘이재명표 재난지원금’은 불가능하다. 지금 홍 부총리 외에도 예산통 관료들이 정부 요직에 포진해 있다. 김 총리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구윤철 국무조정실장도 기재부에서 예산실장, 제2차관을 지낸 곳간지기였다. 헌법 57조를 가슴에 새기면서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