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 계약갱신·종료 관련된 분쟁 '폭증'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임대차 3법을 도입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그나마 다음 전셋집을 구할 시간이라도 벌었지만 이제 2년이 된 세입자들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의 요구대로 전셋값을 올려주거나, 다른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더 살고 싶은 세입자, 내보내려는 집주인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세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1년 3개월여가 됐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전셋값이 급등한 가운데 임대차법 시행 직전에 체결했던 임대차계약의 2년 기한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법 시행 즈음에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우왕좌왕했다면, 이제는 서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을 해석하거나 대응하면서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서울 강동구에 살고 있는 세입자 A씨는 "집주인이 실거주 요건을 채워야 한다며 나가달라고 통보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셋값을 일부 올려준다고하니 '얼마를 올려줄 것이냐'며 물어왔다"며 "집주인과 합의 끝에 전세금을 올리고 더 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A씨는 "전셋값이 오른 시세를 알고 있고, 집주인이 5% 인상으로는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았다"며 "시세 보다 낮은 수준에서 계약을 다시하고 갱신은 하지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천 서구에 거주하고 있는 B씨는 "집주인이 '전셋값을 시세대로 올려줄 것인지, 아니면 나가든지 결정하라'며 노골적으로 통보해왔다"며 "요즘 전세 물량도 많이 없는 데다 자녀들 학교 문제도 있어 일단 집주인의 요구대로 전셋값을 올리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집주인들도 고민은 있다. 기존 세입자 때문에 전·월세값이 오르는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2주택으로 재산세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셋값을 올리거나 월세로 돌리기 위해 계약갱신청구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있다. 이사비에 복비, 추가로 돈을 더 주고 세입자를 내보내는 건 흔한 사례다.
성북구에 집주인 C씨는 “전셋값이 많이 올랐는데 우리집만 2년전 시세로 받으려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며 “시세만큼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면, 기존 세입자에게 각종 비용을 주고서도 돈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강동구에 집을 가지고 있는 D씨도 “계산을 해보니 5% 올려 받고 2년을 묶여있는 것보다 돈을 일부 주고 내보내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 크더라"며 "일단 세입자에게 얘기를 꺼내보고 하는데 소송 등으로 시끄러워지면 (법대로) 2년 더 살게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관련 분쟁 ‘폭증’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갈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임대차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 접수 건수는 205건으로 집계됐다. 임대차법이 없던 2019년 49건에 비해 4배가량 늘었고, 지난해 전체 분쟁 건수인 154건을 훌쩍 뛰어넘었다.전·월세 가격 조정과 관련된 '차임·보증금 증감' 관련 분쟁 접수는 같은 기간 48건을 기록했다. 이 역시 지난해 41건을 웃도는 수치다. 2019년에는 4건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12배 불어났다.
새 임대차법이 도입된 지난해 7월을 기준으로 전후 1년을 살펴보면 차이는 더 극명하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임대차 계약갱신·종료'와 관련된 분쟁 건수는 273건으로 이전 1년(2019년 7월~2020년 6월) 기록한 25건보다 10배 이상 늘었고, '차임·보증금 증감' 관련 분쟁 접수도 71건으로 1년 전(7건)보다 10배 늘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차법이 시행된 이후로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전·월세 보증금과 관련된 분쟁이 많이 늘었다"며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서도 쉽게 이런 사례를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런 상황을 두고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급하게 개정한 법의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시장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는데 이런 부분을 무시하고 법을 바꾸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라며 "법 시행 1년이면 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부작용 등에 대해서는 법을 보완해 반영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