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에 맞섰다가는 '청산’…완화 유지에 계속 베팅
뉴욕 증시는 11일(현지시간) 조용했습니다. 그야말로 별일이 없었습니다. 전날 1990년 이후 최고인 6.2%까지 치솟은 10월 소비자물가(CPI) 여파로 시장 금리가 또 오를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날이 베테랑스 데이(재향군인의 날)이어서 뉴욕 채권 시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경제지표 발표, 미 중앙은행(Fed) 사람들의 발언도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휴일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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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니 뉴욕 증시 혼자 열렸고, 전날 급락한 여파로 약간의 반발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소폭의 반등이 나타났습니다. 전날 급락했던 나스닥이 가장 큰 폭인 0.52% 상승했고, S&P500 지수는 0.06% 강보합세로 마감됐습니다. 다우 지수는 전날 장 마감 뒤 실망스러운 3분기 실적과 예상에 못 미친 디즈니+ 구독자 증가세를 보고한 디즈니가 6.97%나 급락하는 바람에 -0.44%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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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국채 금리가 조금씩 하락하면서 미국의 금리 상승세도 사그라들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습니다. 배런스에 따르면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날 고점인 연 0.94%에서 0.92%로 하락했고, 독일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이날 고점 -0.22%에서 –0.23%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Fed의 정책을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로 여겨지는 달러화 가치는 이날 추가 상승했습니다. 0.3% 오른 95.5까지 올랐습니다. 작년 7월 초 이후 최고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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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조용했던 이날 월가를 시끄럽게 만든 뉴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인 러셀클락인베스트먼트(옛 홀스맨글로벌)을 이끌던 '영원한 비관론자'(Perma Bear) 러셀 클락이 지난달을 끝으로 투자자 돈을 반환하고 펀드 문을 닫았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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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은 극단적 공매도 전략을 펼쳐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미국 증시가 계속 오르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이익을 냈습니다. 2012~2015년 매년 12~20%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24.03% 손실을 봤고, 2019년엔 -34.91%란 최악의 수익률을 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 증시 붕괴가 임박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러셀은 팬데믹이 덮쳤던 작년 14.2% 벌었지만,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수익률은 -2.6%에 그칩니다.

그는 투자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지난 25년 동안 잘 작동한 모델이 작동을 멈춘 건 중앙은행들이 돈을 퍼부어 시장 기능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러셀은 "나에게 경제적 문제를 주면 위험을 적절하게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은 정치적 선택이 됐다. 미국 시장은 본질적으로 Fed가 금리를 인상할 수 없고 의회가 빅테크를 규제하거나 법인세를 인상할 수 없다는 데 베팅하고 있다. 상품시장은 이제 중국의 정책 목표에 대한 내기가 됐으며 통화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내가 투자자에게 돈을 반환하는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에 맞섰다가는 '청산’…완화 유지에 계속 베팅
러셀의 사례는 투자자들에게 'Fed에 맞서지 말라'라는 월가의 첫 번째 격언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Fed와 반대로 돈을 걸었다가 펀드 청산 사태에까지 이르렀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충격적인 10월 CPI에도 불구하고 월가에는 Fed가 여전히 기존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란 논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는 곳이 다수입니다.

UBS는 이날 '인플레이션은 시장 변동성을 높일 수 있지만, 강세장을 끝내지는 않을 것"(Inflation may lift volatility but shouldn’t end the rally)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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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S는 "인플레이션의 움직임은 더이상 중고차와 같이 팬데믹의 영향을 받는 몇 가지 상품 및 서비스 범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면서 "물가는 앞으로 몇 개월 동안 계속 상승할 수 있으며, 예상보다 높은 각 인플레이션 발표는 금리 및 주식 시장의 변동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뉴욕 증시의 랠리를 탈선시킬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UBS가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① 글로벌 공급망이 팬데믹 관련 혼란을 극복하면서 물가 압력이 완화될 것이다

최근 물가 급등은 수요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것이다. 공급망에서 팬데믹 관련 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능가했다. 인플레이션은 내년까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물가 압력은 2022년 하반기부터 완화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에너지 가격은 높은 수준으로 올랐지만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교가 개학하면서 더 많은 미국인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고 있다. 이는 임금 상승세를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②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직면한 Fed는 금리 인상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것이다

Fed가 11월 연방공개시장위회(FOMC)에서 내놓은 핵심 메시지는 인플레이션과 고용 관련 데이터가 팬데믹으로 인해 왜곡되고 있으며 정책 입안자들은 과잉 대응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노동참여율의 하락이 더 높은 임금 상승 및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파월 의장은 “당신은 노동참여율이 어떻게 변할지 미리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냥 시간을 좀 주세요. 여러 면에서 (팬데믹 이전과) 다른 세계이고 우리는 그런 면에서 매우 개방적이다"라고 설명했다. Fed의 인내심이 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시험을 받을 것이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조기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제에 해를 끼치는 걸 피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믿는다.

③ 견조한 기업 실적은 인플레이션을 극복할 것이다

3분기 실적 시즌은 예상보다 좋았다.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S&P500 기업 중 90%가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약 80%가 월가의 추정치를 상회했고 그 폭도 10% 이상에 달했다. 가계의 재무 상황이 탄탄하고 경제가 정상화됨에 따라 우리는 기업들의 이익 성장이 견조할 것으로 예상한다. S&P500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은 올해 45%, 내년 10%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는 미국 밖에서도 강세를 보고 있다. 지금까지 유로존 기업의 약 60%가 3분기 실적을 보고한 가운데 74%가 컨센서스를 넘었다. 이를 보면 우리는 주식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유로존, 일본 등 경기에 민감한 주식이 많은 시장, 그리고 에너지와 금융주 등 글로벌 성장의 수혜주식을 매수할 것을 계속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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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관계자는 "Fed가 예상보다 빨리 긴축을 향해 움직일 가능성은 커졌지만 10월 CPI가 높게 나왔다고 곧바로 태도를 바꿀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라며 "다만 11월, 12월 물가가 계속 높아진다면 파월 의장은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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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CPI는 오는 12월10일에 발표됩니다. 12월 14~15일 FOMC가 열리기 며칠 전입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냐, 일시적이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Transitory, Or Non-Transitory, That Is the Question)라면서 햄릿급의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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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LPL파이낸셜은 이런 제목을 단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LPL파이낸셜의 라이언 디트릭 수석 전략가는 "최신 CPI 수치가 놀랄 정도로 높게 나오면서 Fed가 어떻게, 언제 대응해야 할지 더 큰 골칫거리를 안게 됐다"라면서 "'지속적 요인'인 주거비 상승, 계속되는 공급망 혼란과 증가한 노동 수요는 Fed가 규정한 '일시적 인플레' 기간을 2022년까지 지연시키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라며 "Fed의 다음 의장 발표를 미루고 있어 파월 의장도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언제 교체될지도 모르는데, 무슨 대책을 세우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것이란 겁니다.

전날 민주당의 중도파 좌장인 조 맨친 연방 상원 의원은 10월 소비자물가와 관련, 트위터를 통해 "모든 면에서 볼 때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미국인들에게 가하는 위협은 '일시적'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식료품점에서 주유소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세금이 정말 느끼고 있으며 미국 정치권은 미국인들이 매일 느끼는 이런 경제적 고통을 그냥 놔둘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맨친 의원은 그동안 파월 의장의 Fed가 무책임하게 계속 돈을 풀게 아니라 빨리 테이퍼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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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관계자는 "민주당 좌파인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에 이어 대표적 중도파인 조 맨친 의원도 파월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파월 의장이 재선임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고 보지만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